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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존재 자체로 모순을 말하는 전시 - 뱅크시 : Still Here [전시]

뱅크시의 비판과 마주하기

by 손가인 에디터
2026.08.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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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유명한 예술가다. 그 사실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뱅크시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유명한 런던 소더비 경매 사건 이후부터였다. 세상은 종종 뱅크시의 정체를 추론하려 떠들썩해질 때가 있었고, 현재까지 그는 '영국 출신의 백인 남성'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뱅크시에 대해 알게 된 뒤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의 익명성이 갖는 상징이 흥미롭기도 하고 가끔은 조금 부럽기도 했다.

 

'익명'이라는 것은 어떤 스테레오타입이나 편견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다 자유롭고,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뱅크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익명성이 그 모든 방식을 동원해 누구보다도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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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뱅크시는 예술가다.

 

불법적인 활동 방식을 지적하는 이들은 그를 범법자라 규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그를 사회운동가로 부른다. 그리고 뱅크시 스스로는 자신을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소개한다.

 

그 모든 것이 뱅크시이다. 그 모든 것이 그를 뱅크시라는 예술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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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뱅크시 : Still Here>은 익명성이라는 "더욱 강력한 상징" 하에서 그의 작품들이 담긴 메시지를 되짚어가는 여정이다. 여느 전시가 그렇듯 이 또한 여러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정해진 섹션보다는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닿은 작품들 몇 개를 소개함으로써 전시에 대한 감상을 회고하려 한다.

 

 

 

Because I'm Worthless

(나는 쓸모없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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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에 따르면 "뱅크시의 작품 세계에서 쥐는 사회에 존재하는 익명의 개인이자 제도와 권력 밖에서 활동하는 거리 예술가를 상징"한다. 후자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지만, 익명의 개인이 쥐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은 꽤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될 수 있는 평범한 개인. 그리고 이미 '익명의 개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로서 지금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

 

요즘 진로 고민과 취업 시장으로 인해 심란하기 때문일까. 쥐가 들고 있는 피켓의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와도 작은 회사 한 번 들어가기 힘들다는 뉴스들, 몇 번이고 불합격 통보를 받은 대외활동들이 생각났다. 단편적인 정보로 쓸모가 규정되는 것 같던 감각이 떠올랐다. 모두가 경력자를 원하면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한탄. 이런저런 자격증을 손에 쥐고도 불안해하는 또래의 대학생들.

 

이 작품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우리'가 생각났다. 누군가에 의해 교묘히 쓸모없는 존재로 포장되는 어리고 서툰 초년생들.

 

 

 

Christ with shopping bags

(쇼핑백을 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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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독교인들은 다소 거북해할 만한 그림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친척 중에 신실한 기독교 신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충격이 강한 만큼, 더더욱.

 

뱅크시는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캡션은 해당 그림이 "기독교의 본래 가치가 소비문화에 의해 가려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물론 뱅크시의 맹렬한 비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또다른 그림은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소비의 대상이 되는 순간"을 정확히 지목한다. 저항의 상징이 결국 자본주의에 편입될 때. 떠오르는 사례가 있지만 조용히 지나친다. 함부로 무언가를 언급했다간, 그것을 집어삼킨 자본주의가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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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alm

(네이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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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팜탄 공격으로부터 도망치는 소녀의 옆에서 기괴할 정도로 웃고 있는 캐릭터들.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미화하려는 것처럼. 혹은 달아나려는 아이를 연행해가는 것처럼. 원래의 사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본래 저 소녀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어렴풋이. 어떤 언어로 표현될 종류의 것이었는지.

 

사진에서의 소녀는 겁에 질려 울부짖고 있었다. 이 그림도 언뜻 보면 그렇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캐릭터들과 함께, 혹은 그들에 의해 강제로 기괴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쟁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들은 여럿이었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사진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목격'했던 사건이 차용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나.

 

이외에도 평화에 대한 작품들은 제일 인상적인 섹션이었다. 하물며 벽면에 새겨진 뱅크시의 말부터가 그랬다.

 

"전쟁을 벌이는 자들과 싸워라. 그들의 전쟁과 싸우지 말고."

 

갈등과 분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장소에 등장했다는, 폭탄 대신 꽃을 던지는 모습의 시위자. 천안문 시위를 연상케 하는 탱크 앞에 '골프 세일' 피켓을 들고 막아선 사람. 웃는 이모티콘 아래에서 전혀 웃고 있지 않는 수많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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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으로 살고, 영웅으로 죽어라"

 

- 뱅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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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여느 전시들이 그렇듯 작은 기념품샵이 있었다. 그제서야 문득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뱅크시의 전시가 소비 자본주의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백화점에서 열린다는 것은 사실 처음부터 아이러니 아니었을까. 뱅크시가 들으면 흥미로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념품샵에서 그냥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엽서 다섯 장을 골랐고, 그곳에서 만 원을 결제했다. 마지막까지 뱅크시의 뜻에 동참지 못해 미안하고도 유쾌한, 역설적인 감정이 들었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뱅크시의 활동 또한 멈추지 않는 거겠지.

 

그럼에도 뱅크시를 응원한다. 그러므로 더욱 존경하게 된다.

 

백화점을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곳의 장소성과 함께 완성되는 그림들이 (때로는 영상과 함께하지만) 단지 평범한 전시실 벽에 평화로운 작품으로서 걸려 있다면. 끝내는, 존재 자체로 모순적인 전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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