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한국이 그래도 아직은 가족으로 이어져 있는 사회라는 걸 느낀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동창 녀석들을 만났다. 이제 햇수로는 15년을 넘어가는데, 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남자가 철이 들면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은 과학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성숙을 넘어 숙성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칙칙하기 짝이 없는 남자 다섯이 모여 체인소맨 극장판: 레제편을 봤다. 10년 만에 영화관에서 보는 첫 작품이 체인소맨이라는 게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막상 영화관을 나서는 나에게 남아있던 건 ‘잘 만들었다'는 감상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지금 감상평까지 쓰고 있다.
초광각; 덴지의 세계
레제 편에서는 ‘초광각(Ultra-wide angle)’ 구도를 사용한 화면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기이할 정도로 굴절이 심한 화각이라 전환점 또는 분위기 환기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더러 있어도 메인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비중이 높은 작품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작가나 애니메이션 감독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체인소맨이라는 작품을 알고 보는 입장에서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중에서 덴지는 레제에게 배신당하고 “모두 체인소맨의 심장만 노리고, 나의 심장에는 관심도 없다”라는 대사를 던진다. 이 짧은 한 줄의 대사는 악마들은 심장을 노리고 데블 헌터는 그 심장을 지키려는 싸움 속의 양쪽에서 짓눌리고 있는 처지로 인해 뒤틀린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초광각 구도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덴지의 시선을 대변하는 요소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초광각 구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화면을 연출해 꿈이나 상상, 이세계 같은 다른 차원을 보여주는 장면을 표현하기 좋다. 덴지는 ‘안티 히어로’로 대표되는 다수의 범주에서 벗어난 캐릭터다. 불우한 성장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1차원적인 목표를 충족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 같은 것에 얽메이는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다소 뒤틀린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덴지를 주인공으로하는 체인소맨이라는 작품이 초광각 구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그가 바라보는 이 세계가 다소 뒤틀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
영화관; 마키마와 덴지 - 악의 평범성
마키마와 덴지는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만 감상하는 데이트를 즐긴다. 관람객으로 꽉 찬 상영관에서 모두가 웃고 울 때 두 사람은 지루함과 무료함에 젖어 든다. 반면, 마지막으로 들렀던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서는 서로 눈물을 흘리며 깊은 감동을 느낀다. 이 극명한 대비가 보여주는 것은 ‘악’이라는 것의 괴리감이자 ‘평범함’이었다.
인류는 그 출현 이후부터 지금까지 생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포라는 감정을 배웠고, 그 공포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은 위험으로 간주하여 배척하거나 박멸했다. ‘악마’라는 존재는 인류에게 공포라는 감정 그 자체와 다름없는 것이었기에 데블 헌터를 육성하여 이들을 말살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악마와 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악마와 다름없는 두 사람이 인간의 무리 속에 섞여 있음에도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로부터 격리된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악마도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생각도 해본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영화 속에서 여인은 병사를 끌어안는다. 포옹은 내가 상대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지닌 행위다. 그 장면을 보며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악마’라는 동일한 존재로서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음과 동시에, 인간들처럼 무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를 지닌, 크게 다를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물; 감정의 알레고리
레제편에서 물은 덴지와 레제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피해 공중전화에서 처음 만나는데, 레제와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순간 하늘을 맑아지고 비구름이 사라진다. 자신에게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혼란스러워하던 흐릿한 덴지의 마음이 레제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며 마음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맑게 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 두 사람은 밤에 학교로 모험을 떠나고, 수영장에서 레제가 덴지에게 헤엄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옷가지를 전부 벗어 던지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물놀이하는 두 사람으로 인해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어오른다. 수영장이라는 공간 안에 고여있던 물처럼 가라앉아있던 둘의 마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활력을 얻어 움직이고 시작하고, 흩날리는 물방울의 에너지는 그들의 활기와 같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덴지와 레제는 서로의 몸을 체인으로 휘감고서 바다로 가라앉는다. 레제에게 배신당해 사랑을 잃어버린 덴지와, 덴지의 심장을 차지하기 위해 마음을 버린 레제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은 텅 빈 공허함 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파도 한 점 없이 고요히 가라앉는 바다의 깊이는 허무함에 물들어버린 그들의 마음처럼 그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자면 인간보다 악한 존재를 찾는 게 더 어렵다. 체인소맨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건 그 탓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악마, 데블 헌터들을 보고 있자니 누가 선한 것이고 누가 악한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럴싸한 말들에 도덕이라는 이름을 붙여 위선을 떨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나는 덴지를 동경한다. 매섭게 돌아가는 전기톱의 날로 악마의 연쇄를 끊어내며 자신의 본능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는 어쩌면 가장 선하면서도 자유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