[Review] 더 선명해진 여름 속으로 – PEAK FESTIVAL 2024

글 입력 2024.06.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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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1. PEAK FESTIVAL 2024_메인 포스터(1X1).jpg

 

 

여름은 내게 가장 ‘살아 있는’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과 긴 낮이 있는 이 계절에는 모든 것이 깨어나 왕성하게 활동한다. 햇볕과 나뭇잎의 색이 짙어지는 여름이 되면 삶 역시 더욱 선명해진다.


‘PEAK FESTIVAL 2024’가 열린 6월의 첫 주말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 달리 그림처럼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떠다니는 뭉게구름, 쨍쨍한 햇살이 페스티벌에 딱 맞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난지한강공원은 이른 시간부터 붐볐다. 우리는 첫 순서인 마치(MRCH)의 음악을 들으며 입장해 피크닉존에 돗자리를 깔고 김뜻돌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스탠딩존에 서 있는 게 아닌데도 심장까지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를 들으며 지금 이 순간 페스티벌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다.


페스티벌은 스탠딩존에서 즐기는 게 정석이지만, 체력이 조금 모자라는 우리는 피크닉존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피크닉존은 피크닉존의 묘미가 있다. 멀리서 보면 무대 앞 스탠딩존에서 함께 뛰는 관객들까지도 공연의 일부가 되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탠딩존 뒤편 슬램존에서 커다란 깃발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다 한낮이 조금 지났을 무렵에야 스탠딩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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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팬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에게도 관객을 직접 만나 소통하며 자신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이번 페스티벌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채워 나갔다. 그중에서도 소란과 정용화는 관객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아티스트다.


크라잉넛과 로맨틱펀치 다음 순서였던 소란은 에너지 넘치는 두 팀 다음에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럽다면서도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유쾌한 무대를 꾸렸다. 후반부 ‘가을목이’를 부를 때는 관객에게 직접 댄스를 가르치며 소통을 이어 나가기도 했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정용화는 솔로곡보다 씨엔블루의 곡이 익숙할 관객을 위해 ‘외톨이야’로 흥을 돋운 후 여러 솔로곡을 들려줬다. 역시 작년에 발표한 ‘그대의 시간에 맞출게요’의 귀여운 율동을 알려주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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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 조금 옅어질 무렵에는 이승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아티스트는 늘 음악으로 말한다. 이승윤의 순서도 멘트보다는 음악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교재를 펼쳐봐’, ‘가짜 꿈’처럼 다소 묵직한 곡들로 시작한 무대는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숙취 없는 꿈을 꾸고 싶다 함께 외치면서도 그런 게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해지는 ‘비싼 숙취’, 자아를 성찰하게 만드는 ‘폐허가 된다 해도’ 등 이어지는 곡에서도 질문은 이어졌다.

 

이승윤의 곡에는 회의와 냉소가 많지만 거기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들려준 미발매곡 ‘폭포’가 대표적이다. 이 곡은 폭포와 같은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는 게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질지라도 나만큼은 그 흐름을 거슬러보겠다고 중얼거린다. 이 미약한 다짐이 웅장한 기타 소리와 만나고 관객의 함성과 합쳐지며 어떠한 선언이 되어가는 모습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이승윤이 마지막으로 부른 곡은 역시 미발표곡으로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였다. 의심하고 고민하고 자책하느라 지친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감싸 안는 이 곡은 날카로운 회의로 시작한 무대를 따뜻하게 마무리 지어 주었다. 그가 1시간 동안 보여준 무대는 허울뿐인 위로 대신 질문을 던지며 청춘과 공명한 무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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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것은 넬이었다. 이날의 일몰은 대략 저녁 7시 50분으로, 넬의 무대가 시작되는 시간과 같았다. 이걸 인식한 듯 넬은 ‘Still Sunset’의 인트로와 함께 입장해 넬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Dystopian’s Eutopia‘와 ’Dream Catcher’를 부르고, ‘Moon Shower’, ‘Full Moon’, ‘All This Fxxking Time’을 연달아 들려줬다. 여름 페스티벌임을 고려해 넬의 수많은 곡 중에서도 화려하고 강렬한 곡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해가 사라진 자리를 넬만의 조명과 무대 영상이 채우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한껏 뜨거워진 분위기를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잠시 가라앉힌 넬은 마지막 곡으로 ‘Let The Hope Shine In’을 선택했다. 어느덧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진 가운데 또렷이 들려오는 보컬인 김종완의 목소리가 희망을 전했다. 물론 앵콜은 ‘기생충’으로, 화끈하게 토요일을 마무리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매끄러운, 어느덧 25년 차를 맺은 밴드의 관록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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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페스티벌에 도착해 가장 처음 스탠딩존에서 즐겼던 무대는 크라잉넛이었다. 글의 끝에서야 언급하는 이유는 이 무대가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한창 더웠던 오후 3시 무렵 크라잉넛은 ‘밤이 깊었네’, ‘명동콜링’, ‘좋지 아니한가’, ‘말달리자’ 등 히트곡과 함께 무대를 달궜다. 신날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신났다. 더위와 피곤함은 음악을 들으며 뛰고 함성을 지르는 동안 흐려졌다.


이날 크라잉넛이 부른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는 ‘어차피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라는 가사가 있다. 스탠딩존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 구절을 유독 힘차게 따라 불렀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무척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을 사는 젊은 세대로서, 요즘은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더라도 뉴스와 신문을 보면 비관보다 낙관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내일이 없다는 외침은 노래 가사이면서 동시에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겠다는 의미고, 더 나아가 실제로 내일이 없다고 느끼는 우리의 자조로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일이 없다고 크게 외치고 나면 내일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왜일까. 끝까지 다 비워내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다시 채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편안하기만 한 기억보다 조금은 괴로웠던 기억이 훨씬 더 오랫동안 남는다. 삶의 의지는 고통 속에서 더 강해지곤 한다. 포기함으로써 다시 시도할 용기를 얻는다. 나에게는 이번 페스티벌이 그런 전환의 계기로 다가왔다.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고 난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내일을 생각했다. 내일, 또 이어지는 내일을 열심히 살아서 또 이런 공연을 보러 와야겠다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야외 페스티벌이란 돈을 주고 고생하는 경험일 수도 있다. 날씨는 변덕스러울 때가 많고, 각종 벌레의 습격으로부터도 안전하지 못하고, 스탠딩존에 가면 모르는 사람들과 땀을 흘리며 뛰어야 한다. 하지만 페스티벌이 좋은 이유들도 거기에 있다.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점점 더 더워지겠지만 그 더위 속으로 뛰어들 각오를 다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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