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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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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화제가 되었던 작품, 영화 <해피엔드>가 마침내 4월 30일 국내 개봉하였다.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의 네오 소라 감독이 제작한 첫 장편 영화로, 현재 국내 누적 관객 10만 명에 달하며 흥행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고 있는지, <해피엔드>를 관통하는 두 가지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균열과 흔들림, 그들의 우정

- 다음에 보자, 마지막 인사


 

많은 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여러 친구를 사귈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인연은 재학 기간에 한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그 학교의 친구들과 점차 멀어지고 동시에 새로이 입학한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간다. 회사를 이직해도, 이사를 하여도 마찬가지다. 동료와 이웃은 과거를 채울 뿐, 더는 현재를 공유하지 않는다. 영화 <해피엔드>는 이러한 ‘시절 인연’에 대해 말한다. 지나간 인연을 생각하게 한다.


유타와 코우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던 소꿉친구다. 어느새 그들은 고등학교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여전히 함께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생활한다. 그러던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는 틈이 서서히 벌어져 간다.


코우는 사회의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후미를 신경 쓰기 시작하고 그녀와 뜻을 함께하게 된다. 유타는 그러한 코우를 보며 여자친구가 생겼냐며 묻고, 코우는 음악이 전부인 줄 아느냐고 답한 후에 자리를 뜬다. 코우는 친구가 전부인 어린 시절과 똑같이 구는 유타를 점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코우의 시선 탓에 관객은 덩달아 유타를 미성숙한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며 변화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사실에서 미루어 보면 유타는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인물로 설명할 수 있다. 변화가 두려워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언제까지나 미성숙함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코우는 유타의 ‘변하지 않음’에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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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진진 (출처_영화사 SNS 계정 @jinjinpic)

 

 

동시에 유타로서는 코우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 세상이 바뀌냐고 묻는다. 유타는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소꿉친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다. 함께 장난치고 음악을 들었던 친구가 점차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함께 다른 길로 나아가려 한다. 변화가 두려운 이가 그 행위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유타는 겁이 많아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인 걸까?


종국에 유타는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진다. 쉽사리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체념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해피엔드>의 주요 키워드는 ‘변화’이다. 그것에 주목한다면 유타의 행동은 용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타는 코우의 행동과 신념에 침묵하며 지켜볼 뿐이었지만, 끝내 자신이 처벌받기를 택하며 코우가 후미를 비롯해 친구들과 이룬 결과를 지켰다. 그들의 신념에 동의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타는 무사히 졸업하며 현재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의 변화를 인정했다. 그것이 유타의 용기이자 변화였다.


그렇다면 코우는 변화를 받아들인 유타를 마침내 이해하며 다시금 함께했을까? 그래서 ‘해피엔드’인 것일까? 한 사람은 퇴학, 한 사람은 대학 진학이라는 갈림길에 선 순간부터 그들의 미래는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육교에서 헤어지며 건넨 ‘다음에 보자’라는 인사가 그들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장난치는 유타와 그것을 받아주는 코우로 돌아왔다고 해도 찰나일 수 있다. 그들이 친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났고 각자의 변화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 시절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 인연. 친구도 시절 인연이다. 우정에도 이별이 있으며, 그 헤어짐에도 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을 채운 두 사람의 인사는 해피‘엔드’, 관계의 끝이라고 느낀다. 지난 인연의 씁쓸함이 밀려온다.

 

 

 

2. 부조리에 저항하다


 

<해피엔드>를 이루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부조리’다. 사회의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후미와 그에 동조하는 코우. 기득권의 권력 앞에 처벌을 받은 유타.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도입된 감시 체제 등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일컫는 학교의 민낯이 드러난다.


우리는 권력이 없어서, 어려서, 약해서, 남들과는 달라서 등 갖은 이유로 차별받는다. 중요한 것들은 모두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결정되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 후미는 그것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시위하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집단을 형성한다. 감시시스템을 도입한 교장에게 항의하고 농성을 벌인다. 기득권과 그렇지 않은 자, 어른과 미성년들, 교사와 학생 등 많은 기준이 그들을 구분 짓는다. 후미와 친구들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하고, 그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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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차를 세워둔 것을 테러로 간주하여 감시시스템을 도입했지만, 해당 시스템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담배꽁초를 줍기만 해도 벌점이 부과된다. 이에 놀라 꽁초를 던지면 또다시 벌점을 받게 된다. 흡연과 쓰레기 투기에 대한 단편적인 모습만 포착하여 벌점을 부과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는 현 사회의 부조리를 시각적으로 단순명료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허점 가득한 규율, 사람을 단편적으로 재단하는 모습까지, 감시시스템을 통해 여러 문제를 전한다.


이처럼 해피엔드는 비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감시시스템이 자유롭지 않은 감옥, 부조리한 사회를 비유하며 비판했다면, 지진과 우정은 ‘균열과 흔들림’이라는 묘사를 공유한다. 코우의 가게 전등, 유타의 집 거실 전등이 지진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그들 관계의 불안정함을 나타낸다. 또한, 이를 그대로 바라보거나 붙잡는, 두 사람의 상이한 행동은 관계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비유한다. 이처럼 전등은 지진과 관련된 사물이면서도 두 사람의 우정을 상징하는 하나의 오브제로써 활용된다.


이 밖에도 국적, 인종 등 우리를 가르는 여러 기준을 이야기한다. 구분이 아니라 차별을 야기하는 기준들, <해피엔드>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듯 사회에 녹아든 차별을 보여준다.


영화 <해피엔드>는 학교라는 사회 속 변화하는 우정의 인연을 담아낸다. 도처에 문제가 만연한 사회는 여전하다. 근미래에서도 여전히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바뀌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오로지 인연만이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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