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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거리를 통째로 옮겨온 전시장 - 뱅크시: Still Here [전시]

익숙한 이미지부터 거리의 거친 벽면까지, 공간과 큐레이션으로 만나는 《BANKSY: Still Here》

by 김민주 에디터
2026.08.11 11:35

뱅크시는 원래 벽에 그림을 그리던 예술가였다. 런던의 뒷골목, 팔레스타인의 분리 장벽, 우크라이나의 폐건물. 그가 그림을 그린 자리는 늘 누군가의 삶이 지나가던 자리였고, 그 벽은 갤러리가 아니라 거리 그 자체였다.

 

그런 그의 작품을 지금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전시는 '보는 재미'에 관해서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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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익명이라는 가면에서 출발해 벽과 저항, 유머와 풍자, 미술시장의 아이콘이 된 뱅크시, 평화의 메시지를 거쳐 다시 가면으로 돌아오는 여섯 개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 순서는 단순한 설명의 나열이 아니다. 방이 바뀔 때마다 조명과 벽 색, 배치, 음악까지 통째로 달라지면서 관람객은 한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지루할 틈 없는 공간 연출


이 전시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는 점이었다. 거리의 거친 벽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첫 섹션에서는 실제 골목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몰입감이 들었다. 뱅크시에게 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나는 장소였다는 걸 생각하면, 작품만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것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그의 작업 방식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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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공간으로 넘어가면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무거운 메시지를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비틀어 보여주는 뱅크시 특유의 태도가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다 다시 정돈되고 세련된 공간으로 들어서면, 소더비 경매장 파쇄 퍼포먼스나 디즈멀랜드 프로젝트 같은 사건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미술시장과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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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간마다 톤이 확확 바뀌기 때문에, 100여 점에 가까운 작품을 보면서도 시각적으로 지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해서 걸을 수 있었다. 벽화 작품들이 액자에 담긴 채 전시장 벽면에 프린팅과 함께 그대로 붙어 있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벽에서 시작된 예술'이라는 원래 맥락이 눈앞에서 그대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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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마다 하나의 완결된 세트처럼 연출된 구간이 등장하는데,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다른 구역과 완전히 분리된 느낌을 준다.

 

작품을 하나씩 감상하며 이동하는 전형적인 전시 동선이라기보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다가와서 전시를 '걷는다'기보다 여러 장면을 차례로 '경험한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영상이 나오는 구간에서는 조명을 낮추고 시선을 화면 쪽으로 자연스럽게 모아둔 동선도 눈에 띄었다.

 

흘낏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자리를 잡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유화가 아닌, 도장처럼 강렬한 이미지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붓의 흔적이 살아있는 유화가 아니라, 도장을 찍어낸 듯한 평면적인 질감. 뱅크시 특유의 스텐실 기법이 주는 인상이 가까이서 볼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찍어내고 반복할 수 있는 이미지라는 점은 거리에서 작업해야 했던 그의 방식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잘 그린 그림'이라는 감상보다는 '강하게 남는 이미지'라는 인상이 훨씬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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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는 단순해 보였던 형태가 가까이 갈수록 얼마나 명확한 실루엣과 대비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다. 거리에서는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야 했던 이미지를, 전시장에서는 눈앞에 서서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차이가 오히려 새로운 감상을 만들어냈다.

 

 


전시를 나서며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여섯 개의 공간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뱅크시의 작품을 많이 몰라도 상관없다.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라도 섹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세계에 스며들게 되고, 이미 좋아하던 사람에게는 뉴스나 SNS로만 접했던 이미지를 실제로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다.

 

사진을 찍고, 꾸며진 공간을 구경하고, 영상을 보고,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방식이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감상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가볍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도 폭넓게 권할 만한 전시였다.

 

거리에서 시작된 그림을 전시장 안에서 만난다는 게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공간 연출과 큐레이션이 그 간극을 적극적으로 메워준다. 전시장을 나선 뒤에는, 화면 속에서 몇 초간 스쳐 지나갔던 그림들이 이제는 하나의 공간과 장면, 그리고 그 안에서의 경험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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