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앨범 ‘위버맨쉬’는 지드래곤의 귀환이 아닌 ‘권지용의 시작’이다. 수록곡 ‘Drama’는 그 새로운 발 딛음을 알리는 효시이면서도 지난날의 지드래곤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이다. 4분 남짓한 길이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기계 부품의 허물을 벗고 탈피한 그는 더 이상의 드라마는 없다는 끝맺음으로 퍼즐 같은 인생의 발자취를 남겼다. 이제 나는 그의 팬으로서 그가 남긴 조각을 이어 붙여 그림을 완성하려고 한다.
Trailer: Dangerous Beauty
뮤직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이 필름에는 ‘Drama’라는 곡으로 전달하고 싶은 모든 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팬들이 자신이 숨겨놓은 것들을 찾을 때 기쁘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정말 알뜰하게도 숨겨놨다.
타이틀에 적어놓은 Dangerous Beauty는 1998년 개봉한 영화 ‘베로니카-사랑의 전설’의 원제다. 베로니카는 귀족인 베니에르와 결혼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녀에게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귀족 남성과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매춘부 계급 ‘코르티잔’이 되라 권유한다. 베로니카는 이를 받아들였고 시를 읊거나 춤을 추는 등 남성들에게 유희를 제공하며 사회적 명성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 또한 훔쳤다. 하나 진정으로 사랑하던 베니에르와는 점차 멀어졌고 종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그녀에게 악심을 품은 마피오에 의해 마녀사냥까지 당한다.
베로니카의 서사는 지드래곤의 삶을 투영한다. 그 또한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아이돌 분야의 최정상에 올랐다. 그를 향한 악의와 시기 또한 사회의 관심과 인기에 비례하여 커지며 세상에 악성루머와 근거 없는 비난을 토했다. 마약 사범 의혹이 불거지자, 언론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으나 법원의 판결은 무죄였다. 하지만 눈먼 망자들이 현실을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세뇌하며 마녀사냥을 이어갔다. 베로니카가 종교인들 앞에 섰듯이 지드래곤은 미디어에 의해 대중의 앞으로 몰렸다.
지드래곤의 뮤직비디오 속 의상은 영화 속의 베로니카가 입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새하얀 순백의 원단과 풍성한 레이스는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거기에 더해 원판 위에서 선보이는 지드래곤은 춤 동작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이 추던 것들과 닮았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옷을 입고 그와 함께 춤을 추는 무용수의 등장하는 순간 그들의 춤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충돌하는 장으로 옮겨간다.
빨간 머리의 권지용은 현재의 자화상이며 파란 머리의 무용수는 그의 과거다. 복면에 덮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모습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던 모습이다. 괴로워하는 듯 보이는 춤사위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에 응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맞춰 움직이고 있지만 내면은 괴로움으로 가득한 그의 과거를 상징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예술적 세계보다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돌 지드래곤(베로니카)이다. 무용수와 뒤엉키는 권지용의 얼굴에 뒤덮인 얼룩은 과거가 남긴 상처와 고통이며 그의 붉은 머리색은 그 과거와 대립하는 현재의 그를 나타낸다. 그들이 서로 엉겨 붙는 것은 과거와 현재 자아의 충돌이다.
미쟝센: 그의 자화상
‘Drama’의 뮤직비디오는 필름과 태엽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조합은 궁극적으로 ‘이것은 현재가 아닌 나의 과거이며, 나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들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한 피동적인 삶을 살았던, 홀로 서서 외로웠던 시절의 회고록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뮤비 속에서 지드래곤은 원판 위에 서 있고 카메라 한 대가 그를 촬영하며 주변을 맴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등장하고, 화면 좌측의 위아래로 새빨간 선이 움직이며 이것이 촬영해 둔 영상을 재생하고 있는 화면임을 암시한다. 즉, 이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것도, 현재도 아니며 이미 기록된 그의 과거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영상의 제일 바깥쪽 테두리에는 거뭇거뭇한 얼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필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이미 촬영이 끝난 실물 필름이 손상을 입었을 경우 이런 얼룩이 발생한다. 이는 원판에 적힌 fragile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의 과거는 상처 입고 위태로웠던 시절이었음을 의미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뮤비의 시작이 감긴 태엽이 돌아가는 것이었고, 지드래곤의 등에도 커다란 태엽이 붙어있다. 어떤 태엽도 스스로 자신을 되감아 움직이지 않는다.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만 작동하는 기관이 태엽이다. 이처럼 누군가가 감아주는 태엽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타인의 기대에 따라 살아가던 피동적 과거의 표출이다. 원판 위에 누워있던 모습 그대로 태엽 기관의 부품이 남아있는 모습으로 이제 이런 수동적인 자신으로부터 탈피하여 주체적인 존재로 벗어나 과거는 허물로 남겨뒀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Drama: 디오니스소스여 잔을 들어라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니체의 철학을 상징하는 위버맨쉬라는 점에서 ‘Drama’라는 제목을 니체 철학의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다. 최초의 드라마는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 니체는 그리스의 비극이 아폴론적 요소와 디오니소스적 요소 사이의 긴장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가사 중 ‘극에 달한 희비가 갈마드는 드라마’를 해석해 보면 이러한 개념을 차용하여 ‘극=드라마’, ‘희비가 갈마드는’이라는 구절이 아폴론적 요소와 디오니소스적 요소의 긴장을 담아낸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의 ‘No More Drama’는 더 이상의 갈등은 없다는 그의 선언이자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미디어와 악플러들에게 “그대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제 없을 것이니 꿈 깨라”는 일갈이다. ‘Let’s take a bow “” I’m out the door’라는 가사를 듣다 보면 ‘마타도어(Matador)’로 들리는데, 소싸움 용어인 마타도어는 악의적 목적으로 행하는 흑색선전을 뜻하는 은어다. 공연을 끝낸 이에게 감사의 의미로 전하는 ‘take a bow’와 이제 떠난다는 ‘out the door’로 작자들에게 “장난질하느라 참 애쓴다. 고생하세요. 난 내 갈 길 가렵니다’라는 무언의 조롱을 던지며 그들이 바라는 드라마의 끝을 고한다.
Fin. Gott ist tot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여 우리는 욕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더불어 절대적인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지드래곤의 팬으로서 내 자아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다. 하여 끝없이 그가 보여주려는 세계가 무엇일지 탐구한다. 하지만 예술에 정답이 없기에 이것은 그저 내가 본 세상일 뿐 그가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의심해야 한다. 그가 보여주려는 세계가 무엇인지 의심하여 우리만의 세계를 바라볼 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하여 기대에 보답해 준 그에게 팬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
모든 사진 출처: G-Dragon - Drama M/V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