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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유퀴즈 온 더 블럭>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이 있다. 그중 5화에서, 학교에 가다가 모자를 잃어버려 수업을 가지 않은 대학생을 만나 같이 모자를 찾는 편이다. 모자는 잃어버렸지만 우연히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일상 속 그 엉뚱하고도 잔잔한 흐름이 힐링이 되어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는 회차이다.


그러나 <유퀴즈>는 코로나 이후 스튜디오 형식으로 개편되었고 정적인 인터뷰의 성격이 강해졌다. 가장 두드러지던 '길거리 토크'가 사라져 자연스럽고 정겹던 초창기의 형식을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초창기의 <유퀴즈>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꾸밈없고 진솔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도파민이 절로 나오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들도 즐거움을 주지만, '사람의 정'이라는 아주 솔직하고 직접적인 소재는 대체할 방식이 없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요소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형식이다. 대상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내는 세상의 창이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잊고 있던 그 따뜻한 시선을 가득 담은 프로그램이 다시 돌아왔다.

 

 

 

14년 만에 돌아온 청춘 버스


 

 


 

'특정한 공간' 과 '제한된 72시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자연스런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 기록함으로써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3일>, 프로그램 정보

 

 

KBS2 채널의 <다큐멘터리 3일>이 4년 만에 재편성되어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다큐 3일>은 제작진이 관찰한 72시간을 50분이라는 분량에 담아내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돌아온 <다큐 3일>의 첫 행선지는 273번 버스였다. 2012년에 방영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그래도 청춘이다' 편의 주무대가 바로 이 버스였던 만큼, 14년 만에 다시 청춘들의 궤적을 쫓는 의미 있는 복귀였다.

 

하루 평균 3만 명, 273번 버스의 승객은 대부분 대학생이다. 10여 개의 대학교를 도는 노선을 품고 있어 일명 '청춘 버스'라고도 불린다.


출근 시간, 북적이는 버스 안에는 형형색색의 '과잠'이 눈에 띈다. 오늘 처음 꺼낸 하얀색 과잠을 입은 새내기부터 한국으로 여행을 와 밤늦게 홍대에 놀러 온 독일인 대학생들, 그리고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 버스를 거쳐 간다.

 

 


우연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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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며 마주하게 되는 생생함, 우연 속에 발견하는 진심을 만나는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일>, 프로그램 정보

 

 

프로그램의 취지를 증명하듯 최근 SNS에서는 방송에 담긴 우연한 만남이 화제가 되었다. 동기들과의 여행, 밥약 등 대학교의 부푼 로망을 안고 입학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아 우울해하는 새내기를 보고,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던 같은 학교의 4학년 선배가 흔쾌히 '밥약' 요청을 건넨다.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새내기 학생은 제작진에게 선배와 점심을 먹은 인증 사진을 기쁘게 보여주며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을 힘차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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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4년 전, 방송에 3초가량 짧게 출연했던 과거 273번 버스 기사의 아들이 같은 버스를 운행하게 되어 다시 만난 사연도 있다. 방송 이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그 3초는 생전의 유일한 영상으로 남았다.

 

스마트폰 너머 재생되는 짧은 영상 속 아버지를 보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같은 버스에 앉았다.

 

이 버스는 누군가에겐 시작과 설렘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그리움의 공간이 되었다.

 

 


낭만의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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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부작이라는 짧은 편성에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다큐 3일>만의 감성이 무척이나 반갑다. 매일 타는 버스지만, 72시간 동안의 관찰을 통해 익숙한 버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타인의 일상을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 묘한 낭만과 위로를 얻는다. 우리가 돌아온 <다큐 3일>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된 낭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며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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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나온 김형진 버스 기사의 노래가 인상 깊게 남는다. 그는 노래를 전공했지만, 현실적인 연유로 마이크 대신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한때는 지금 버스에 타고 있는 학생들처럼 찬란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는 취미로 남겨두고,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궤도를 달리고 있다.

 

'다큐 3일'과 '청춘'에 어울릴 만한 곡을 한 소절 부탁하는 PD의 요청에, 입시곡이었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부르며 화답한다. 시원한 노랫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바쁜 도시의 풍경을 비춘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 순간 도착지에 와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때로는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또는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흔들리는 모습일지라도, 버스는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불안은 과정에서 늘 함께하지만, 결국 흔들린다는 것은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이 숱한 상처 속에서도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에 닿고야 마는 것처럼, 지금 이 버스 안에서 쉼 없이 흔들리는 청춘들 역시 멈추지 않는다면 끝내 자신만의 종점에 다다를 것이다.


모든 청춘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아트인사이트 윤경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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