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을 마주쳤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미술관이었고, 나는 그저 미술 교과서에서 봐왔던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이나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커다란 파란 액자 하나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수없이 많은 색점들, 그리고 그것들을 겹겹이 둘러싸며 퍼져나가는 파동 같은 흐름. 뭔지 설명할 수 없는데 자꾸 보게 되는 그림이었다. 나를 10분 동안 마주보며 서있던 그 순간. 계속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놓으면서 느껴지는 강렬함. 그 그림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는 이 이끌림을 그냥 우연으로 넘기고 싶지 않아졌다.
그 이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대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알면 알수록 참 흥미로웠다. 1950년대 후반의 한국 화단은 해방과 전쟁을 막 지나온 터라, 우리 미술이 뭔지를 새로 찾아야 하는 시기였다. 제도권에선 여전히 아카데믹한 사실주의가 주류였고, 전쟁이 남긴 상처는 미술가들에게 "그래서 예술이 삶이랑 어떻게 같이 가야 하지?"라는 질문을 떠안겼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957년, 한묵이 재야 전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박고석,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을 중심으로 모던아트협회가 만들어졌다. 1957년 동화화랑에서 첫 전시를 열고, 1960년까지 여섯 차례 전시를 이어가는 동안 문신, 정점식, 정규, 김경, 천경자, 임완규가 차례로 합류하면서 협회의 폭도 넓어졌다. 단순히 작품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창작과 전시와 비평이 한데 얽히는 공간이 됐고, 그 자체로 전후 한국 화단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이들은 서구 모더니즘을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한국의 현실 속에서 다시 읽으려 했다. 추상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삶과 정신, 현실과 사유를 하나로 담아내는 태도 그 자체라고 봤다. 그 말이 와닿았다. 형태가 없어도 감각은 있을 수 있다는 것.
현대미술이나 추상화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나처럼 그냥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분명히 깊고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린 전시 [조우(遭遇), 모던아트협회 1957-1960]에서는 아래의 그림들이 한참 동안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묵, <흰 그림>
제목처럼 온통 하얀 그림이다. 창살과 그 사이에 끼인 어깨, 빈 밥그릇만 남기고 배경도, 인물의 몸도, 얼굴도 전부 흰색으로 덮여 있다. 처음엔 그냥 미완성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한참 보다 보면 그 하얀색이 지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걸 눌러 담은 색처럼 느껴진다. 얼굴엔 눈도 코도 입도 없다. 그 텅 빈 얼굴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알고 보니 한묵은 북한에 있을 때 공산당 정부에 의해 '반동'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무덤을 직접 파는 수모까지 겪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얼굴을 봤더니, 지워진 이목구비가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울 수밖에 없었던 절망처럼 읽혔다. 창살에 끼인 어깨는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그 자체였고, 그 옆에 놓인 빈 밥그릇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 배고픔을 넘어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흰색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 그림 앞에서 처음 알았다.
정점식, 〈실루엣〉(1957)
그림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인데, 인물의 형태를 거의 원기둥에 가까운 기하학적 윤곽으로만 남겨놨다. 선도 색도 최소한으로 줄여놓아서, 얼핏 보면 너무 단순한 도안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화면 전체에 마티에르, 그러니까 물감의 질감과 두께감이 아주 섬세하게 쌓여 있다. 그게 묘하게 그림에 숨을 불어넣는다. 완전히 지워진 것 같은 두 실루엣인데, 그 사이에서 뭔가 관계 같은 게 느껴진달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두 사람. 작가가 오랫동안 '두 사람'이라는 주제를 다뤄왔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걸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하니, 그 단순함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쌓여 있는지 새삼 가늠이 됐다.
이규상의 〈작품 A〉(1959)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처음엔 그냥 깔끔한 기하학적 추상화처럼 보인다. 별표 하나와 14개의 원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게 십자가에 매달려 쓰러진 예수의 형상을 도안화한 거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14개의 원은 '십자가의 길'의 14처,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열네 개의 고난의 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걸 알고 다시 보면, 그 단순한 도형들 하나하나가 갑자기 무게를 갖기 시작한다. 기하학과 신앙이 겉도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한 언어로 녹아 있는 느낌. 추상이 이렇게 구체적인 믿음과 맞닿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모던아트협회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1960년 제6회 전시를 마지막으로 활동이 중단됐는데, 마침 4·19 혁명으로 사회 전체가 뒤흔들리던 시기였고, 작가들의 길도 각자 달라졌다. 문신과 한묵은 파리로 떠났고, 이규상, 김경, 정규는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짧게 끝났어도, 이들이 남긴 건 적지 않다. 제도와 재야 사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며 만들어낸 그 흐름은 이후 단색화의 기하학적 추상으로도, 민중미술의 현실 참여적 태도로도 이어졌으니까. 예술이 시대의 현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삶의 언어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기대한다. 언젠가 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들의 작품을 다시 마주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처음 김환기의 파란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을 때,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설명할 수 없는데 자꾸 보게 되는 그 느낌. 그게 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추상은 뭔가를 이해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감각을 건드리는 거라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찾아오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 조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그림 앞에 서도 내가 달라져 있으면 다른 게 보이고, 전혀 다른 그림에서 같은 감각이 다시 올라오기도 하니까. 그 순간들이 쌓여서 내가 이 미술을 계속 찾게 만드는 것 같다. 의무감이나 공부가 아니라, 그냥 또 그 느낌이 오고 싶어서.
모던아트협회 작가들도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나고 남은 폐허 속에서, 뭔가를 설명하거나 기록하는 대신 그냥 자기가 느낀 걸 형태로 꺼내놓은 것. 그 형태가 지금 나한테까지 닿아서 뭔가를 건드리고 있다면, 그게 바로 추상이 시간을 넘는 방식인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이 시대를 조우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조우가 언제나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게 아니어도 괜찮다. 어느 날 또,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이 올 테니까.
“모두가 진정 마음의 사치를 누릴 줄 아는 멋쟁이였고 수수한 사람들이었다. 그룹전이라면 더러는 전시장에서 서로 좋은 자리에 자기 그림을 걸려고 전전긍긍하는 바보들의 행진같은 야박스러운 일이 있을수도 있지만 한국 최초로 결성된 그룹 모던 아트 동인들은 모두가 초연한 자세여서 그런 부끄러운 일이 추호도 없었다."
천경자. <모던아트의 멋장이 동인들-가난해도 순수했던 예술에의 열정> - 동아일보 1984.4.6(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