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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 글을 열며,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 Carr)의 말이다. 이는 역사가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의 사실들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지금의 우리 모습이 결정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미술사의 거울은 잔인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식민지 지배는 우리 미술의 자생적 발아를 억눌렀고, 전쟁과 분단은 그 허리를 물리적으로 끊어놓았다. 뒤이은 유례없는 압축 성장은 우리로 하여금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랫동안 ‘근대’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잔재로, ‘현대’를 서구에서 급조된 이식물로 여기며 스스로를 ‘뿌리 없는 존재’로 규정해 왔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가 통제되고 단절된 채, 우리는 미학적 미아 상태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우진영의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바로 이 파편화된 거울 조각들을 ‘잇기’라는 미학적 바느질을 통해 하나의 서사로 봉합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100여 년 전 경성의 화가들이 내뱉은 숨결이 어떻게 오늘날 서울의 캔버스 위로 이어지는지 추적한다. 파편화된 사실들에 숨을 불어넣어 '잇기'를 시도하는 이 행위는, 결국 현재의 한국 미술이 서구의 모사품이 아닌 치열한 역사의 주체적 산물임을 증명하는 역사가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우리 미술의 온전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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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된 근대, 한국 미술의 독자적 문법이 시작된 곳


 

그간 한국 근대 미술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 미술의 불완전한 복제품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우진영은 이 시기를 우리만의 독자적인 문법이 만들어진 과정으로 다시 읽어낸다. 당시 화가들에게 도쿄미술학교의 화풍이나 ‘선전’의 기준은 정답이라기보다, 자신의 세계를 짓기 위해 잠시 활용한 도구에 가까웠다. 그들은 일본식 외광파라는 틀을 깨고 나가며 한국 미술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인성은 일본 심사위원들이 선호한 ‘조선색’의 틀을 오히려 이용했다. 그는 강렬한 빨간 흙과 평면적인 화면 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풍경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향토적 소재를 근대적인 조형 실험으로 바꾼 시도였다. 구본웅 역시 일본의 매끄러운 화풍을 거부하고 거친 필치를 선택했다. 그는 인물의 외형 대신 내면의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색채 대비를 극대화했다. 주류의 공식을 이탈한 이런 작업들은 한국 미술이 스스로 쟁취한 자율성을 보여준다.


김환기와 이쾌대에 이르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김환기는 서구 추상 미술의 원리 속에 한국 자연의 리듬과 선을 담았다. 이쾌대는 유화라는 낯선 매체로 한국인의 신체성과 전통 색채를 표현했다. 이들은 일본이 가르쳐준 형식을 넘어 우리 고유의 감각을 화폭에 직접 기입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기술적 변주들은 한국 근대 미술이 독자적인 성격을 형성했음을 증명한다.


결국 이들의 작업은 정답을 베끼지 못한 실수가 아니라, 스스로 공식을 깨뜨리며 만든 새로운 기록이다. 우리가 이 근대 미술을 긍정하고 현대와 잇기 시작할 때, 한국 미술은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 아닌 100년 전부터 이어진 투쟁의 산물이 된다. 이 뜨거운 기록들이 단절된 줄 알았던 우리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묶어준다.

 

 

 

# 사라진 작가들을 우리 미술의 계보 안으로 초대하기


 

한국 미술사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허리가 끊겼다. 북을 선택한 작가들의 이름은 수십 년간 공식 기록에서 삭제되었고, 그 자리는 거대한 기억의 공백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미술의 무의식 속에 유령처럼 머물렀다. 이름은 부를 수 없었어도 그들이 남긴 화풍과 조형적 특징은 후대 작가들에게 일종의 유전차처럼 전해졌다.


예를 들어 앞서 설명한 이쾌대의 경우가 있다. 해방기 남한에서 그가 그린 ‘군상’ 연작에는 역동적인 신체 묘사와 서사적인 구도가 담겨 있었다. 북으로 간 이후 그는 인민의 삶을 그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용해야 했지만, 자신만의 필치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주제는 국가의 요구에 맞게 변했어도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이나 인체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했다. 이념의 제약 속에서도 그의 예술적 기량은 소멸하지 않고 북한 미술의 기틀을 닦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쾌대가 남긴 흔적은 분단의 벽이 예술의 생명력까지 가로막지는 못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현대 작가들은 이 지워진 이름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내어 대화를 시도한다. 박찬경은 영상 작품 ‘시민의 숲’에서 역사 속 희생자들을 유령의 행렬로 묘사했다. 이는 이쾌대가 그렸던 집단적인 군상의 에너지를 현대적인 애도로 변주한 것이다. 노순택 역시 분단이 강요한 망각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그는 훼손된 영정사진을 통해 기록이 사라지는 속도를 추적하며, 공식 역사에서 배제된 진실의 파편을 수집한다. 이들은 직접 겪지 않은 과거의 고통을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끊어진 미술사를 잇는 작업은 이 유령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환대의 과정이다. 월북 작가들의 화풍을 추적하고 이를 현대 작가들의 작업과 연결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미술이 잃어버린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지워졌던 작가들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성취를 현대미술의 지형도 안에 놓을 때, 우리는 분단이 낸 구멍을 비로소 채울 수 있다. 과거의 유령을 현재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이 행위는 우리 미술의 미래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 단절된 과거를 하나의 이야기로 꿰매는 일


 

비평가의 역할은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흩어진 사실들을 모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일, 즉 단절된 시간을 서사로 바꾸는 과정은 비평가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 가깝다. 우진영의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가 보여준 시도는 그래서 의미가 깊다. 그는 부서진 거울 조각들을 이어 붙여 우리가 외면해온 미술사의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이 작업은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근대의 '오역'을 긍정하고 분단의 '유령'들을 환대한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와 현재가 끊겨 있는 상태로는 우리 미술의 미래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의 이론을 빌려와 우리 미술을 설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작가들이 겪은 치열한 고민과 이탈의 흔적을 직접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만의 미학이 세워진다. 파편화된 기록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매는 이 '미학적 바느질'은 우리 미술이 서구의 모사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보자. 역사는 현재와 과거가 나누는 대화다. 그동안 우리가 침묵하거나 부정했던 과거의 조각들을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올 때, 한국 미술은 뿌리 없는 존재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100년 전 경성의 화가가 고민하며 그었던 선과 오늘날 서울의 캔버스 위에 놓인 점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 둘을 잇는 서사가 완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미술의 온전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단절을 잇는 이 길 끝에서, 한국 미술은 비로소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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