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곽두팔입니다.”가 “안녕하세요, 김철수입니다.” 보다 강렬하다.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의외성으로 점철된 생각치도 못 한 이름. 무언가가 기대에서 벗어났을 때, 결과는 실망과 의외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이 의외성으로 작용한다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되고, 빌리라는 사람과 BiB 커피라는 공간을 알게 된 것도 어디서 본 적 없는 이름에 혹해 네이버를 뒤적거린 것이 계기였다. 그 덕에 나름의 친분을 쌓아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고 있다.
저 거대한 철문 덕분에 늘 연구실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BiB 커피를 안지도 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름의 뜻이 궁금하다. Blame it on Billy의 약자라고 했는데, 특별한 뜻이 있는지?
Billy는 내 영어 이름이다. 유럽으로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외국 카페에서는 주문자 이름으로 부른다는 말을 들어서 나도 하나쯤 있어야겠다 싶었다. 당시 Billie Eillish를 좋아했던 터라 별생각 없이 Billy로 해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고 있다 유럽 공항 스타벅스에서 직원이 이름을 물어봐서 얼떨결에 Billy라 말해 버렸고, 그 뒤로 지금까지 쓰고 있다. 지금은 본명보다 빌리라는 이름을 더 많이 듣다 보니 이게 더 익숙하다.
여러 가지 이름을 생각하다 BiB라는 알파벳 조합이 너무 예뻐서 골랐다. 일단 보기 좋아서 선택해 놓고 나중에 의미를 뭐라고 할지 고민했다. 한참을 골몰하던 중에 Lizzo의 Juicy라는 노래에서 ‘gotta blame it on the goose’라는 구절이 좋아 내 이름과 섞어 Blame it on Billy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대충 의미를 설명하자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내가 중심이다.” 라는 맥락으로 나 하기 나름이라는 뜻도 있고, Blame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맥락이 있다 보니 우리가 “X발 X나 맛있네”라고 욕을 칭찬으로 쓰듯 욕 나오게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뜻도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빕커피를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의 특징이 있다면?
근처에 사는 분들보다는 멀리서 찾아오는 분들이 더 많은 편인데, 대부분 핸드드립 메뉴 때문에 온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어떤 느낌인지 알 텐데 “한 잔의 힐링”, 그러니까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회복이라고 할까, 그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다. 좀 전에 왔다 간 분도 거의 매주 게이샤 라떼를 드시러 온다. 한 잔에 13,000원이다 보니 싼 가격이 아닌데도 멀리서까지 찾아와 주시니 이런 손님들에게 굉장히 감사하다.
바리스타를 업으로 삼은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이 있는지?
사실 카페는 나에게 은퇴 계획 같은 거였다. 이전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경제적인 여유가 좀 쌓이면 카페를 열어서 노후를 보내려고 했다. 그러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젊은 사람과 다소 나이가 있는 사람이 내리는 커피, 그리고 공간에서 오는 뉘앙스 같은 게 다르겠구나 싶어 좀 더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카페를 제대로 꾸려 나가려면 커피도 잘 알아야 하고,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은 돌고 돌아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면 시작하자는 쪽으로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 주변 사람들이 원래 일은 하면서 배우는 거라는 말을 많이 했고, 듣다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빕커피를 오픈했다.
호주에서도 살다 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한국과 호주의 카페에 차이가 있는지?
일단 호주 사람들은 커피를 엄청 많이 마신다. 샌드위치 가게를 가도 한 손에는 샌드위치, 다른 손에는 무조건 커피다. 내가 일하던 곳에는 하루에 5번을 오던 손님도 있었다. 메뉴로 비교해 보면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 종류를 더 많이 마신다.
호주는 커피가 필요해서 카페를 간다면 한국은 공간이 필요해서 카페를 찾는 것 같다. 호주에서는 테이크아웃하는 사람들도 많고, 엄청 작은 매장에서도 스페셜티 원두를 판다. 한국과 다르게 스탠딩 문화가 더 퍼져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커피 한잔하면서 한두 시간 앉아 떠들 장소를 찾지만, 호주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만족스러운 커피다.
맥시멀리스트 답게 온갖 도구가 한가득이다.
그럼 바리스타로서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 스페셜티 원두를 접해본 적 없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런 커피 소비문화를 좀 더 활성화하면서 그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대중들이 원하는 취향에 맞춰가기보다는 생소한 것들을 보여주며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향해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정의해보자면?
속된 말이지만 쪼대로 사는 사람이다. 어떤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얽매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졌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는 무모한 행동도 많이 한다. 커피 대회 같은 것도 다른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거 왜 나가냐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돈보다 경험, 그리고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물론 돈도 체력도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과 경험이 재밌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만큼 얻는 게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맥시멀리스트라 주변에서 나를 말려주지 않으면 자꾸 뭘 사는 버릇은 조금 문제다.
그녀만의 작은 작업 공간. 늘 무언가로 가득하다.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그 흐름에는 결이 존재한다. 역류하는 강은 만날 수 없듯 사람도 결이 비슷한 쪽으로 모인다. 나라는 인간도 워낙에 반골 기질이 강해 남들이 잘 안 하는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러다 보니 개성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빌리라는 사람도 금발에 타투 가득한 모습과 한국에서 못 보던 감성을 가진 공간에 끌려서 찾아갔었다. 그 공간은 사라지고 연구소가 떠오르는 새로운 장소가 생겼다. 그만큼 커피라는 음료와 그 맛 하나만큼은 언제나 최고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나름 까다롭기 그지없는 입맛인 내 혀에도 늘 만족스러우니까.
세상은 미친놈이 살리고 미친놈이 망친다. 어느 쪽이라도 결국 세상은 늘 미친 놈들이 바꾼다. 어떤 것 하나에 미쳐버린 인간은 그 길만 판다. 차선책도 없고 다음도 없고 뒤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앞으로만 달린다. 길만 제대로 탄다면 점차 가속도가 붙어 더욱 빠르게 나아가고, 그 힘에 세상은 맥없이 딸려 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무난한 사람은 재미없고, 나는 한 번 뿐인 삶을 무료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늘 새로움을 안겨주는 제대로 미친 사람(positive)을 갈구하며 내 삶도 그쪽을 향해 엔진을 밟고 있다.
Bastard Is the Best. BiB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