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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는 이미 정해져 있던 존재 [사람]

우리는 어디까지 타고났고, 어디까지 바뀔 수 있을까

by 유예현 에디터
2026.09.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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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직캠, 각종 하울 영상, 드라마와 예능 클립으로 가득한 내 유튜브 피드에서 흥미로운 제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Can you escape the person you were raised to be?’ 자라면서 형성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소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검색해 보니 제미나이는 이 책을 ‘인간의 원죄와 자유의지, 선과 악의 갈등을 다룬 존 스타인벡의 대표 대작’이라 소개한다. 영상을 틀자마자 이런 질문이 나온다.

       

      “Are we born into who we are or do we get to choose?”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까?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이 영상을 끝까지 보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상 속 질문은 계속 나를 찌른다.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주제일 테다. 최근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탓일까.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얼마 전 에일린 구(Eileen Gu)의 기자회견 영상도 보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질문을 받으면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고 자세하게 답할 수 있느냐고 묻자, 에일린 구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기를 쓰고 자신의 사고 과정을 분석하며, 생각하는 방식도 고쳐 나간다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지, 어떻게 생각할지 조절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될지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거죠.”

       

      그의 말에 따르면 ‘나’를 바꾼다는 건 막연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그 방식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궁금했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다룰 수 있는 태도는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 어디선가 운동선수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훈련으로 다져진, 건강한 ‘해야지’ 정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몸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하기 싫은 일 앞에서도 일단 해내는 태도가 몸에 배고, 그것이 운동 밖의 삶에도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에일린 구가 자신의 생각을 분석하고 바꿔 나갈 수 있는 데에도 오래전부터 해 온 훈련이 한몫한 걸까. 스스로를 바꾸는 능력마저 이미 지나온 시간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엄마는 사주를 오랫동안 공부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 사주에는 물도 많고 불도 많아서 속이 늘 복잡하고 시끄럽다고 한다. 사유의 속성을 지닌 물과 행동의 속성을 지닌 불이 부딪혀, 생각 하나를 마치거나 행동 하나를 시작하기까지도 내 안에서 사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물론 사주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엄마는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나’의 일부는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만 같다.

       

      한때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전의 경험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고, 진짜 나를 만든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경험들이라고 여겼다. 전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졌으며 넉살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은 벽에 부딪힌 듯한 순간이 온다. 애써도 바뀌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 부러워진다.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지? 나는 어디까지 바뀌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까.

       

      처음에 언급했던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How much of who we become was already in motion before we had any say in it?”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기 전) 언제부터 발동되기 시작했을까?

       

      “What were you given, what happened to you, what have you inherited?”
      너에게 무엇이 주어졌고,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What are you going to do with it?”
      그리고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게 주어진 것, 내게 일어난 일, 내가 물려받은 것.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마지막 질문은 마치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장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들을 듣다가 정주행을 두 번이나 할 만큼 좋아하는 일본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더 보이프렌드(The Boyfriend)』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하트시그널』과 비슷한 형식이지만,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출연한다. 방송의 도파민을 책임진 메인 커플 다이(ダイ)와 슌(シュン)의 대화 중, 다이는 슌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더 알고 싶어져. 왜 네가 지금의 너인지 난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어서 지금의 네가 됐을 거야. 넌 지금껏 내가 만나 온 타입과는 달라. 너도 큰일이나 심각한 일을 겪고 강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네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런 부분도 언젠가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

       

      이에 슌은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에 맡겨져 열여덟 살까지 시설에서 자랐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과거의 관계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또 다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Love Is Blind)』에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배경을 꺼내는 장면을 보았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처음에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대화만으로 데이트하고, 결혼할 상대를 찾는다. 오하이오 편에 출연한 엠마 벳싱어(Emma Betsinger)는 세 살 때 중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백인 가정에서 자랐다. 엠마는 처음 만난 상대에게 자신의 성장 배경을 곧바로 이야기하기를 망설인다. 상대가 자신을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 사실 하나로 자신을 판단할까 봐서다.

       

      슌은 다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고, 엠마는 상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눈 뒤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이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엠마의 망설임을 보며, 어떤 일이 내게 중요하다고 해서 남에게도 곧바로 그 의미를 맡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상대가 그 일 하나로 나를 이해했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까. 태어난 곳이나 자라 온 환경처럼 내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 언제, 어떤 말로 건넬지는 선택할 수 있다. 슌의 고백과 엠마의 망설임을 나란히 떠올리면, 각자의 과거를 입 밖에 내는 순간에도 ‘나’의 판단이 끼어드는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거나, 자신의 성별을 어떤 말로 밝힐지 스스로 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호칭과 분류를 자신의 말로 다시 정하는 것이다. 그에 비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닉네임을 정해야 할 때마다 한참을 고민한다. 내 이름을 내가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어렵다. 대충 하나 고르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를지 정하는 일이니까. 잠깐 쓸 닉네임 앞에서도 이렇게 오래 망설이는데, 오랫동안 불려 온 이름이나 자신을 설명해 온 말을 바꾸어 남에게 건네는 순간은 어떨까.

       

      영상은 묻는다. 너에게 무엇이 주어졌고,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마지막 질문에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하겠다. 닉네임 하나를 정하는 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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