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연을 볼 때 가장 자주 앉는 좌석은 앞쪽 사이드다. 물론 극장에서 최고의 자리는 맨 앞 정중앙이지만, 티켓팅 시간을 깜빡하는 정신머리와 느린 손을 가진 내가 그런 좌석에 앉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게 남은 자리는 늘 뒷줄 혹은 간간이 남아 있는 앞줄 사이드다. 나는 무대 전체 시야가 조금 가려지더라도 매번 후자를 택한다. 때때로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와 눈부신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이 너무 짜릿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일상을 주제로 한 인스타툰을 그리는 ‘분더비니’ 님은 자신을 “맨 끝줄 관객”이라고 소개한다. 이 수식어는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어떤 객석이든 좋으니 그저 내 자리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제목도 “맨 끝줄 관객”이다. 이분의 인스타툰을 오랫동안 봐 온 나는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장을 넘기면서, 극장 앞줄 사이드에서 일어나 맨 끝줄에 앉은 분더비니 님의 옆자리로 가 앉아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극장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았다.
분더비니 님은 자신이 처음 ‘관객’이 되었던 시간을 필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계속해서 객석에 앉아 오면서 느꼈던, 연극과 뮤지컬이 가진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조명이 스르륵 천천히 꺼질 때, 그 암전 속에서 그간 소란했던 마음들 역시 함께 꺼버린다. 그러고는 극장 안에서 다시금 새로운 힘을 충전한다. 서로를 믿고 몸을 내던질 수 있는 곳. 그 반동으로 다시 따뜻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곳. - 22p
최근에 뮤지컬 <앤>을 관람했던 날을 떠오르게 했던 문장들이었다. 그날 공연이 시작하기 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다 심란한 기분으로 극장에 들어갔다. 금세 두껍고 무거운 문이 닫히고, 무대에는 밝고 명랑한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극장에 들어오기 전 했었던 걱정들이 싹 잊혔다. 그리고 불안이 몰아치는 일상에서 벗어나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극의 초장부터 눈물이 났다. 또한 극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저 길모퉁이 앤”의 가사가 새로운 길모퉁이를 마주한 나에게 너무나 와닿아 그만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 경험이 꽤 최근이기에, 저 문장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어쩌면 조명이 꺼지기 전에 핸드폰 전원을 끄는 행위 또한 ‘그간 소란했던 마음들’을 함께 꺼버리는 행위이며, 동시에 ‘관객’이라는 자아의 스위치 버튼을 켜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삼인성호, 세 사람만 우기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이 있다. … 무한한 가능성과 근사한 상상을 덧대 용맹한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어 내는 일. 나는 그들의 말들이 거짓이어도 좋다. 있는 힘껏 나를 속이는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없던 호랑이를 상상하고, 꿈꾸고, 그려내는 일이 매번 즐겁다. - 20p
나 또한 호랑이를 만들어내는 것에 열렬히 일조하는 사람이기에 공감이 되는 문장이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앞에 펼쳐지는 무대는 사실 치밀하게 계산되어 구현된 가짜다. 그리고 한 번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이걸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무용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언젠가 공연을 재밌게 관람하고 극장을 나오면서, 벅찬 기분으로 마음속에서 외쳤다. 이건 가짜가 아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배우는 공연의 순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캐릭터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정해진 대본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배우의 입을 통해 말로 나오고, 배우의 몸을 통해 행동으로 행해지고, 그것이 조명과 음악과 무대 세트와 함께 구현될 때 무대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무대는 항상 달라진다. 배우의 연기에 따라, 객석의 분위기에 따라,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도 계속 호흡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직 하나뿐인 찰나의 세상을 정말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매일 달라지고, 금세 지나가 없어지기 때문에 공연은 더욱 현실성을 가지는 걸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떤 순간을 계속 똑같이 반복하거나 영원히 붙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생하게 변모하는 공연의 특성을 정말 잘 담아낸 분더비니 님의 콘텐츠가 있다. 바로 “극장가 비둘기”다. 이는 연극과 뮤지컬에 대한 비공식 소식지로, 구독자들의 제보를 받아 일별로 극장가 곳곳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달하는 콘텐츠이다. 예를 들어 배우들의 귀여운 실수담이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등의 다양한 소식이 담긴다. 이 내용들은 뉴스의 헤드라인 문체로 쓰여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고민이 참 많았다고 한다. 특히 실수담에 있어서, 이것이 당사자인 배우나 공연 관계자들, 혹은 팬들에게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분더비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로 “무대는 양면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관객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공연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넘쳐 나는 예술이고, 그렇기에 실수와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관객이 관대하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관객과 배우, 창작진과 제작사가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산업 전반의 신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라지지만 분명 존재했던 순간을 향해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찬사를 보내고, 건강하게 수다를 떨고,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었달까. 그런 마음으로 <극장가 비둘기>를 시작하게 됐다. - 207p
개인적으로 나는 극장가 비둘기를 정말 좋아한다. 이 콘텐츠를 보면 내가 보지 않은 공연에서 일어난 유쾌한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공연만이 가진 특수한 매력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정말 재밌고 획기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디 이 비둘기가 앞으로도 평화롭게 날아오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바램이 있다.
내 주위에는 나만큼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잘 모르거나, 공연을 본 적이 있어도 몇 작품에 불과한 친구들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나보다 공연을 더 잘 알고, 더 진심인 친구를 사귀게 되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리고 내 얘기인가 싶은 부분들의 향연에 이분과 하이파이브 하고 싶은 때가 참 많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오히려 그 순간에 딱 맞는 뮤지컬 넘버가 떠올라 웃어 넘겼고, … - 158p
나는 피곤하고 지칠 때면 <썸씽로튼>의 “Hard to be bard” 넘버를 흥얼거리고,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면 <킹키부츠>의 “Step one” 넘버를 꼭 듣는다. 역시 나뿐 아니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상도 뮤지컬이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던 부분이다.
이게 맛있는 건지 맛없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지만 사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더 과장된 목소리로 정말 맛있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오렌지 비앙코를 주문해서 먹어본 적은 없다. 때때로 어려운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오렌지 비앙코를 떠올린다. 주변에서 다들 재밌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정작 내가 느낀 감상은 오묘하기만 할 때가 있다. 이게 재밌는 건지 재미 없는 건지 도통 헷갈려 여러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내 취향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 141p
이 부분에서는 나의 ‘오렌지 비앙코’는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봤다. <엘리펀트 송>과 <멤피스>가 떠오르고, <미드나잇 : 액터 뮤지션>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공연에 대한 취향은 음식에 대한 취향만큼 가지각색인 것 같다는 문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미드나잇 : 액터 뮤지션>을 같이 보러 갔던 언니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도 나처럼 그 작품이 그리 재밌게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앞 줄에 앉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한 걸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똑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만족의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어떤 작품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서 내 취향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 같다. 그저 그 불일치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내 취향을 확실히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아쉬움을 털어버리면 된다.
에세이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분더비니 님의 수식어인 ‘맨 끝줄 관객’에 담긴 의미는 비단 공연을 보고자 하는 의지만을 함축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끝줄에 앉은 관객은 맨 앞줄에 앉은 관객이 보지 못하는 시야를 가진다. 전체적인 배우들의 동선 구성을 똑바로 볼 수 있고, 조명 연출 또한 더 잘 보인다. 그리고 어떤 공연에서는 앞에 앉은 관객들이 무대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맨 끝줄에 앉아 있는 분더비니 님은 공연의 어느 한 부분만을 집중하기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전반적인 무대와 그 너머의 것들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다른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해서, 공감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각으로 공연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자리는 어떠하고 저런 자리는 또 어떠하리, 내 자리 하나만 있다면 뮤지컬 향한 마음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175p
늘 느끼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늘 반짝거린다. 특히 그들의 눈은 마치 밤하늘의 별과도 같다. 나는 텍스트로 분더비니 님을 만났지만, 왠지 이 글을 쓰던 손가락 위로 반짝이던 눈동자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 대상 또한 빛나게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연이라는 장르의 반짝거림을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책을 모든 연뮤덕들에게 추천한다.
(사진 출처 : 문학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