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누군가를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고 그 감정은 어느새 하나의 취향이 되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쌓여간다. 특정 문화를 빼앗고 취하기 위해 큰 싸움판을 벌이기도 하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안타깝게 희생되기도 한다.
여기, 경계를 허물고 자의적으로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굳건히 신뢰하는 자들과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단단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진화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그 연결을 선택하는 공간인 <울트라 백화점 서울>, 대다수 사람은 브랜드를 결과물 즉 하나의 실체로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진정한 ‘브랜드’라 함은 어떤 누군가와 연결되는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라니,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의 내림이 전시의 목적인 서브 컬쳐의 흥미로움을 크게 유발할 수 있도록 만든다.
<울트라 백화점 서울>에서 관람객은 그저 작품을 관망하는 사람이 아닌, 주체적인 선택자로서 작품을 선택하고 그 이면을 곱씹을 수 있다.
Finder 섹션에서는 서브컬쳐의 인사이트를 수집한다. 이곳에서는 길을 걸으며 음악과 패션, 도서 등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사색을 돋울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목받는 대화 주제는 재빠르게 바뀌는데, 최근 들어 빈번하게 신경이 쓰이고 동감할 수 있는 여러 빛깔을 품은 생각의 파편을 하나 하나씩 모아 건네받은 빨간색 종이봉투에 담는다.
그중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것은 ‘과시적 독서’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독서를 끝냈다고 자신한다면 본마음에 안착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옳은 독서라고 생각하였지만 정답, 아니 애초부터 그런 흐름으로만 생각해야만 하는 방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출판계에서는 안 읽는 책을 사는 사람을 ‘빛과 소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책 내용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든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에서 울림을 얻었다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확신할 만큼 잘 알고 있을까?’, 서브컬쳐의 당당함. 이제는 경계선조차 희미해지고 있는 다양성이라는 문화의 대범함. 그 의의를 타인의 생각을 통해, 시선을 통해 한껏 느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Collector 섹션에 들어서고 첫 번째로 마주한 것은 음악을 창작하는 아티스트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의 앨범 스티커를 골라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완성해 볼 수 있는 관람의 진정한 목적답게 주체적인 선택자로서 문화의 주축을 담당하는 ‘음악’이라는 파편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텍스트 에비뉴’로, 다채로운 출판사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귀중한 공간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방문하기 전 많은 기대를 했던 곳인지라 오랜 시간 머물며 뜻밖에 감정의 울림을 선사해 준 고마운 곳이었다.
출판이라는 세계는 유난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어딘가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처럼 느껴져 무심히 선을 긋고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전시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머릿속을 잔잔히 맴돈다.
Q. 모두가 책은 사양산업이라 말하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출판사, 유유: 책 만들고 파는 일의 즐거움, 읽는 사람은 꾸준히 성장한다는 확신, 그리고 아직 만들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 너무 많다는 것!
A. 출판사, 소소사: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마음가짐. 나 자신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그를 통해 세상의 수많은 사람과 깊이 연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수없이 해 왔습니다.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솔직하게 말하고 가감 없이 엮으려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읽어 주세요.
진심을 느꼈다. 책을 고르고 한 장씩 넘기며 읽어 나간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들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생각을 고맙게 받아 쥐는 순간 나의 세계는 조금 더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은 멈추지 않고 성장한다.
같은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생각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끼리는, 가장 깊은 감정의 결에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문득 믿기지 않을 만큼 달콤하게 다가온다. 내가 꾸준히 바라왔던 것도 그 문장 속 가치였음을 이제야 알 것만 같다.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는 일임을 몸소 체감하였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절망이 밀려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끝없이 갈망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어 붙이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두 마음이 동일한 무게로 나란히 놓여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어쩌면 더위에 지친 여름밤의 허무한 꿈처럼 아득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은 그것을 해낸다. 우리는 태초부터 같은 시공간에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본 바탕에는 알 수 없는 믿음과 타인을 향한 공감, 애착 모든 것이 아우러져 복잡한 내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타인을 위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 있음을 안다. 쉽게 마음을 건넬 수 없는 누군가와 사실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리뷰어스 씨어터’ 라는 많은 주제의 독립영화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섹션을 거닐 수 있었고, 그 뒤로는 ‘더 리얼 부티크’에서 ‘수집으로서의 패션’을 주제로 한 다양한 패션의 미학을 배울 수 있었다.
[졸리레이드, jolie laide: 이 피스들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이야기,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표현하려는 정서와 태도가 담긴 물건들]
옷이나 물건을 고를 때, 그것이 트렌디한지 세련되었는지보다 어떤 이야기와 정서, 기억을 품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시간이 쌓이거나 축적된 물건들은 유행이나 효율로는 쉽게 교체되거나 대체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뽐내기 위해, 스스로의 결핍을 애써 감추기 위해 시대적으로 통용되는 멋을 흩뿌리지 않고 오롯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하고 조용한 멋임을 느낀다. 이러한 멋은 사람마다 결이 다르기에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애착이 가는 물건, 혹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자신만의 감성이 스며든 것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깊은 의미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나를 타인과 구별 짓는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순간들을 조용히 완성해 주니까.
‘다름의 미학’,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 타인뿐이 아닌 차마 평생토록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넓디넓은 세계를 공감하고 또 존중하는 행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전시였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환경을 바랄 수 없고 똑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다르므로 다른 미학을 가진다. 그렇게 다름의 빛을 품고 또 다른 세계가 피어난다. 이러한 세계는 타인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다.
<울트라 백화점 서울, 포스트 서브컬쳐>는 다름의 미학을 관통한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 다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아름답다. 획일화된 기준을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이 가진 특별함을 드러내 이를 강점으로 키워가는 것은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어쩌면 미래 세계적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훌륭한 밑거름이다.
이전에 서브컬쳐라 함은 타인의 노골적인 시선으로 쉽게 내쳐지기도 망가지기도 하고, 숨겨야만 하는 존재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고 또 그들의 세계가 나의 안으로 스며들어 올 때, 비로소 문화의 생명력을 체감하게 된다. 마음의 공간은 조금씩 넓어지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결의 아름다움이 조용히 더해진다.
이를 소중히 보존하고 나만의 견고한 취향으로 가슴 깊이 새겨둘 수 있다는 일. 그것은 모두가 똑같은 성취와 결과를 향해 달려가기를 요구받는 현 사회 속에서 드물게 허락된 커다란 기쁨이자 은은한 위안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