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3.jpg

 

 

초등학교 때 친구가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며 내게 한 말이 있다. “너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가.” 어릴 때의 나는 지옥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 말에 두려움이 없었지만 주말에도 친구를 만나는 게 좋아 그를 한 번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지옥을 만난 것은 영화 <신과 함께>를 봤을 때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까지 7개의 지옥에서 망자가 재판을 받는다. 영화적 설정인지, 한국적 정서가 가미되어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인간적이고, 또 조금은 엉성한 지옥의 왕과 판관들 덕에 ‘무섭다’고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었다.

 

반면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하는 지옥은 지옥문을 통과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참담함’만이 남는다.

 

단테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누어 사후세계를 상상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연한 <단테 신곡>은 그 <신곡>을 연극으로 형상화했다.

 

 

 

지옥


 

어느 밤 단테는 밤길을 헤맨다. 산짐승이 나타나며 그를 위협하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구해준다.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이 단테의 지옥 여정을 함께 해 주겠다고 한다. 지옥을 먼저 경험해야 천국의 의미를 깊이 알 수 있기에, 둘은 지옥에 먼저 발을 들이게 된다.

 

제9층까지 설계된 지옥을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각 층에 있는 죄인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왜 이곳에 있는 것이요?”

 

그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각 층의 이름과 존재 이유로 설명된다. 제1층은 하느님을 알기 전에 죽은 이들, 제7층은 폭군이나 독재자, 제8층은 사기꾼 등이 자리하고 있다. 단테는 그 안에서 자신의 아들을 전쟁에 팔아넘긴 어머니, 이름 모를 추기경,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니던 이, 어느 고리대금업자 등을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통에 몸부림쳤고, 저들끼리 욕설을 하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옥편은 <신곡>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만큼 연극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층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만나는 이들의 죄목이 크게 낯설지 않다는 점이 무섭게 다가왔다. 지옥편은 베르길리우스의 든든한 움직임과 무대 장치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니는 단테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한편, 죄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무대 위에서 몸을 기괴하게 꺾고 군무를 하기도 하며 지옥에서의 고통을 신체로 표현하는 모든 관객을 지옥의 한 공간으로 이끌었다.

 

 

 

연옥


 

긴 지옥 여정에서 벗어난 단테는 조용한 공간에 잠시 앉아 베르길리우스와 대화를 나눈다. 그곳은 ‘연옥’으로, 연극에서는 가장 짧은 분량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연옥이 그저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는 공간처럼 유야무야 설명되지는 않는다. 베르길리우스는 조금 전 떠나온 지옥과 대비해 연옥을 설명한다.

 

“지옥은 끝없는 추락이지만 연옥은 영혼의 의지다.”

 

희망과 이해, 구원 따위 없는 지옥과 다르게 연옥은 의지를 품고 있다. 연옥은 속죄 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원작에서는 연옥도 짧지 않은 서사를 끌고 가지만, 연극은 연옥을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의 대화와 그에게 다가오는 천사의 모습으로 간결하게 연기했다.

 

 

 

천국


 

천국은 베아트리체가 등장해 단테를 인도한다. 지옥을 그리던 무대가 연옥을 거쳐 빛이 뿜어져 나오는 천국으로 변화했다. 하얀 옷에 하얀 포를 쓴 베아트리체는 순수함의 결정체처럼 화사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하느님이 있는 공간인 최고천에 함께 있다고 한다.

 

천국편도 단테의 작품에서는 각 공간마다 설명이 이어지지만 연극은 베아트리체의 설명으로 지옥편과 비교하면 간결하게 표현했다. 베아트리체는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른 단테에게 하느님의 뜻과 궁극의 진리를 가르쳐준다. 하느님이 품고 있는 신비로움과 사랑을 빛과 베아트리체로 은은하게 보여주는 구간이었다.

 

 

2.jpg

 

 

극단 피악이 선보인 <단테 신곡>은 정동환 배우의 무대 인생 5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악령>, <죄와벌> 등의 여러 인문학 고찰을 지나 보여준 <단테 신곡>은 정동환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관록이 굉장한 작품이었다.


지옥편에서 단테가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가득 담긴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베르길리우스는 그보다는 묵중하고 무겁게 연기해 어느 스승과 제자 사이, 지옥을 경험한 자와 처음인 자, 두 사람의 연륜 차이 등이 배우의 목소리, 의상, 몸짓으로 다양하게 묘사됐다.

 

<신곡>을 읽지 않아서 연극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고민을 했는데, 어려움 없이 연극에 빠져들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대에 다양한 장치를 설계하고, 바닥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판자는 생동감을 주고 몰입감을 높였다.

 

‘지옥’이라는 세계가 왜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해 본다. <신곡>이 기독교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테가 설계한 지옥에는 추기경도 있고, 신학을 가르쳤던 사람까지 있어 교회에 대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하느님에게로 이끌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단테의 여정이 지옥에서 시작된 이유와같이 <신곡>은 천국과 지옥을 대비하면서 사랑, 죄악, 구원 등을 모두 더듬는다. 독자는 <신곡>을 통해 삶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마주하게 된다. 이 연극은 <신곡>으로써 인간의 존재 이유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의 길을 열어 주었다. 호흡이 긴 연극임에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무대에서 눈을 뗼 수 없기도 했다.

 

<단테 신곡>을 감상하는 것은, 연극에서 어느 인물이 “이건 단지 연극”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관객의 마음 속에 하나의 공포와 경이를 안기듯,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잠깐이나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