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파이더맨은 무엇인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영화]

2023 최고의 애니메이션이 될 작품?
글 입력 2023.06.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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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아직은 대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돈은 쪼들렸고 영화는 좋아했다.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주말의 즐거움이었다.

 

그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개봉했다. 몇 안 되는 상영관 수로 시작했던 그 영화는 생각보다 아주 오래 극장에 걸려있었는데, 보고 나온 사람들의 평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듣고 읽은 모든 리뷰들이 말하길, '꼭 극장에서 봐라' 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스파이더맨에 큰 관심이 없을뿐더러, (물론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봤고, 마블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보았지만 딱 그 정도다) 애니메이션은 집에서 보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3년, 후속작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개봉했다. 여전히 관심 하나 없던 그 영화에 대한 평론가 평을 우연히 SNS에서 읽게 됐다. 근래 들어 찾기 힘든 대단한 별점이 메겨져 있던 것이 아닌가? 감탄하던 차에 보고 나온 친구가 말했다.

 

"제발 부탁인데 한 번만 봐. 제발."

 

이제는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 아니고, 좋은 영화라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보는 것이 가능한 경제적 여건이 되었다. 땅으로 따지자면 논 정도의 여건은 아니고, 아파트에서 키우는 한 줄짜리 텃밭이었다. 그래도 내가 일구긴 하지 않는가. 어쨌든, 마침 문화의 날이 코앞이겠다, 나는 친구와 2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어릴 적에 주구장창 보던 <인디아나 존스>를 뒤로 제친 꽤 진지한 결정이다.

 

영화인의 도리로, 1편을 보지 않고 2편을 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작품에 대한 예의를 갖출 겸 2편의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겸, 나는 전날 VOD를 구매해 가벼운 마음으로 1을 봤다. 조금 늦은 밤이었고, 후딱 해치워 소화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2시간이 지났고 영화 크레딧이 내려갔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흉하게 웃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쳤다. 정말 미쳤어. 갑자기 억울했다. 5년 전에도 제발 보라고 애원하며 나를 영화관에 끌고 갈 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니까 미쳤다는 말은, 작품도 미쳤고 보러 가지 않은 나도 미쳤다는 소리다.

 

팝업카드처럼 톡톡 튀는 코믹스의 문체, 눈이 모든 프레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역동적인 연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이보다 깔끔할 수 없는 스토리. 모든 게 완벽했다. 같은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다룬 마블사의 2021년 작<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잠에 들면서 생각했다. 1편도 이런데 2편은 대체 어떻게 만들었다는 걸까? 외계인이 정말 있나?

 

*

 

서문을 너무 흥분해 작성했나 싶어 민망하지만, 어쨌거나 2편을 보았다. 그리고 2편을 본 내 반응은 이렇다. 진짜 잘 만들었네! 그런데 내 취향은 1편이야.

 

어쩌면 조금 아쉬운 반응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건 취향의 문제다. 나는 원래 히어로 영화의 충실한 기승전결에 무딘 편이다. 2편은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이나 '히어로'라는 타이틀을 떼어내도 잘 만든 영화라는 인상이 더 크다.

 

문화의 날이었던 만큼 관에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거의 2시간 30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집중해서 관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은 손을 마구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흥분을 다스리려고 애쓰는 중인 것 같았다. 크레딧이 내려가자, 곳곳에서 참았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너무 재밌어. 야, 이거 뭐야? 그런 말들이 툭툭 들려왔다.

 

좋은 영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그 못지않게 상영관 분위기도 따지는 사람이다. 모두가 웃고 울고 놀라는 그 일련의 집단 반응(?)이 주는 더 큰 감동이 있다. 호불호 없이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픽사나 디즈니의 작품이 아닌데도, 이 성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정신 사나운 애니메이션이 그러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1편이 주인공 '마일즈'가 스파이더맨으로 도약하는 성장을 그리는 누구나 아는 전형적인 스파이더맨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면, 2편은 그가 스파이더맨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모든 우주에서 스파이더맨은 불행을 겪고, 그 불행을 겪어야만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니 스파이더맨이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공식적인 설정이며. 그것이 나의 아버지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어야 한다는 거다.

 

마일즈는 거부한다.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한다는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모든 사람을 지킬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없는지 아닌지는 시도해 보아야 아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실패했던 들, 나도 실패할지는 알 수 없다. 내 운명은 내 두 손으로 개척하는 것이다.

 

애초에 마일즈는 스파이더맨이 되었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되어버렸다. 그를 돌연변이, 골칫덩이로 여기는 이도 있다. 너 하나만 참으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서 이 사달을 만들어? 순응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 어딘가 익숙한 말들이 아닌가. 많은 이들이 겪었을 억압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고 또 납득할 수 있어서, 저항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언사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보던 나도 고집 그만 부리고 다른 스파이더맨들을 따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스파이더맨은 불행할수록 우리가 반기는 영웅이 아니던가.


그러나 마일즈는 강하다. 억압에 반기를 들 줄 알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남이 내 인생을 휘두르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는 스파이더맨 이전에 마일즈라는 개인이고,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이자, 남들보다 일찍이 멀티버스를 겪어냈으며, 또 원래는 스파이더맨이 될 운명이 아니었던 만큼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을 죽어라 따돌리며 마일즈는 말한다. 다들 내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내 이야기는 내가 쓸 거야.

 

나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스파이더맨이 불행해야만 한다고 누가 정했나? 그저 익숙한 재미를 위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모든 스파이더맨이, 모든 이웃집의 영웅이 불행할 필요는 없다. 똑같은 전철을 밟을 필요도 없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은 관념이다. 누구나 그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우주의 스파이더맨이 다른 외형과 다른 생각을 갖고있지 않나.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주변의 이웃을 돕는 것, 그것이 본질이지 '불행'은 아니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이 있기 훨씬 전에 우리에게 친숙하던 히어로는 단연 스파이더맨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의 머릿속엔 스파이더맨에 대한 '공식'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독특한 걸작이 그것을 깨부수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시도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스파이더맨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마일즈뿐 아니다. 그를 돕는 또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 우먼 그웬의 이야기도 아주 인상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는 스파이더맨의 첫사랑이었을 뿐, 그녀 역시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  만큼이나 선하고 강한 존재였음을 깨닫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코믹스의 팬이 아닌 이상 그녀 역시도 방사능 거미에게 물려 큰 힘을 얻게 될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기회가 좀처럼 없는데, 이 똑똑한 애니메이션이 그 가능성을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여주었다. 또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겪는 아버지와의 단절과 정체성의 혼란은 <엑스맨 2>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해당 작품 역시 훌륭한 히어로 영화 중 한 편으로 손꼽힌다.

 

영화가 시종일관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처음 등장하는 빌런의 모습은 바보 같기 그지없어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서로를 가리키며 너야? 하며 혼란에 빠지는 장면은 단연 명장면이라 불릴 만하고,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아이코닉한 캐릭터들과 설정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출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천재적인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했고, 총괄 프로듀서는 도대체 사람이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톡톡 튄다. 다만 1편보단 조금 더 진중하고, 극적인 플롯 트위스트가 가미되었는데 - 충분히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다만 끝난 뒤엔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겠다. 도저히 다음 편이 개봉하기까지 기다리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6월은 애니메이션이 강세인 달인가보다. <엘리멘탈>을 보면서 훌쩍거리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라는 믿을 수 없는 작품이 개봉하다니. 두 작품 모두 추천하지만,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후자를 더욱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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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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