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춘의 한 장면,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난 이 영화를 스무살 때 봤고, 당시에 가슴이 뜨거워져서 ’인생 영화‘로 꼽았다. 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서, 20대 청춘들이 단 돈 80만원과 열정만 들고, 1년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도전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자처하며,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수 있는 잉여로운 여행을 한다. 숙박업소 홍보 영상을 만들어주며 돈 한 푼 안 쓰고 유럽에 머물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출발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고, 갈등도 생긴다. 그러나 그들만의 에너지와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해나간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날 것이고 현실적이어서다. 게다가 그 안에서 그들만의 밝은 에너지가 화면 밖까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만약 내가 장기 여행을 간다면, 그 도전을 이렇듯 하나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관계에 자연스레 집중이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믿고, 리더의 어떤 목표에 설득되어 먼 타지에서 1년 넘게 사는 도전에 함께 하게 된걸까? 나는 리더인 ’호재‘의 결단력과 사람을 챙기는 능력이 특히나 부러웠고 닮고 싶은 인간상이라고 느꼈다. 다들 젊음은 유일하게 ’안 좋은 것‘들을 해봐야 할 때라고 말하곤 한다. 늙어서 길 바닥에서 자면 주책이지만, 젊어서 길 바닥에서 자는 건 청춘으로 치부된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교통 많이 이용할 수 있지만 튼튼한 두 다리로 몇십시간을 걷는 건 젊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보여줘서 더욱 내 맘의 불씨를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평생 술자리 안주를 얻은 셈이지 않을까? 내 안에 열정과 도전이 부족할 때 가끔 이 영화를 꺼내 먹곤 한다.
2. 인생 지침서, <소울>

이 영화는 나의 인생 가치관을 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야?‘라고 하면 ’소울!‘이라고 대답 할 만큼, 영화를 봤던 당시에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건드렸던 영화이다. 대사와 연출, 재즈 음악까지 3박자가 잘 맞는 황홀한 영화였다고나 할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내가 기억나는 장면은 그가 그토록 바래왔던 꿈을 이뤘지만, 사실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그것을 이룬다고 해서 그의 삶이 180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사람 만석인 지하철과 텁텁한 일상에 다시 돌아오는 것 뿐. 나는 이런 걸 보며 그저 현재를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는 연습이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지금의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Seize the day!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나의 정체성‘, 그리고 ’나의 행복‘,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특히 “나는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죽은 뒤 자신의 삶을 전시로서 보는 장면이 있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삶이 비석으로, 홀로그램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다 각자 본인만의 특정 색깔이 있고, 가장 많이 취했던 포즈로 비석도 있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홀로그램으로 전시가 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나의 전시회에 무얼 전시해두고 싶을까? 어떤 색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는가?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는 어른이라면 평생 고민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5년마다 새롭게 보고싶은 영화이다. 매년 달라지는 나의 감상을 보는 재미도 있다.
3. 이탈리아인 특유의 낙천성이 오히려 눈물 나는, <인생은 아름다워>

이 영화는 내가 이탈리아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대중들에게 유명하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잠깐 살다 온 나에게는 더욱 이탈리아의 감성이 짙게 와닿아서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귀도‘를 보면서, 이탈리아 교환학생 시절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던 이탈리아 남부 출신 친구가 계속 겹쳐보였다. 작품 속 주인공 ’귀도‘는 길에서 만난 예쁜 여성에게 끊임없이 ’Buongiorno, principessa!(안녕하세요, 공주님)‘ 이라며 지속적인 호감을 표시한다. 플러팅의 귀재라고도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인들의 빈말들을 나 또한 겪어봤기에 웃음이 지어지는 장면들이었다.
영화 초반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장난기 많고, 능글대고, 낙천적인 성격이 마냥 웃겼다. 빈말도 많이 하고, 지키지 못 할 농담도 많이 하던 이탈리아 친구들이 떠올라서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속 ’귀도‘와 그의 아들 ’조슈아‘가 수용소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오히려 그 성격이 눈물을 자아내는 포인트로 바뀌었다. 아빠는 아들 ’조슈아‘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수용소에서의 삶을 하나의 게임으로 설명한다. 1,000점을 얻으면 아들이 원하는 탱크를 딸 수 있다고 말이다. 이 하얀 거짓말은 본인이 군인들에게 붙잡혀 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아들의 동심을 지켜주려고 마지막까지 밝은 척을 하는 모습이 정말 눈물샘을 멈추지 않게 했다.
사실 이 영화는 후일담까지 봐야 완성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귀도‘ 역의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버지가 실제 겪었던 일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3년을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고 한다. 전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부인에게 그 이야기를 풀어줬는데, 그것이 영화의 기원이 된 셈이다.
게다가 그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이다. 감독이 곧 주연 배우인 이런 작품들은 배우에게서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과 세심한 감정 연기가 느껴진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일까? 이렇듯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특히 감동적이다. 예술로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재현해내고, 치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인들, 특히 남부 이탈리아인들의 가치관과 삶을 잘 표현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정말 낙천적이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La vita e’ bella(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마인드로 좋은 점을 찾아내려는 특징이 있다. 이 영화는 다소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내게, 영화 제목부터가 인생의 새로운 시각을 찾아보라고 말을 건네서 소중하다.
4.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 <햄넷>
이 영화는 영국 문학의 거장인 셰익스피어가 아들인 햄넷을 잃고 나서, 연극 <햄릿>을 만들었다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 그것을 예술로 추모하고 극복해내는 이야기다. 이는 ‘예술이 왜 필요한가?’, ‘예술은 삶을 치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대중들에게 “그렇다”고 말한다. 이는 내가 평소에 가졌던 가치관과 동일하며,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 더욱 마음이 갔다. 내 가치관을 증명해주는 듯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도파민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고유하고, 잔잔하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 섬세한 감정선을 포착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 감정선이 정말 깊고 섬세해서, 나를 아침부터 펑펑 울며 영화관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눈물을 자아내는 포인트는 슬픈 줄거리와 연출, 눈물샘을 자아내는 음악도 한 몫 했다. 사운드 트랙도 환상적이다.
영국에 간 적이 있고, 영국에 또 갈 입장에서 더욱 몰입이 되기도 했다. 특히 후반부에 <햄릿>이 공연되는 공간은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인데, ‘진정으로 저 시대에는 그 공간에서 셰익스피어가 저런 식으로 연극을 올렸겠구나‘ 라고 느끼며, 예전에는 건조하게만 느껴졌던 공간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영화처럼 ’거장도 사람이었다‘ 류의 영화를 참 좋아한다. 많은 대중들은 셰익스피어가 단지 <햄릿>을 썼다는 사실, 대단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항상 예술 작품을 볼 때면, 이 작품의 앞면보다 뒷면에 관심이 간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 줄거리는 작가의 인생 속 어디서 영감을 받은걸까, 작품 속 주인공이 가진 상처는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감정일까, 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가 항상 궁금했던 그 부분을 건드려주었다. 그래서 <햄릿>이라는 작품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연극 <햄릿>을 예매했다.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단 하나의 말은 “예술은 삶을 메워준다”는 말이다. 아들인 햄넷이 죽고나서, 그를 <햄릿>으로 무대 위로 다시 불러오는 행위를 함으로써 아들은 예술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되었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상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한 것이다. <햄릿>은 대중들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엄마에게는 무대 위에서 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위로를 받고 웃었기에 희극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예술은 삶의 상처를 더욱 깊고 진하게 메워준다. 인간이 하는 것보다 더.
5. 차별과 공존의 메시지가 인상적인, <주토피아 2>

<주토피아 2>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 행복해진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항상 귀엽고, 하는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귀여운 것도 한 몫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인생 영화로 꼽았다.
나는 이방인과 소외자, 차별에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유럽에서 반년동안 동양인 여성으로 살면서 더 그러한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다. <주토피아>의 주인공은 동물들이지만, 나는 감독이 분명 이를 통해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시즌 2에서는 ’파충류‘ 같이 숨어지내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나는 이것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을 떠오르게 했다.
예를 들면, 우리도 현 시대에서 생김새가 다르다고 배척하고, 그 사이에서 우월성을 매기는 인종차별 등이 여전하다. 그러한 부분을 동물에 빗대어 효과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 차별 하지 말고 공존하자는 이야기를 귀엽고 웃긴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니,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가 보다 효율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효과적인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다른 생김새와 성격의 동물들의 다채로움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도 다채로움이 부디 용인받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나의 정체성이 왠지 흐려지거나 무시받는 것 같을 때, 꺼내 볼 인생 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