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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찰나의 황홀한 여름을 위하여 [도서/문학]

짙어진 여름의 녹음을 기억하고 싶다.

by 정예진 에디터
2026.06.05 14:43


 

여름을 왜 식히넌 겨,

여름이 여름다워야 곡식도 익고 가을, 겨울이 넉넉해지지.

순리를 거스르믄 좋을거 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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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로 뒤덮여 있던 겨울과 초봄에는 그렇게나 멀게만 느껴졌던 더위가 점차 몸과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바깥에는 그토록 경멸하던 존재인 벌레들이 살맛이 났다는 듯 윙윙 합주를 하며 선명한 푸른빛 하늘 아래를 붐빈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기다려지는, 또 어떤 누구에게는 고통만을 안겨주는, 마치 딱지 뒤집듯 극단적인 속성만을 지닌 여름. 나도 심성이 누그러진 것인지, 왜일까 예전보다는 여름이 조금 그리운 계절이 되었으며, 무더위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씁쓸하면서도 애석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땅을 밟고 디디며 겹겹의 대기로 맞닿아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분명 아픔의 시간이겠지. 살을 찌르는 듯한 태양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더불어 아스팔트에서 샘솟는 열기는 사람을 꼼짝없이 틀에 박힌 격식 속에 가두어 버린다.

 

털어버리고 싶어도, 끝없이 갈망해도 끝끝내 돌이킬 수는 없다. 감정이란 밀물과 썰물이 일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는 파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구석까지 빠짐없이 샅샅이 뒤져 소탕해 버리는 쓰나미와도 같아서 사람은 한없이 무력감에 빠진다.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안겨주고, 다른 계절과 차별화된 특유의 초록빛을 머금은 여름은 때로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덫이라는 속임수를 놓아 사람을 속절없이 멈춰 서게 하는 맹렬한 계절임을 그 고유한 바깥 내음을 통해 실감한다.


*


어렸을 적, 짐 캐리의 영화 ‘마스크’로 떠들썩했던 비디오 가게의 막내딸로 자라온 주인공 ‘열매’. 그녀는 모든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성장했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에게 영화 ‘마스크’의 자막을 읽어드리던 열매는 그 과정에서 성우라는 꿈을 마음속 깊이 키워나가게 된다.

 

목소리를 주축으로 하는 직업인 ‘성우’를 꿈꾸던 열매는 점차 목소리를 잃어가자 병원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듯, 자신 또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저 피해 가거나 있는 힘껏 넘어가면 된다고 믿고 있었다.

 

"보령에서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열매는 자신이 의지하며 친하게 지냈던 선배 ‘고수미’가 빚을 진 채 잠적하자,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내려가게 된다. 수미의 집을 찾아간 열매는 그곳에서 장의사와 매점을 함께 운영하는 수미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마주한다.

 

처음에는 수미의 어머니에게 불편함을 느꼈던 열매였지만, 완주에 머무르며 함께 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아픔과 내면에 자리한 따뜻함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일반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인물, 일명 ‘어저귀’. 그는 자연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며, 인류애를 잃었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청년이다. 열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이끌린다. 흑백과도 같았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서서히 색이 입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열매는 조금씩 사람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가지각색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완주의 주민들. 겉으로는 가시가 돋친 듯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슬픔과 한탄, 때로는 분함과 저마다의 어둠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열매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발에서 두뇌로, 몸에서 머리로 천천히 스며들게 하며 오랫동안 머금는다.

 

"수미: 그런데 이상하지. 서울로 오고 나서는 여름이랑 비를 기다린다.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 그럴 때 나는 겨우 숨을 쉬어.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 여기도 비 오는 곳이구나, 여기도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안도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까?"


*


"어저귀: 그리고 나는 삶이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덩어리 같고 물질적이고 그냥 그거보다 ‘유효’ 쯤이 살아 있는 상태를 설명하는 데 적당하지 않나? 인간, 나무 잎사귀, 물방울, 별 먼지까지 은은히 있다가 사라지는 모양을 다 담을 수 있잖아요."

 

 

어저귀는 숲의 모든 것들은 친교 속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무만 해도 뿌리와 뿌리가 맞닿고 흙 속의 곰팡이가 연결선을 만들면서 

안부를 전하고 서로 위급한 신호를 보내고 영양분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자기 몸에서 태어난 어린 묘목을 돌보며 오래된 지혜를 나누어 주는데 

숲의 동물들도 그런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이렇게 세상 모든 존재들이 우주 속에서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지만 

인간은 오래전 이탈해 자기들만의 방식을 선택했고 지금이 그 결과라고 했다. 

다만 몇몇 인간들은 그런 관계를 시초에 가깝게 유지한 채 존재하는데 어저귀도 그중 하나였다.

 

 

어저귀의 말은 유난히 풍요롭게 다가왔다. 인간도 흙에서 태어나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결국 우리는 자연에 귀속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큰 안도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세상에 던져진 이유는 아무리 성실히 노력해도 끝내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비교와 열등감,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하지만 그런 선로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텁텁함과 구속이라는 결말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자연을 아름답게 감각하고, 자연이 선물한 호화로운 시간의 곡선을 음미하는 것. 어지러운 세상에 난데없이 던져진 이유는 어쩌면 바로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찾아왔다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집착과 고통을 내려놓고 조금 더 가볍게, 그리고 산뜻하게. 잠시 멈추어 섰다가도 눈 부신 빛을 뽐내며 떠오르는 태양처럼 저마다 소중한 별의 조각이 되어, 사람은 그렇게 우주 속 찰나의 시간을 산다.


*


열매는 성우 오디션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시를 읊는다.


 

<장례식장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자크 프레베르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두 마리 달팽이가 조문하러 길을 떠났어

검은 색깔의 껍데기 옷을 입고

뿔 주위에는 검은 헝겊을 두른 차림이었어

그들이 길 떠난 시간은

어느 맑은 가을날 저녁이었지

너무 느려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봄이었어

죽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부활해서

두 마리 달팽이는

너무나 실망했단다

하지만 해님이 나타나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괜찮으시다면 정말 괜찮으시다면

여기 앉아서

맥주 한잔 드세요

혹시 생각이 있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 있다면

파리로 가는 버스도 타 보시지요

오늘 저녁 떠나는 버스가 있거든요

여기저기 구경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상복은 벗으세요

내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에요 

상복은 눈의 흰자위를 검은빛으로 만들고 

우선 인상을 보기 싫게 하거든요 

죽음의 사연들은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고 슬픈 법이지요 

당신들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 

그러자 모든 동물

나무와 식물이 노래 부르기 시작했어 

목이 터져라 노래했어 

살아 있는 진짜 노래를 

여름의 노래를 불렀어 

그리고 모두들 마시고 

모두들 건배했지 

아주 아름다운 밤

여름밤이었어

그러고 나서 달팽이 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감동했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그들은 조금씩 비틀거렸어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삶은 무겁지 않다. 돌이켜보면 축 처진 어깨로 온전한 즐거움을 맞이하지 못한 채, 마음의 짐 하나를 얹고 살아가던 과거의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안타까워 끌어안아 주고 싶기도 한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당시 겪었던 깊은 슬픔도, 어깨를 짓누르던 두려움도 이제는 많이 옅어졌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희석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시간은 결국 모든 감정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래서 더는 두렵지 않다. 삶은 생각만큼 무겁지 않아서. 슬픔과 기쁨은 언제나 한데 어우러져 존재하니까.

 

표정이 일그러지고, 누군가 아래로 힘껏 끌어당기는 것처럼 몸이 축 처져 마음의 우물만이 고여 있는 날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도 눈부시고 화창하여 견딜 수 없을 만큼 따스한 기운에,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마음이 고양되고 벅차오르는 날도 있다.

 

슬픔과 기쁨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대척점이 아니다. 두 감정은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서로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하염없이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더라도, 긴 시간의 굴레를 견뎌낼 수밖에 없는 순간을 지나더라도, 언젠가는 기쁨의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날이 찾아온다. 그것은 분명하다.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장례식을 향해 나아가던 검은 달팽이들은 어느새 형형색색의 빛을 띤다. 마시고, 즐기고, 노래한다. 살아 있는 순간을 온전히 누린다. 비극의 시간이 있다면 희극의 시간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아간다.

 

추운 겨울 속에서 걸음을 내디뎠던 달팽이들은 마침내 봄이라는 시간 속에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들이 여정을 이어가는 사이, 어느새 봄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순환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삶을 거닐어야 한다. 비애가 있다면 환희가 있다는 것을,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꽃이 피고 지고, 나무가 죽고 다시 새로운 싹이 트는 것처럼 우리를 얼싸안은 자연은 순환하고 있다.

 

요즘은 외출만 해도 여름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와닿는다. 내일의 여름이 기다려진다. 백 번도 채 남지 않았을 여름들을 가슴에 새겨 간직하고 싶다.

 

고난 속에서도 저마다의 완주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이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마음을 차게 쓸고 갔다.

뭔가 다른 것, 완평을 찾아간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완주 나무도 없고 숲의 친교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도

가끔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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