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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sight] 규정된 건강을 넘어, 나만의 계기를 발명하는 일

나를 안아주는 법에 대하여

by 오금미 에디터
2026.02.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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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마중을 나간다. 올해의 마중은 예년보다 유독 무겁고 버거웠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둔해진 움직임을 하고 있었고, 한때 열정을 쏟았던 취미들은 손을 뻗기조차 피로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건강의 적신호라 여겼다. '그래. 가끔은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수 있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쉬운 인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막연한 두려움으로 변질되었다.

 

안정감은 늘 시한부 같았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거나 마음이 평온해질 때면, 어김없이 그 뒤를 이어 불안과 불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곤 했다. 행복의 정점에서 느꼈던 그 서늘한 기시감 때문에, 나는 어느덧 마음을 방관하는 법을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서서히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자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였던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청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그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생경했다. 생판 남으로 살아온 타인에게 나의 지난한 생애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압축해 전달하는 일은 지독한 노동이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내가 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던 건 상담자의 태도였다. 그는 내가 내뱉은 굵직한 사건들만으로 나를 '아픈 사람'의 카테고리에 성급히 분류하려 했다. 재차 '맞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마저 잘못되었다는 의구심이 들 때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는 말했다. "00님은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보지 못하네요." 그 문장은 상담실을 나서는 내내 맴돌았다. 정말 나는 나를 모르는 걸까.

 

결정적인 한방은 센터의 방침이 바뀌면서 찾아왔다. 상담자는 본질적인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행정적인 이유로 내게 선택을 강요했다. 뇌파 검사 결과가 정상 범주이니 상담을 종결해도 된다는, 지극히 데이터 중심적인 통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에게 나는 치유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실적에 도움되지 않는 통계치에 불과했다는 것을. 상담실이라는 내밀하고 안전함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간마저 '효율'과 '쓸모'로 재단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돌아오는 길, 솟구치는 화를 애써 누르며 '건강함'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다. 전에는 사소한 것에도 피로를 느끼고 생각이 많았던 내가 싫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막상 그 수많은 생각이 거세된 채 무기력에 빠지자, 나는 오히려 전보다 더 큰 혼란을 느꼈다. 전과 다른 내가 낯설께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느끼는 무기력은 정말로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삶의 다음 챕터를 어떤 관점으로 열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선 상태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건강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기준치에 맞추는 수동적인 관리라면, 내가 새로 정의한 건강은 나만의 '계기'를 스스로 발명해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초라한 이 경험이 내게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타인에게 내 마음의 열쇠를 맡기고 정답을 구걸하는 대신, 내가 일어설 수 있는 디딤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 피곤하게 나를 괴롭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을 잡고, 병원을 예약하고, 알람에 맞추처 몸을 일으킨다. 남이 정해준 정상의 범주에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망상증이 나아졌음에도 현실의 무게가 두려워 괜찮아진 척 연기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결국 퇴원 후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만다. 꼭 심각한 질환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삶으로부터 퇴행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내일의 알람을 맞추며 한 발 내딛는 그 둔탁한 움직임 속에 건강함은 깃들어 있다. 타인의 규정에서 벗어나 나만의 호흡을 되찾는 것. 문득문득 세상이 무서워 이불 속으로 숨고 싶을 때, 내가 만든 작은 디딤돌이 나를 지탱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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