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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뱅크시가 던진 도발적인 이야기 - 전시 '뱅크시 : Still Here'

뱅크시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by 박수진 에디터
2026.08.1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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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글이 있다.


그것은 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곳에서는 그림 경매를 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풍선을 놓친 소녀가 그려진 그림을 낙찰받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5억원의 금액이었다. 주목되는 점은 그 다음이다. 그림이 낙찰과 동시에 그림은 세로 몇 조각으로 절단된 것이다.


당시 그림 경매 현장은 모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이벤트는 화가가 직접 준비한 이벤트로, 그림이 낙찰된 다음날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밝혀진 것은 화가는 사실 그림 전체가 파쇄되는 것을 의도했다는 것. 그러나 기계의 결함으로 대략 반쯤 절단되고 멈췄다고 한다.


작품의 이름은 <풍선과 소녀(절단된 그림의 제목은 '사랑은 쓰레기통 속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화가가 바로 뱅크시(Banksy)다.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방금 서술했듯 판매되는 자신의 그림을 파쇄하는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뱅크시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벽 같은 곳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모습들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뱅크시는 영국의 화가다. 뱅크시는 전쟁, 폭력, 권위, 자본주의 등을 비판적으로 보고 그림으로써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져왔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기도 한 그는, 화가를 포함해 거리 예술가, 사회운동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현대서울현대백화점에서 진행하고 있는 '뱅크시 : Still Here'은 뱅크시가 그린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해왔는가를 마주하면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뱅크시는 왜 정체를 숨겼을까?


나는 보통 정체를 감추는 이유는 익명의 안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풍자예술을 하는 뱅크시도 익명으로 자신을 숨겨 모종의 위험으로부터 최대한 보호받고자 한 것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그가 선택한 익명적이고 불법적인 활동 형태는 작가로서의 권위를 지우고, 오직 작업이 말하도록 만든다. 동시에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익명의 목소리를 공적인 담론으로 확장시키고 관객 역시 그 질문과 발화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들인다. 자신의 존재는 끝내 숨기면서도 누구보다 선명하게 시대의 균열과 질문을 드러내 왔기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뱅크시'라는 존재 자체에 매혹되어 왔다."


뱅크시에게 익명은 사람들은 작품 자체에 몰두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화가가 어디 출신이거나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배경에서 살아왔는가를 지우고 그림 속 메시지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화가의 배경을 모르니 그에게 공감할 수 없고, 감상자는 오롯이 작품의 메시지만 읽으면서 그에 참여하게 만든다. 


뱅크시는 벽을 하나의 무기로 여긴다는 점도 내게는 특별했다. 뱅크시는 벽에 그림을 그려놓고 사라지는(?) 기행 같은 모습도 많이 보였다고 한다. 벽은 어떠한 것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단절의 의미를 가졌다. 단순한 구조물이지만 단순 구조물로 지칭하기는 어려운 아이러니가 있는 곳이 벽이다. 화가는 그 점을 이용했고, 벽이 품은 고발의 형태를 극대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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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뱅크시에게 열광할까?


앞서 했던 파쇄된 그림 이야기를 잠깐 다시해보겠다. 처음 그림을 샀던 사람은 그림이 잘려나간 것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사지 않겠다고 했을까? 그 인물은 원래 가격대로 그림을 샀고, 그림이 향후 다시 경매에 나왔을 때는 더 비싼 값에 거래됐다고 한다.


아울러 뱅크시의 작품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받고 가치는 점점 더 오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건 그의 알 수 없는 정체성 때문일까, 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정체는 더 이상 대중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부터 많은 추측이 나왔고, 최근 외국 언론 보도를 통해 그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목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뱅크시의 예술을 찾는 것을 보면 미스터리함 때문은 아닌 듯하다.


결국 우리는 그의 작품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단지 잘 그린 작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뱅크시가 활용한 웃기지만 웃기 어려운, 그가 세상에 내놓는 도발적인 유머에 빠져드는 것이다. 


사실 뱅크시는 어마어마한 팬층이 생기며 자신의 작품이 비싼 값에 거래되거나 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어디까지나 시장의 해석이다) 내가 전시회를 통해 그를 만났다는 것부터 그의 그림값까지 전부 아주 잘 짜맞춰진 코미디 같기도 하다.


줄곧 나는 뱅크시가 정치적인 풍자를 하는 화가라고 생각해 왔다. 전쟁이나 폭력 등을 다루는데 정치 속의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가라고. 이번 전시회에서 뱅크시의 외연이 그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게 동성애고, 또 때로는 동물이고, 사랑이다. 뱅크시는 그 많은 것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담론화한다. 다만 물론 너무 진지하게는 아니다. 여전히 뱅크시는 유머러스하다.


그렇기에 뱅크시는 더 의미 있어진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우스꽝스럽기만 하거나 진지해져 버리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하지 않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뱅크시 특별전인 <뱅크시 : Still Here>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에도, 이해하기에도 좋은 기회였다. 그림 제목과 함께 있는 설명이나 뱅크시 이야기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는 11월 3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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