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사)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이 주최하고 M발레단이 주관, 국가보훈부가 후원하는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이 서울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발레 공연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친절했고 긴 여운을 남겼다. 관객을 사로잡은 공연의 매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발레를 포함한 모든 무용극은 익숙하지 않다. 대사와 노랫말처럼 서사를 전달하는 언어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관객은 인물과 서사를 통해 감동이나 위로를 받는다. 무언가의 원동력이 되거나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만큼 언어적 수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요소가 없는 무용극이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익숙한 소재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이고, 그런 이유에서 여러 작품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 <영웅>은 꾸준히 사랑받아 오고 있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뮤지컬이나 영화라는 장르로 이미 관객,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점, 교육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이 소재의 ‘익숙함’을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친절한 안내가 이루어지며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한다. 티켓을 수령할 때 부스 한편에 프로그램 북이 놓여 있다. 자유롭게 가져가 참고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프로그램 북에는 기획 의도부터 안중근 의사의 연보와 활동도, 등장인물 소개, 시놉시스 등 여러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시놉시스는 각 장의 요약된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 덕분에 대사 한 줄 없어도 어떤 내용인지, 현재 서사가 어디에 이르렀는지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발레라는 장르에서 느낄 익숙함이 전혀 없다고 해도 쉽게 관람할 수 있었다. 어떤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고, 발레라는 장르가 가진 약속 한마디 알지 못한다 해도 극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2. 그들의 결의를 전하는 것들
장르의 이해도를 걱정하며 극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때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의상이었다. 여타 공연에서도 의상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발레는 그 중요성이 더 두드러진다고 느껴졌다. 의상으로 인물을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한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대립에서 그들을 구분 짓는 것 역시 의상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연출적 요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입장하여 좌석에 앉았을 때 보이는 광경에서 위화감을 느꼈었다. 그 이유가 4장에 들어서며 드러난다. 의병부대 조직 후 그들은 일본군과 대립하는데, 해당 부분에서 독립군이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 매복한다. 무대를 바라보며 느꼈던 위화감은 오케스트라 피트가 열려있었고, 그곳에 경사면이 설치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오케스트라 피트가 독립군의 매복지가 되었다. 공연이 가진 장소적 제약을 연출로써 극복해 낸 것이다. 이후 그들의 전투에서 끈으로 보이는 얇은 천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였는데, 일본군이 끈을 휘감다가 이내 안중근이 여러 끈에 휘감긴 후 쓰러진다. ‘끈’이라는 소품을 통해 다치거나 붙잡히는 것을 표현한 듯했다. 일본군을 생포했다가 그들에게 다시금 기습당하는, 독립군의 상황이 전복되는 양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의미를 이해하고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지만,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연출을 통해 서사의 전환점을 표현하고 관객의 주의를 환기한다. 극이 중반부를 넘어섰을 때, 공연이 시작되며 걷어졌었던 막이 다시금 내려오더니 무용수의 무릎 아래만이 보일 만큼의 공간을 남기고 멈추었다. 까만 배경에는 눈이 내리며 설경을 만들고 무용수들의 제한된 움직임을 보며 긴장감을 느낀다. 막이 걷히며 등장할 다음 서사를 예상하고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뿐 아니라 무대 배경을 채우는 영상을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장면은 오로지 영상으로 표현하고, 단지동맹 장면에서는 영상과 무용수가 호흡한다. 독립군이 결의를 다지며 지장을 찍는 순간이 영상으로 표현된다. 태극기를 채운 독립군의 지장으로부터 그들의 결의가 전해지고 관객은 압도된다.
기차가 지나가는 영상으로 거사의 시작을 알린다. 기차의 움직임에 맞춰 조명이 객석을 거쳐 한 바퀴 회전하며 시간이 흐름을 보여주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세트에 기차의 앞모습이 비친다. 삽시간에 극장은 하얼빈이 되고 이내 총소리가 울린다. 소리에 맞춰 배경의 총알 자국이 하나씩 늘어가며 관객에게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때 음향을 통해 안중근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코레아 우라, 우라, 우라.”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결의가 깃든 외침이었다. 그 마음과 우리의 역사를 아는 관객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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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감정을 동작만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제약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작 하나하나, 다음 동작을 잇기 위한 움직임에서 의미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말’로는 결코 온전히 담지 못할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독립군, 일본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단체의 안무에서는 그 에너지가 증폭되어 느껴지기도 했다. 그 힘이 곧 그들의 감정이었고 서사였다.
끊이지 않는 음악의 선율과 함께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대변한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멈추지 않은 움직임이 비로소 자유를 만나 만세를 부른다. 덕분에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