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베스트 프렌드"가 없다 [사람]

글 입력 2022.07.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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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 옆에는 늘 "베스트프렌드"가 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베스트 프렌드 만들기”라는 큰 숙제가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면, 그의 옆에는 항상 모든 일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고, 척하면 척하고 서로를 제일 잘 아는 베스트 프렌드가 있곤 했다.


나는 늘 그게 부러웠다. 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살기를 강조했던 교육환경 탓인지, 유순한 내 성격 탓인지 몰라도, 수줍음 많고 모범생 기질의 나는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런데 나 빼고 비밀 다이어리를 공유하는 ‘절친’ 같아 보이는 친구들을 볼 때면 내심 서운했다. 나도 내 솔직한 고민 등을 이야기해야, 친구도 나에게 털어놓고 그러면 베스트 프렌드가 생기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수줍음이 많고 남의 눈치를 이렇게나 볼까.  반장으로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등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눈치를 봤다. 그런 나를 별로라 생각했다. 프레임에 갇혀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안다. 내가 깊이 있는 고민을 누군가와 섣불리 나누지 못했던 건, 실은 나의 걱정으로 그에게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은 (나름 조심스러운) 성격 탓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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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지속을 위해 내가 느껴야 했던 "불안"



시간이 지나 조금 컸고 고등학생인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것. 누군가의 정성 어린 생일 축하와 편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친구들의 생일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고 챙겼다. 친구에게 받았으면 꼭 기억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주었다. 받는 기쁨만큼 주는 기쁨도 큰 거 같고, 관계에서도 한 뼘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꼈다.


‘관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20살 초, 중반까지 관계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내심 불안했다. 내가 제때 챙겨주지 않으면, 이 관계가 끊어질 것 같은 불안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식의 원칙을 당시의 나는 관계 형성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 벽이 있는지, (아직도 용기가 부족해 본의 아니게 철벽을 치는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베스트 프렌드”가 있기를 갈망했다.


마음 맞는 친구가 내 인생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당시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이게 나의 결점일까 봐. 마음속으로만 ‘너는 내 베스트프렌드야’라고 점찍어 놓고 속으로 엄청 생각하는데, 또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봐. 또 기브앤 테이크 식이었다.

 

또다시 나는 용기가 부족한 나를 탓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다가와 내 진심을 알아봐 주기만을 바라는 소심한 나의 탓.



 

함께한 세월의 햇수가, 깊은 우정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일’을 맡았을 때는 이런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사리 분별이 분명해지고,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일로써 맺어진 관계가 좀 더 친밀해진다고 느끼는데, 그런데도 관계를 지속해야만 하는 불안은 똑같았다. 나는 누구에게 주는 사람이 아니고, 나의 ‘일’이 잘 되길 바래서 그 사람을 이용하고 마는. 그런게 더 편한 사람일까 봐.


관계가 어느새 숙제처럼 느껴지고, 형식적인 기브앤 테이크가 오가는 관계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이 시간이 깊은 우정의 척도를 증명해주지 않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세월 동안 쌓인 신뢰가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을지라도) 여러 해의 낙숫물이 결국 바위를 쪼개는 것 처럼 관계의 벽을 쪼개고 콸콸 교감이 시작되게 만들기 때문에, 쌓아온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주기적으로 교류가 오가도 진심이 배제된 채 쌓아 올린 시간으로는 결코 관계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 수 없다.




20대 후반의 나에게 "베스트 프렌드"란



또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이 된 지금의 나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실은, 나에게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나는 겁도 많고, ‘나’라는 인간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리멍덩하기 싫어서 (그러니까 남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분명 곁을 잘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 주고, 진심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나는 깨달았고, 미약하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밖을 향해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베스트 프렌드”를 갈망하지 않는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라고 점찍어 놓지 않는다. 가끔 두문불출하여 나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민폐 끼치기 싫어서 내 고민거리를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 수줍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거나 늘 붙어 다니는 식의 베스트 프렌드가 꼭 필요하지 않았다. 결점이라고 느끼지도 않았다.


“‘최고(best)만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이 되면 안 되나”


이상하게 이 시점에서, 윤여정 배우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최고가 아니어도, 유일무이한 친구는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내가 최중만 될 수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고,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주는 몇몇 나의 친구들에 나는 감사하다. 관계의 깊이는 빈도에 비례하지 않고, 농도에 비례한다. '진심'의 농도라면, 아주 적은 양이어도 필히 전달된다. 대신 마음을 전달하는 시도만 우리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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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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