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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람과 영웅 사이: 스파이더맨 [영화]

가깝고도 먼 당신의 친절한 이웃

by 윤경주 에디터
2026.08.11 14:20
5년 만에 돌아온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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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의 존재가 모두 지워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면, 마치 영원히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기분일 것 같다. 문 뒤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며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들은 나의 이름조차 모른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마지막에서, 피터 파커가 마주한 것이 바로 그런 세계였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웠고,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의 곁에서조차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 5년 만에 돌아온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그 선택 이후의 시간을 비춘다.

나는 방대한 마블 세계관을 꿰뚫고 있는 마니아는 아니지만, 스파이더맨 시리즈만큼은 꾸준히 챙겨볼 만큼, 애정한다. 역대 스파이더맨들마다 고유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토비 맥과이어부터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톰 홀랜드까지, 같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세 사람이 보여준 피터 파커는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서툴지만 책임감 강한 청년의 모습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끝내 사람을 구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영화는 3대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성숙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던 멘토와 유일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자신에 대한 기억마저 지운 채 온전한 홀로 선 '어른' 피터 파커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자신과의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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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운 후, 4년간의 고독한 날들을 보냈다. 인스타그램 너머로 행복한 대학 생활을 보내는 네드와 MJ의 모습을 남몰래 지켜보기도 하고, 매번 꽃을 사 들고 큰엄마 메이의 묘지를 찾는다.

 

MJ에게 상황을 전하려 편지도 써보았지만, 이미 연인 MJ와 가장 친한 친구 네드의 일상에 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터는 타인과 단절된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도 단절된다.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함께했던 추억 역시 혼자만의 기억이 된다. 피터 파커라는 사람을 증명해 줄 관계가 사라진 것이다.


모든 유대감을 끊은 채 여전히 뉴욕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며 묵묵히 지나는 일상 뒤로, 피터는 갑작스러운 거미 DNA의 증폭으로 인해 생체 거미줄을 분사하게 된다. 마치 정신적 고립이 육체로 발현된 듯 거미줄 고치에 둘러싸여 버둥거리다가 추락하는 그의 모습은 타인과의 표면적인 단절을 넘어 영웅 스파이더맨이 아닌, 인간 '피터 파커'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스인 데미지 컨트롤 본부 전투씬에서 진 그레이가 조종하는 닌자 부대와 겨루던 중, '스파이더맨인가, 피터 파커인가'라는 그녀의 물음에 피터는 마스크를 벗은 채 이렇게 대답한다. "둘 다 나야." 개인 고유의 정체성은 온전히 스스로 일궈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당신의 친절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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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은 '친절한 이웃'이다. 악당과 싸우고 도시를 구하는 영웅치고는 소박한 별명 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이 이름이 스파이더맨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가 오랜 시간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가면과 수트 이면에 평범하고 어린 청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큰 힘을 가졌음에도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은 지키지 못한다는 비극적 아이러니는 영웅의 서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대사는 '얼마나 강한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피터는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관계를 끊고 스파이더맨으로만 살아가는 길을 택했었다. 하지만 사람 잃는 것이 두려워 사람을 포기해 버린다면, 자신이 지키려 했던 스파이더맨의 의미마저 잃게 된다. 스파이더맨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피터 파커'이기 때문이다. 가면 아래에 있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가깝고도 먼 영웅이다. 하늘을 날고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은 우리와 너무 멀리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우리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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