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예술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신원미상의 백인 남성이자 국경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실 비판적인 그림을 몰래 그리고 다니는, 일명 ‘아트 테러리스트’.
현실을 기발하게 꼬집는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의 완성도로도 인기를 얻었지만, 그를 향한 유명세와 주목도에 ‘익명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며 철저한 익명성을 유지하는 얼굴 없는 예술가. 그럼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작품을 만든 사람이 아닌 ‘작품’을 보게끔 하는 장치.
그러나 뱅크시의 전설 같은 익명성은 깨졌다. 올해 3월경,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수십 년 동안 신원을 숨긴 채 활동해온 뱅크시의 정체를 밝히는 탐사 보도를 게재했으며, 수년에 걸친 조사 끝에 한 남자를 지목했다(그 이름을 여기서 적지는 않겠다). 뱅크시 측이 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이라는 타이틀은 얻지 못했지만, 로이터 측이 공개한 방대한 자료들 덕분에 사실상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익명 활동가의 가면을 구태여 부수어보고자 하는 심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열지 말라고 하면 더 열어보고 싶어지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겠지만,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남는다.
전설적인 거리 예술가인 뱅크시에 관한 전시는 지금껏 국내에서도 몇 차례 열렸던 적이 있다. [THE ART OF BANKSY], [REAL BANKSY], [Who is Banksy] 등. 그러나 그 후로 뱅크시의 정체가 폭로되고 많은 사람이 그와 그의 작품에 관한 우려를 쏟아내자, 이번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굳건한 이름으로 돌아왔다. [뱅크시: Still Here]. ‘뱅크시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베일은 벗겨졌다.
정체보다 강한 상징, 뱅크시의 끝나지 않은 메시지!
그의 진짜 얼굴이 무엇이든,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가치’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뱅크시의 본질을 이해할 단 하나의 전시!
이번 전시는 더현대 서울 ALT.1에서 11월 3일까지 개최된다.
![[크기변환][포맷변환]뱅크시_Still Here_포스터_26061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158_vkakuauk.jpg)
뱅크시는 청개구리다. 남들이 하는 것을 반대로 하려고 하고, 생각도 뒤집어서 하려 한다. “예술은 위로받지 못한 자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로 명명한 그의 범상찮은 모토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는 벽은 거리 예술가인 그에게는 캔버스가 된다. 영국의 뒷골목에서부터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까지. 아무리 위험한 곳이어도 가리지 않는다. 권력과 통제, 차별과 경계를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인 ‘벽’에 그 특유의 블랙 유머를 담은 그림을 그려두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벽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막막하고, 높고, 절대 부서질 일 없는 위압감을 주는 구조물에서 손가락질하며 웃을 수 있는 거대한 도화지로.
미술관이나 제도권 공간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눈길을 주는 길거리의 벽에 그림을 남기기 시작한 것도 최대한 널리 메시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리라.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60813_20225837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224_reahhvge.jpg)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한복판의 벽에도 그는 그림을 그린다. 우크라이나가 우표로 발행하기까지 한, 일명 ‘푸틴 엎어치기’ 벽화. 무기로 파괴된 황량한 건물 벽이 한순간에 시선을 환기하는, 그의 말대로 ‘위로받지 못한 자들을 위로하는’ 작품이 된다.
![[크기변환][포맷변환]Girl with Balloon_Banksy.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301_fpyvmypa.jpg)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빨간 하트 모양의 풍선을 놓친 어린 소녀가 애절하게 손을 뻗는 모습이 사랑과 희망을 상징한다. 뱅크시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로, 2002년 런던의 거리 벽화로 처음 등장한 뒤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었고, 뱅크시 역시 해당 작품을 시리아 내전이나 영국 총선 등 다양한 곳들에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해당 그림이 2018년 소더비 경매장에 출품됐을 때 일어났던 퍼포먼스 때문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60813_20341943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546_mpoaxfky.jpg)
당시 작품이 누군가에게 낙찰되자, 그 직후 작품에 미리 설치되어 있던 파쇄기가 작동을 시작하며 약 20억에 낙찰된 그림을 아래부터 파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림의 절반 정도를 파쇄하고 끝난 이 일은 뱅크시가 사전에 직접 준비한 퍼포먼스로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예술 시장에서의 가치 체계와 예술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자 했던 새로운 시도였다. 그러나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경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탄생한 최초의 작품이 된 그림이 2021년 소더비 경매에서 원래의 가격보다도 훨씬 높은 약 356억에 재낙찰되며 결국 씁쓸한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_Banksy.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612_uxlwckpr.jpg)
뱅크시 작품들을 꿰뚫는 가장 큰 키워드는 ‘저항’이다. 그래서 전시를 보던 내가 그의 이미지를 청개구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혹은 불편하지만 순응하고 넘어가는 주류의 파도를 거스르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그의 저항 방식은 유쾌하다.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우스꽝스럽게 살짝 비튼다. 그 약간의 블랙 유머가 관람객들로 하여 한순간 피식 웃음을 나게 하고, 그 순간 뒤로 오래도록 웃음과 작품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그림은 또 하나의 뱅크시의 대표작인 [러브 이즈 인 디 에어(꽃을 던지는 남자)]다. 2003년 당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장벽 건설을 둘러싸고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팔레스타인의 도시 베이트 사후르의 한 차고 벽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갈등, 분단, 불화, 전쟁을 상징하는 장벽 근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시위자는 무언가를 힘껏 던지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그가 무기를 던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상을 찌푸린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화염병이 아닌 꽃다발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Bomb Love(Bomb Hugger)_Banksy.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13203650_kxcpdbhg.jpg)
비틀고, 꼬집고, 비판하고, 고발하고, 뒤집고. 뱅크시는 순응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길거리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기를. 그리고 인식하고, 생각하고, 의식하기를. 그래서 약간의 변화라도 생기고, 그것들이 점점 모여서, 결국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뱅크시 is still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