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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너는 잘 될거야. 재미있으니까" -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영화]

그저 나이만 많아진 어린 아이였다.

by 김상준 에디터
2026.07.28 11:11

30대는 인생에서 가장 애매한 나이다. 10대에게는 아저씨, 20대에게는 선배, 사회에서는 가장 활발한 노동인구, 40대부터 그 윗세대에게는 아직 한창이자 젊은 혹은 어리다는 취급까지 받는 나이다. 누군가는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인 반면에 이제야 새로운 시작을 내딛는 사람도 많은 나이다. 30대는 어른일까 아이일까. 어른이라는 건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인가. 개념의 정의가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정체성을 상실하는데 이 세상에 어른이라는 게 존재해지는 하는 걸까. 세상 모두가 이 명제에 도전하지만, 어른의 개념을 확립하기 전까지 답을 낼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어른이 될 수 없는 상태로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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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술에 취해 방황하다 쓰레기 더미로 쓰러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화려한 불빛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사라지고 텅 빈 거리의 쓰레기가 모인 곳 위로 그와 예전 직장 동료가 무너진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품고 있던 동료는 주인공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의 창 너머로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진행한다. 쓰레기 같은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현재의 처지에서 그리운 추억이 가득한 과거를 더듬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과거는 사라져 버린 현실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어른인데 자꾸만 지난날을 되짚는 것은 그 시절에 머무르고픈 마음을 버리지 못해 어른이 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담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품고서 타임라인을 따라갔다.


주인공은 두 갈래 길의 시작점에 서 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이 이별을 고하며 사라져간 길과 그 여인과 뜨거운 날들을 보냈던 러브호텔로 이어지는 길.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자리에 선 그는 여전히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본다. 이제 와서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달라질 것도 없건만 여전히 망설임에 사로잡혀있는 뒷모습은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용기는 없지만 앞날이 뻔히 그려지는 길을 따라가는 무료한 삶을 살고픈 마음도 없어 어영부영하는 상태로 시간만 흘러버린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의 뒷모습이다. 과거를 곱씹으며 만약 그때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겠느냐는 의미 없는 생각만 반복한다. 갈림길은 망설임이 아니라 결단력을 위해 있다는 걸 몰랐던 지난날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꽤 씁쓸하다.


주인공은 벽의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다. 사람의 머리를 옆에서 본 모습을 한 그림의 속은 이런저런 시계들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을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추억이, 무수히 많은 시간이 내 속에 쌓여간다. 하지만 늘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다면 그 시간은 그저 창고에 쌓인 악성 재고다. 그림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림이 바라보는 곳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존재하면서도 그 그림이 바라보는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그는 진정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경험과 시간이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 인간상은 풍화되어 낡아가는 오래된 물건이 된다.

 

 

"그 사람 몸 구석구석에 그동안 입력한 타인의 문자가 성불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거지."

 

"단어의 유령 같네"

 

 

영화에는 성불 되지 못한 단어가 남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넌 잘 될 거야. 재미있으니까.”라는 말이 잊을만하면 다시 등장한다. 시간 선이 변하는 순간마다 타이핑처럼 글자가 나오며 컷이 바뀐다. 주인공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남겨두고 현실에 순응한 재미없는 사회인으로 자랐다. 그 시절의 꿈 꿨던 미련과 소설로 피어날 수 있었던 세계는 단어로 부서지고, 그 시체에서 자라난 성불하지 못한 망령들은 주인공에게 미련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웠다. 아마도 그게 우리가 부르는 어른의 모습이다. 사회가 손에 쥐여주는 그럴싸한 방패다. 도망쳤다는 적나라한 사실적 서술은 너무 아프니까. 철없이 꿈을 좇는 아이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희생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라는 구차한 변명의 방패를 든 게 우리다. 정작 그 방패 뒤에 숨어서는 품 안에 고이 접어두었던 지난 과거의 미련을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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