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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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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기 전부터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시대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정의하는 성공의 궤도에 남들보다 빨리 오르기 위해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바삐 재촉했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진짜 소중한 것들을 무심코 건너뛰며 살아왔다. 예를 들어 사랑, 평화, 낙관, 다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가끔은 오히려 그 실체를 의심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어지럽고 속 시끄러운 세상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마치 동화에만 존재하는 환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살아가지 못하고,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생각보다 세상이 멈춰서서 볼 만큼 아름답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내가 무언가 중요한 걸 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이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게, 이 미친 세상을 견딜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마냥 아름답거나 우리에게 늘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과 직면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부딪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상에 잘게 부스러진 채 존재하는 희망과 사랑의 티끌들을 성실히 모아나가며 주변에 전파한다.


현재 홍대 인디신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밴드, 신인류의 첫 정규앨범 <빛나는 스트라이크>는 여느 비관주의자들과 달리 사랑의 힘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이들이 그동안 정성스레 채집해 온 일상 속 소소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엮어낸 결과물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Intro: 빛나는 스트라이크’는 마치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해지는 세상을 청각화 한 것 같다. 태풍의 소용돌이처럼 강렬한 느낌을 주던 선율은 화창하고 경쾌한 보사노바로 급선회하는데, 그 이음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전환된다. 다음 곡인 ‘리턴 투 피크닉’의 후주에서 인트로의 보사노바 선율이 또 한 번 흘러나올 땐, 뜻밖의 곳에서 친구를 마주쳤을 때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대는 아침이 두려워 / 나를 붙잡고 우는데 / 그 떨리는 새로 / 흔들리는 불빛이 보여요 / 찬란하게” 보컬 신온유의 새벽이슬과도 같은 촉촉한 목소리는 “옷이 젖어 날지 못한 새”인 우리를 감싸안으며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속삭여준다. 그의 시선은 우리가 지닌 각자의 고유한 불빛에 머무는데, 보통 자신의 불빛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그의 다정한 응시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다가온다.


살랑거리는 봄바람 같은 선율 위로 사랑에 빠진 자의 벅차오르는 설렘을 담은 ‘미완성 효과’와 짙은 사랑에 홀려 어질어질한 마음을 노래한 ‘이상하고 아름다운’은 듣기만 해도 누군가를 한껏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랑 노래다.

 

이어지는 ‘Huf’은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앞으로 직진하기 바빴던 우리의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는 곡이다. 신인류는 무심히 건너뛰기 일쑤였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움큼 집어다 우리의 손안에 가득 쥐여준다. 이를테면, 찬란한 붉은빛으로 물든 노을, 기분 좋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밤하늘을 빛내는 달 그리고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내 모습까지. 탁 트인 초원이 연상되는 시원하고 푸릇푸릇한 사운드는 점점 더 고조되며, 쨍한 햇살을 담은 기타 연주로 마무리돼 듣는 이의 마음을 한껏 벅차오르게 만든다.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힘차게 이 세상의 모든 청춘을 응원하던 신인류는 마침내 ‘정면돌파’를 통해 찬란한 정점을 찍는다. 이 곡은 절대적인 응원이 필요한 우리 인생의 한순간에 힘차게 울려 퍼질 사운드트랙으로서 손색없는 곡이다. “마음 둘 곳 정할 데가 어디도 없어” 입술을 깨물며 나를 괴롭히고 원망해 왔던 시간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더 이상 심각해지기보다 신나고 밝은 선율에 맞춰 자유롭게 춤추기를 선택한다. 톡톡 튀는 별사탕 같은 신시사이저 리듬에 맞춰 “정면돌파하러 간다 / 우리들의 화음으로”를 반복해 말하는 신인류의 경쾌한 외침은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넉넉히 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어지는 ‘Kaibutsu’와 ‘두 개의 제안’은 그동안 신인류가 보여준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사운드와 달리 독특하고 강렬한 느낌을 선사하는 곡으로, 그들의 또 다른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화사한 색채의 그림으로 채워진 동화 같은 ‘용이 되고 싶은 아이’를 지나, 신인류 특유의 부드럽고 유려한 사운드가 잘 담긴 ‘송곳니’에 도달하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해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대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대체로 불안하고, 이따금 낙관적인 29살에게 바치는 노래다. 처음으로 멤버 모두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여 아름다운 화음을 낼 때, 그 화음은 우리 마음속 어둠을 몰아내는 곱고 부드러운 빛이 되어준다. 마지막까지 든든한 사랑을 보여준 신인류의 음악은 많은 걸 놓치고 건너뛰며 살아왔던 우리에게 빛나는 인생의 한순간을 선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소리높여 외치는 사랑에 기대어, 또 다른 내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신인류의 음악 곳곳엔 다시 기운을 내어 잘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어떤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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