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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작년 여름, 나와 취향이 가장 비슷한 친구와 경남 하동에서 2박 3일간 머물렀다. 당시 자격증 시험과 길었던 대외활동 일정을 끝내고 여러모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온기 가득한 사람들과 짧게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짜증이 나거나 화를 표출하고 싶을 때면, 하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함을 떠올려 보곤 한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버스 안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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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은 다름 아닌 버스 안내양이었다. 하동은 젊은 청년들보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분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시골 분위기를 풍기는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께서 마을버스를 주로 이용하시는 듯 보였다.

 

터미널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탔더니, 맨 앞자리에 어떤 젊은 여성분께서 우리의 목적지를 물으셨다. 처음에는 그분이 우리와 같은 승객인 줄로만 알았기에, 목적지를 묻는 그녀의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버스 운행이 시작된 후에야 그분이 버스 안내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버스를 타고 내리는 어르신분들이 안전하게 버스에 승차하실 수 있도록 부축해 드리고, 귀가 어두우신 분들을 위해 큰 목소리로 정류장의 이름을 외쳐주셨다. 버스 안내양의 필요를 알지 못한 채 자란 나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그토록 친절한 버스 안내양 덕분에 하동에서의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다정하고 친절하신 숙소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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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의 첫날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갔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높은 산길이라, 사장님께서 픽업 장소까지 우리를 데리러 와주셨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는 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떠한 의도나 목적이 없이 주고받는 사장님과의 대화가 소박하지만 알찼던 기억이 난다.

 

이틀 중 하루를 묵을 숙소로 이곳을 정한 이유는 숙소의 분위기가 좋아서도 있지만, 숙소 이름의 의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도시고양이생존연구소',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숙소의 이름처럼 이곳에 머무는 숙박객을 '도시고양이'라고 칭한다.

 

아스팔트와 회색 건물로 가득 찬 도시를 떠나 온 도시고양이들이, 초록으로 둘러싼 하동에서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어가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숙소 주변은 온통 차밭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고요하고 차분하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곳을 찾은 사람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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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일정은 하동 화개면에 위치한 쌍계사에서의 템플스테이였다. 예전부터 템플스테이 체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음 맞는 친구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절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수칙 등의 안내를 받기 위해 쌍계사 내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우리와 같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오신 어르신 두 분이 계셨다. 그리고 산을 오르느라 지친 우리를 본 어르신 한 분이 어색해하는 친구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젊은 애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 쌍계사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왔냐며 질문 한 줄을 건네셨고, 그렇게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후 개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님께 여러 수칙들을 안내받고 배정받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자 개인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6시쯤에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가졌다. 작은 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스님께 인생 조언을 얻는 시간이었다. 살아온 환경도, 나이대도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걱정과 고민을 품고 이곳 쌍계사로 모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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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하동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쌍계사 뒷산에 있는 불일폭포로 향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폭포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지만, 비가 온 만큼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산을 오르는 동안 쌓인 모든 피로를 씻겨주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 짐을 챙겨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함께 템플스테이를 했던 분들께서 우리를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젊은 나이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절까지 온 것이 기특하다며, 이곳에서의 머묾이 헛되지 않음을 다시금 알게 해주셨다.

 

*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지쳐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주고받은 짧은 문장들 틈에서 소박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2박 3일간의 모든 우연과 만남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배낭 가득 담아 간 짐은 어깨가 빠질 정도로 무거웠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내 몸과 마음은 어쩐지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스물넷, 그 시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었던 앳된 깨달음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여행을 함께 해준 친구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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