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나는 한때 연극이나 뮤지컬의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말을 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만들어내는 공연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돌아가는 관객이 즐거워하고, 공연자들은 아쉬움과 뿌듯함 따위를 느끼는 게 제법 환상적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 행위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꿈을 지금이라고 해서 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의 현실을 직면하고 있는 듯하다.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은 그런 마음 때문에 읽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었고 따르고 싶었던 세계의 이야기를 이렇게나마 듣고 싶었기에.

 

공연이라는 게 무대 위에 드러나는 것이 꿈 같고, 아름다운 것은 맞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면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론 현실적이고 금전적인 사항들이 오가는 실제 공연계의 현장은 나도 잘 모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연극 공연을 보거나 실제 참여해본 바가 있기에, 아름다움 외부의 모습을 '조금' 알고 있다. 그때 우리는 실제 공연하는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을 타겟 선정이나 투자, 공연 장소, 배우 섭외 등의 몇몇 문제가 없는 상태로 작업을 했지만 그럼에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기억한다. 일단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의견 맞추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는 치기 어린 학생이었고, 다들 어디까지 가능한지보다 무엇이 하고 싶은가에 초점을 두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멋있다'는 일념 아래 떠들어 놓고, 그게 되지 않으면 절망한 게 여러 차례였다. 서로 연습 시간 맞춘다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또 무대 꾸미고 소품 준비에서는 어땠겠는가. 말하기도 입 아프다. 어쨌든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여전히 놓지 못한 나의 꿈을 언젠가 실현해 보고도 싶어 이 책의 장을 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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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자가 말하는 공연기획자


  

 

공연기획자는 관객이 행복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함께하는 스태프와 배우가 행복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배우들이 연기로, 스태프들이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관객을 즐겁게 해 주듯, 공연기획자는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제작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보다는 예술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는, 그렇기에 이 부분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는 기획자는 당연히 공연의 주역이 아니며, 끊임없이 합리적이면서도 무모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는, 다시 그런 입장에 서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공연기획자는 그만큼 무모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 경영학적인 입장과 예술경영학적인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경영의 목표가 이익 추구에 있다면, 예술경영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공연기획자인 나는 이를 명확히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공연이라는 일, 그리고 그게 직업이 되었을 때 많은 돈을 벌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맥락의 말을 익히 들었다.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주목 받을 일이 없다는 것도. 영화만 보아도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면 감독의 이름보다 배우의 이름에 사람들이 더 주목하지 않는가. 드라마라면 더 그렇다. 하물며 공연이면 어떻겠는가. 특히 뮤지컬은 어떤 시간에, 어떤 배우가 나오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표를 예매하기도 한다.(물론 연출가는 똑같으니 그런 거겠지만 연출가를 보며 볼 작품을 고르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나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연출가도 어쨌든 작품을 올린 사람이니 주목받아 보고 싶고, 관심을 끌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볼 것이다.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머문다. 튀고 싶다고 튀려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직접 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일을 하며 배우를 통해서, 작품을 통해서, 같이 일한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또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자신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다 전해지지 못했다 해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분들은 매번 그걸 고단히 해내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공부를 하면서.

 

 

공연기획에 뜻이 있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는데 언제까지 막연히 돈보다는 꿈이라는 이야기로 사탕발림할 수 있을까. 점차 한계를 느낀다. 이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재미는 있어. 근데 힘들어. 밤샘 업무는 당연히 많고 지방 출장도 잦아. 그리고 출장 때 호텔보다는 모텔에서 잘 때가 훨씬 많아. 빨간 날 쉬지 못하는 건 다반사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해. 그러니까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직업으로 공연기획 일을 선택해서는 안 돼. 그렇게 몇 해 지내다 보면 주변 친구들이 사라지고, 또 몇 해 더 지내다 보면 애인이 없어지지. 어린이날, 어버이날, 추석, 설, 크리스마스... 이런 날 가족들과 같이 보내는 건 포기해야 돼.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무기력해 보인다. 공연이라는 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로 인식될 만큼의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된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공연을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점차 시장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야 한다. 이건 분명 기획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공연기획자들은 자연스레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만큼, 동일한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하면서 그렇게 그 누구도 부여해 주지 않은 사회적 책임감을 인식하며 일하고자 한다.

 

 

소극장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라고 해도 그를 위에 투입되는 인력은 적지 않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볼까? 인력이 적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는 일이 적지는 않다. 인력이 부족하면 그만큼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무대를 꾸미는 사람, 조명감독, 음향감독, 배우 등 무대 자체에 공을 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가인 공연기획자처럼 공연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꾸준히 바쁜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관객들은 잘 모르는 세계다.

 

<무대 뒤에 사는 사람>에서 작가는 그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가 오랜 시간 일을 하며 겪은 일들을 말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대본을 집필하면서) 그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들과 만나온 과정이나 모 배우와 연이 닿았던 이야기, 어떤 작품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원만히 흘러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공연 제작 전까지도 부단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 볼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볼 일은 없거나 적다. 본다고 해도 드라마 촬영 현장 영상 정도랄까? 그마저도 이미 제작이 들어간 후의 일이지, 제작을 위해 들이는 노력과는 사뭇 다른 시간의 일이다. 그 알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조금 열람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당연하게도 작가의 개인적인 인들인 부분들은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드러낼 수 있으면 드러낼 수 있는 대로 사진을 함께 보여주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그들의 상황을 보다 가까이서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공연인 이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어떤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일을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공연을 보며 웃고 울고 화내고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의 작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굳게 쌓이고 다져진 노력 덕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의 일은 분명히 힘들 것이다. 작가 또한 그걸 알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 가족, 친구, 애인과도 멀어지고 남들 일할 떄 일하고, 남들이 쉴 때도 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왜 공연을 할까. 공연이라는 일에 힘을 쓸까. 다시 말하면 작가의 동기는 뭘까.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마다 나는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또한 그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또는 화를 내며 반응해 주시는 관객분들의 칭찬과 비판도 늘 정중히 받는다. 그 과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음이 온몸으로 체감된다.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는데 재미없을 리가 있나. 이 재밌는 일. 세상에 필요한 건강한 감정과 정서를 담은 공연을 만드는 일. 그래서 난 공연이 좋다.

 

다른 장르보다 제한된 여건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필요한 동력이나 스트레스까지 모두 사랑스럽다. 즐기는 이들을 정면에 두고 라이브로 이루어지는,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안정과 갈등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공연이다. 거친 파도를 맞아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목적지까지 나아가고자 노 젓기를 멈추지 않는 용기가 바로 공연이다.

 

대기업들이 아무리 이 세상의 백년식당 음식들을 공산품으로 내어놓더라도 결코 그 음식들이 우리 엄마의 음식 맛을 따라올 수 없는 것처럼, 만드는 과정과 가치, 무대만이 갖는 매력을 오롯이 잘 담아내면서 오래도록 공연의 매력을 전파하며 살고 싶다. 예술가분들과 함께, 관객분들과 함께, 공연과 함께.

 

 

이 부분들을 읽으며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불확실한 일을 라며 느끼는 불안함이, 매일매일 지녀야 하는 신중함과 긴장함이 지속되면 피곤해지리라는 생각이 깨졌다. 그런 불안, 긴장, 피곤까지도 감당하고 기꺼이 즐거워질 수도 있구나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작가가 조금, 조금 많이 부러웠다. 나는 피곤한 게 싫어서 뭐든 적당히 해 오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느 일이 그렇겠지만 공연은 더더욱 사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들어지기 전부터 만들어진 후까지, 하물며 그것을 보는 사람까지 누군가 '참여'해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게 공연이다. 사람의 일이기에 더욱 진심이 필요하고, 진정성이 필요한 듯하다. 사람의 일이기에 실수가 생기고, 원하지 않는대로 흘러가는 일이 반드시 생기지만 그걸 이겨내게 해 주는 것도 또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함께한다, 는 것이 얼마나 따듯하고 매력적인 일인지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혼자 일하는 것의 편안함을 아주 오래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을 다시해보고 싶어졌다.

 

감히 평가를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토록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정 아름답다 생각하고 그들을 닮고 싶다. 그 일이 뭐든은 중요하지 않다. 수익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애를 쓰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하는대로'하는 노래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작가는 물론이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 순간 미친 듯 달려 들어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간절했다면 그 정도는 해 보아야 했지 않았을까.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고, 배신당할 수도 있지만 (공연에 관한 게 아니더라도) 그래도 작은 거 하나 해 볼 수는 있지 않았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꿈을 주는 일이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알고, 나도 무언가 가슴 뛰는 일에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일이 공연과 같은 일이라면 더 없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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