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31.jpg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결혼은 내게 나와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단순히 사회 초년생으로서 결혼한 자금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맥락과 타고난 기질을 살펴봤을 때 앞으로 혼자 살아갈 내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어떠한 환상이나 바람이 없었던 나는 혼자 살아가는 미래의 내 모습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뀔 때가 되니, 슬슬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슬며시 앞서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는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 많지 않은 데서 오는 막막함도 있었다. 세상에는 기혼 여성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해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 특히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중년 비혼 여성의 삶을 다룬 ‘에이징 솔로’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혼삶’의 이상적인 지침서였다.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란,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저자는 40~64세 에이징 솔로 여성 19명을 만나 외로움과 친밀감, 돌봄, 노후, 죽음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에이징 솔로와 외로움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혼자 사는 중년의 삶은 외로울 것이다.’ 가족주의가 강력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보면 항상 ‘외로움’, ‘고독’, ‘쓸쓸함’을 떠올린다. 나는 남들보다 외로움을 덜 느끼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줄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나 역시 나이가 들면 혼자 사는 게 외롭고 적적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펴낸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걱정거리로 ‘외로움’을 높게 꼽은 1인 가구는 30대 남성이 1위, 이어 20대와 40대 남성이 2위, 5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각각 3위였다고 한다. 40~50대 1인 가구 여성들은 ‘외로움’을 4위로 꼽아, 상대적으로 그 순위가 낮은 편이었다. 저자가 인터뷰한 비혼 여성들도 외로움을 삶의 가장 큰 문제로 꼽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로움을 이겨내야 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외로움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삶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하거나, 고립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이라 여겼다. 견딜 만한 외로움을 오히려 즐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의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꼭 싱글인 사람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였다고 한다. 혼자 살더라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고 느슨하게나마 사회적 유대를 계속해서 형성한다면, 외로움이 혼자 사는 삶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면 아플 때 서럽다’는 편견

 

외로움에 이어 사람들이 느끼는 두 번째 ‘혼삶’의 두려움은 바로, 내가 아플 때 나를 간병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큰 병은 막을 길이 없기에 그 불안은 더 커진다. 이 책에선 그런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으로 국내외 다양한 ‘돌봄 품앗이 모임’을 소개한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비혼 여성인 친구의 암 투병을 돕기 위해 ‘팀K’를 만들었다. ‘팀K’ 구성원들은 요일을 정해 각자 건강식을 만들어 아픈 친구와 함께 나눠 먹었고, 병원 입원과 통원 과정을 살뜰히 챙기며 도왔다고 한다. 미국의 ‘루시의 천사들’이나 한국의 ‘건강 두레’ 돌봄 네트워크 역시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아픈 사람을 돌보고, 필요할 땐 도움을 받기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1인가구 병원 안심동행 서비스’라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병원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동행인을 붙여 병원 이동부터 수납이나 진료를 돕는 서비스다.


돌봄 연결망이나 관련된 정부 지원 사업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그만 관심을 기울이면 돌봄을 주고받을 기회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 돌봄이라고 하면 가족이나 전문 간병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지금, 앞으로는 혈연이나 가까운 관계를 넘어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서로를 돌보는 사회가 당연시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의 꼴을 봐주고 사는 공동체”


 

나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앞으로 원가족이 아닌 타인과 한집에 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타인과의 유대감까지 놓치고 싶진 않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같은 건물이나 동네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전주시의 1인 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 ‘비비(비혼들의 비행)’는 나의 이런 행복한 상상을 무려 20년째 현실로 구현하고 있는 모임이다.


비비는 2003년 30대 비혼 여성 6명이 모여 만든 전주여성의전화 소모임에서 시작됐다. 이후 2006년부터 구성원들이 같은 공공임대 아파트로 각각 이주하면서, 1인 가구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금까지 모여 살고 있다. 비비는 크게 세 조직으로 나뉜다. 처음 비혼모임을 만든 6명이 속한 중심 그룹 ‘비비’, 1인 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로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 그리고 여성 중장년 1인 가구 공동체 주택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비비사회적협동조합’이 그것이다. 여기에 느슨하게 연결된 같은 아파트 이웃으로 구성된 주민 모임까지 있다.


이들은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하던 시기에는 서로의 집 앞에 음식을 갖다 놓기도 하고, 아픈 구성원이 생기면 병원을 함께 가주는 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떤 규칙이나 회비, 정기적인 모임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네트워크가 2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데는 공동체의 중심에서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선 ‘비비’의 역할이 컸다.


 

“같이 어울려 살려면 ‘반응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문제를 이야기하고 질문을 하면 어떤 상황이라도 공간비비의 상근자인 우리 셋 중 하나가 그 문제에 대답했고, 작은 이슈도 관리 사무소와 조율하면서 전체의 문제로 환원해 해결하는 것을 직접 봤으니까, 모이라고도 하지 않고 돈을 내라고 하지도 않는데 이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걸 느끼는 거죠. 안전하게 같이 살고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는 거고요.”

 

 

각자 알아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성실히 해내면서,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동체의 모습 같았다. 이들은 한 친구가 암 투병을 하게 되자 아픈 몸으로 사는 것에 관해 함께 공부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눠 가지기도 했다. 비비의 구성원들이 이렇게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말대로 비비가 ‘서로의 꼴을 봐주고 사는 공동체’여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혼자인 상태가 익숙하고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한다. 나 역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데 예민한 성격이라, 최대한 타인에게 신세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의 이런 방어적인 태도가 어쩌면 사람들과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약한 모습을 드러낼 줄 알고 적당히 폐도 끼치며 살아야, 상대가 나를 더 편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비는 1인 가구일수록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히 받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오랜 습성을 한 번에 바꾸긴 어렵겠지만, 앞으로는 용기 내서 나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고 지인들에게 작은 부탁쯤은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에이징 솔로’에는 이 밖에도 비혼 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귀한 인생 팁이 가득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혼자 늙어가는 것에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던 걱정과 문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가는 여성들을 보며, 혼자 나이 들어가는 게 예전처럼 더 이상 두렵지 않아졌다. 무엇보다 ‘비혼’이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며 세상과 느슨하게 연결된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내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삶의 형태를 새롭게 발견한 지금,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