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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네의 작은 바에서 아카펠라 공연을 마친 콜린은 그곳에서 수상할 만큼 잘생기고, 또 묘하게 강압적인 레이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기대한 콜린은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에서 무릎을 꿇게 되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에서, 선택하는 자가 아닌 선택받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의 원제는 Pillion으로,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앉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 Pillion은 극 중에서 단순히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앉는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BDSM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BDSM은 Bondage(구속)와 Discipline(훈육), Dominance(지배)와 Submissive(복종), 그리고 Sadism(가학)과 Masochism(피학)을 의미하는 일종의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레이는 게이 바이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도미넌트, 즉 지배자이다. 지배자에겐 피지배자(서브미시브)가 함께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콜린이 된 것. 그렇기 때문에 오토바이의 뒷자리란 그들에게 있어 서브미시브의 자리이고, 운전자의 자리는 도미넌트의 자리가 된다.
다정하고 모범적이며 다소 과보호적인 부모의 영향 아래서 자란 콜린은 아직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성인이 되지 못한 ‘어른아이’다. 그런 그에게 레이는 다정한 눈 맞춤이나 키스는커녕, 겸상조차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지배자이자 첫사랑이다. 이미 성향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활동해 온 레이와 달리, 콜린은 첫사랑도 안 해본 초심자이다. 콜린은 자신의 성향을 인지하기도 전에 레이에 대한 끌림으로 성향자 관계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에게 서브미시브로서의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콜린에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규칙을 잘 수행하는 재능이 내재해 있었다는 것.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과보호 받으며 살아온 콜린에게 있어서 레이와의 관계는 일종의 파격이다. 자기 자신이라기보단 누군가의 아들이자 가족으로 형성된 자아로 존재하며 그의 규칙을 지키던 콜린은 레이라는 파격을 만나 기존 세계(가족)와 단절되고 기존의 규칙과는 전혀 다른 규칙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레이와의 만남은 콜린의 내면 성장을 위한 일종의 역할극과 같은 경험이 되는데, DS 관계가 엄격한 규칙과 역할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레이의 말처럼 콜린에겐 분명한 서브미시브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천부적 서브미시브인 콜린에게도 욕망은 있다. 피지배자로써의 규율을 잘 수행하던 콜린은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닌 성향자간의 충족을 위한 수직적인 관계이다.
극 중 레이의 대사처럼, 그들의 관계는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가 그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역할극에 있어 지배-피지배의 규율은 관계의 전부이자 그 자체인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콜린은 지배받기보단 사랑받기를 원했고, 그는 레이의 지배를 수용하는 천부적인 서브미시브이면서도 사랑을 원하는 소년이다. 일반적인 로맨틱 관계가 아니기에 서로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DS 관계에서 콜린은 성향보다 더 큰 레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석연치 않은 관계의 많은 부분을 일방적으로 감내한다.
사랑이 개입되면 관계는 필히 수평적일 수밖에 없기에, 들끓듯 사랑에 간절한 콜린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 관계의 끝은 결국 불 보듯 뻔한 일. 결국 콜린은 바닥이 아닌 침대를 원하게 되고, 아래가 아닌 옆을 원하게 되고, 뒷자리가 아닌 앞자리에서 직접 관계의 운전대를 지휘하길 원하게 된다. 사랑이 개입되어선 안 되는 관계에 사랑이 자리 잡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라는 특수한 관계를 한 개인의 자아 형성 과정과 연관시켜 이끌고 이끌리는 관계가 성장 과정에 있는 한 개인의 내면 안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사랑과 욕망, 지배와 피지배, 정복과 수용의 사이를 온몸으로 부딪힌다. 안온한 온실 같던 가정에서 자라며 그들의 규칙을 지켜오던 콜린은 레이를 만나 파격을 경험하고 이전의 규칙과는 전혀 다른 레이의 규칙을 수행하며 그 양단간에 상황에서 결국 자신의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른이 된다.
타인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규율을 수용하다 비로소 자신의 값을 찾게 되고, 정확한 언어로 욕망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한 성장의 결과일 것. ‘뒷자리에 타’가 아닌 ‘뒷자리에 태워줘’. 당신 앞에 기꺼이 무릎 꿇을 것이지만 그는 온전한 나의 선택의 결과이자 욕망이라는 것을, 이 관계의 주도권은 결국 지배당하길 선택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콜린은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