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래된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펜팔이다. 글을 쓰는 ‘펜(pen)’과 친구를 뜻하는 ‘팔(pal)’의 합성어인 이 말은 이름 그대로 ‘글로 이어진 친구’를 뜻한다.
내가 정확히 언제 처음 펜팔 활동을 시작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한창 영어 공부와 친구 사귀기에 열을 올렸었던 늦된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초입이었을 테다. 그러니 지금은 무려 거의 십 년째 펜팔을 취미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름부터 ‘펜’인 만큼 사실 원래의 펜팔은 종이에 직접 편지를 쓰고, 그걸 친구에게 부치고, 동시에 친구가 나에게 써준 편지를 받아서 읽어본 뒤 또 서로 답장하는 식이었다. 요즘도 펜팔을 즐겨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낭만 넘치는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손으로 또박또박 글을 쓰고, 가끔은 귀여운 스티커나 압화 같은 장식을 덧붙여보기도 하고, 겉봉투엔 평소엔 써볼 일이 잘 없는 우표까지.
이렇게 손수 부치고 나면 친구와 서로 편지를 받아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내는 그래도 좀 낫지만, 해외 우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괜찮다. 아날로그 펜팔의 묘미는 바로 그 ‘기다림’에서 오는 법이니까. 막연한, 하지만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기대되는, 나에게 선물이 오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두근거리는 기다림.
다만 나는 펜팔을 처음 시작했던 어렸을 적에 필리핀 친구와 잠깐 손편지를 나누어봤던 일 외에는 그렇게 교류해본 경험은 없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21세기의 속도감과는 잘 맞지 않다 보니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에 쉽게 지치게 된다. 게다가 몇 달, 몇 년이고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비용도 꽤 들고 말이다.
가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현대화를 ‘아날로그의 종말’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아날로그들은 현대화의 등에 업혀 되레 ‘아날로그의 재탄생’이 되기도 한다. 펜팔도 그런 존재다. 이제 요즘은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바야흐로 ‘디지털 펜팔’의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어플을 주로 사용한다. 어떤 플랫폼이든 앱스토어를 둘러보면 펜팔 기능을 서비스하는 어플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기능들은 대체로 비슷하고 간단하다. 이런 친구를 사귀었으면 하는 조건의 지역, 나라, 문화권, 혹은 언어권을 설정하고 해당하는 사람들이 뜨면, 그중에서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언어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펜팔의 경우에는 언어 유창성을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 모국어가 한국어고 원어민 수준인 대신 배우고 싶은 언어는 영어라고 하면, 반대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 중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위주로 매칭해주는 식이다. 나는 펜팔을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언어 학습이라서 이런 유형의 시스템을 자주 사용한다.
디지털 펜팔의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전송 버튼만 누르면 단숨에 메시지가 전달되니 물리적으로 답장이 오고 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얘기가 아무리 많더라도 소통에는 제약을 주지 못한다. 사진, 동영상, 음악 등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간단하게 첨부해버리면 그만이다.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 역시 가능하고, 받아둔 메시지를 따로 보관해야 할 필요도, 혹여나 편지를 잃어버릴까 걱정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빠르게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접하게 되는 소식은 주로 사건·사고들, 혹은 깜짝 놀랄 만큼 파급력이 있는 화제에 해당한다. 하지만 매체나 SNS에 오르지 않는 평범한 인생이 세상에는 무척이나 많다.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순간의 찰나와 작은 이야기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자극적인 소재라고는 없는 일상적인 삶들.
십여 년 동안 펜팔을 하며 조건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의 시골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라며 농사를 짓던 일본 친구, 동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벨기에 친구, 곧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올 거라던 말레이시아 친구, 대학 졸업 후 취업 대신 대학원에 들어가기로 한 호주 친구 등 국적을 가려놓으면 내 이웃의 이야기라고 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엔 항상 긴장하며 첫인사를 나누지만, 결국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나와 똑 닮은 평범한 한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의 세계는 한 단계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