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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25년 12월 30일 밤 10시, 중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말에 종종 오가는 특별할 것 없는 안부 전화였지만, 그날의 대화는 우리를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이끌었다.

 

2025년의 '마지막 여행'이 고팠던 우리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순천행' 버스와 '여수'에 위치한 숙소를 예매했다. 새벽 3시에 짐을 싸고 6시에 집을 나섰다. 이 모든 게 6시간 만에 발생한 일이라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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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한 숨 자지 않았음에도 왠지 모를 개운함에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인 우리는, 가는 내내 "이게 맞아?" 라는 말만 주고받다가 순천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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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여행의 첫 일정은 [순천드라마촬영장]이었다. 이곳은 60-80년대 건물들이 실감나게 재현되어 있으며,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구미호뎐>, <눈이 부시게> 등 유명세를 탔던 작품들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옛 것을 좋아해서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장소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그 시절에 즐겼던 놀이도 체험해 볼 수 있고, 옛날 교복을 입고 촬영도 할 수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구경할 수 있는 관광지였다. 이곳에서 촬영했던 드라마 속 장면들을 알고 가면 그 재미를 더할 수 있을 듯하다.

 

추운 날씨 탓에 옛날 교복을 입어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들 덕분에 작은 아쉬움 마저도 채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입장료도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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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순천만국가정원]이다. 따스한 햇살을 받은 갈대밭이 유명한 이곳은 가을이 성수기인 관광지이지만, 가을 못지않게 하늘이 예쁜 겨울에 와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2025년의 마지막 일몰을 보려 이곳에 방문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모르는 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했다. 장소의 명칭이 왜 '국가정원'인지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올 것 같은 광활한 호수에 영롱한 노을빛이 번지는 하늘이 비쳐서 2배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사실 조금 더 밝은 하늘일 때의 풍경도 궁금했는데, 완전히 즉흥 여행이다 보니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계획으로 인한 아쉬움 마저도 감싸주는 풍경을 만나, 마음 속에 묵혀있던 지난 근심걱정들이 모두 내려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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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장소들을 방문하며 한 새로운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이 여행의 근본적인 목적은 2026년 새해 일출을 보는 것. 이 목적만 달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여행이 되리라 확신했다.

 

같이 간 친구는 (이번 여행을 가기 전까지) 살면서 새해 일출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첫 일출을 보는 친구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단 사실에 여행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우리는 순천과 가까운 여수에 위치한 [만성리검은모래해변]에서 일출을 봤다. 동해만큼은 아니지만 최근에 일출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좋았다. 또, 떡국 행사도 진행하고 있어서 해를 기다리는 동안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었다.

 

7시 40분 즈음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올랐다.

 

매년 새해 일출을 보러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새해가 밝아도 (생각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일출을 보기 전에 항상 '해가 뜨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와 같은 뜬구름 잡는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점점 현실을 아는 나이가 되니까, 그런 다짐들이 하등 쓸모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그런 내가 정말 안타깝다고 느낀다.

 

올해로 반오십을 맞이하는 내 소원은 다음과 같다.

1. 취업하기

2. 가족들, 친구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건강하기

3. 세계 평화

 

늘 가족들과 1월 1일을 보내다가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했다. 나에게 새해는 그 어떤 날보다도 의미 있는 날이기에, 조건 없이 나를 아껴주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다.

 

그런 나만의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친구와 맞이한 새해였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랜기간 맞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2026년의 첫 깨달음이, 올해의 나를 {쉬운 마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으로 가꾸어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정을 소화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함께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야말로 축복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1분 1초를 아끼는 계획형 친구와 함께 한 첫 즉흥 여행은 서로에게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 된 듯하다.

 

'10년지기 친구'라는 존재로부터 얻은 위로는 근심걱정으로 가득찬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이 글을 빌려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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