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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토바이 뒷자리의 자유로운 복종에 대하여 - 뒷자리에 태워줘 [영화]

해리 라이튼 감독의 사랑과 권력에 관한 발랄한 시선, '뒷자리에 태워줘' 국내 개봉

by 정혜린 에디터
2026.05.21 17:38

 

 

오토바이의 뒷자리를 뜻하는 ‘Pillion’을 원제로 하는 이 영화는, 북미 개봉 이후 로튼토마토 지수 99%를 기록하며 관객들로부터 그만의 신선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78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각본상 수상, 영국독립영화상 작품상까지 평단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 작품이, 한국 관객에게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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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포스터에서 비춰지는 도발적인 이미지는 두 남자 사이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하지만, 막상 영화는 좀 더 발랄한 로맨스 코미디에 가까웠다.

 

극장 안에서 10분에 한 번씩은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BDSM(성적 기호 중 가학적 성향)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다소 노골적인 장면들에 당혹스럽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유머를 가미하면서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 가벼움과 충격의 온탕 냉탕을 오가며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된다. ‘옳은 사랑’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콜린은 다정한 부모님 아래서 자란 다정한 아들이다. 합창단으로 바에서 일하는 콜린에게 어머니는 직접 남자를 데려와 소개해 준다. 그러나 콜린의 안중은 다른 데로 가 있다. 우락부락한 바이커들의 무리는 강력한 남성미를 뿜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던 길 도로에서 오토바이로 부모님 차를 앞질러 가던 흰 바이커 옷의 남자가 눈에 띈다. 그를 의식한 채 다가간 콜린은 첫 만남부터 아주 황당한 무례를 당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두 사람은 서로 이것을 어떠한 시그널로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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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이커 옷을 입은 레이는, 살면서 눈빛 한 번으로 얻어내지 못한 게 없어 보일 정도로 미남이다. 영화의 끝까지 가도 이 남자의 직업, 가족, 과거사 등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만큼 미스테리하면서 동시에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레이는 매우 일방적으로 콜린을 불러내 만나고, 어느 날은 대뜸 집으로 초대한다. 기대에 부풀어 오른 콜린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집까지 태워져 간다.


레이는 콜린에게 손님 대접은커녕 일말의 친절도 베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모든 집안일을 콜린에게 맡기고, 소파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콜린은 그 옆에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성행위 이외에는 어떠한 정서적 교류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규칙이다.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잔다. 철저한 상하관계의 분리 하에서, 레이가 콜린에게 주는 칭찬은 ‘넌 순종하는 것에 소질이 있어’ 따위의 말이다.

 

관객을 포함한 제삼자는 콜린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첫사랑의 쾌락에 취해 헌시를 읊는 콜린을 보면서 이내 둘만의 세상에서 손을 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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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둘끼리 행복하다고 해도, 콜린에 대한 걱정을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콜린의 엄마다.

 

레이와의 만남 이후, 길고 꼬불거리던 머리카락을 삭발해 버린 콜린을 보면서 그의 어머니는 레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자기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무척 궁금해한다. 결국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콜린은 레이를 가족 식사 자리로 불러오는데, 귀하게 키운 아들이 제 심부름꾼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레이의 행동에 어머니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이때 레이는 콜린이 좋은 게 중요할 뿐 어머니 생각은 상관없다고 선을 긋고는 자리를 떠나버린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를 때, 완벽히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였던 이 커플에게도 관계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콜린은 레이에게 좀 더 인간적인 배려, 일반적인 사랑을 원하기 시작한다. 군말 없이 완전한 복종에 동의한다는 전제로 쌓아 올린 관계였기에, 레이 입장에서 콜린의 이런 요구는 곧 관계의 종말이다. 한편, 콜린에게 있어서 레이는 본인의 관계적 성향을 형성해 준 첫 번째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 합의된 강압 속에서 합의를 깨는 행동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콜린의 성향상 그리고 관계의 성격상 매우 용기 있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 혹은 성애의 관점에서 레이는 곧 콜린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반기를 드는 일은 조그만 반항이 아니라 혁명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 서사의 면에서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떠올린 관객들도 많았던 것 같다. 다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서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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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더 크게 보면 ‘관계’는 무한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바깥의 시선으로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권력이 개인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는지에 따라 도덕적 판단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기는 하다. 이번 영화는 최대한 도덕적 잣대로부터 벗어나서, 두 인물의 마땅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녹여냈다.


어딘가 옛날 영화를 보는 듯 시원시원한 전개와 파격적인 소재로 이목을 끌었고, 사랑을 둘러싼 시대적인 도덕률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지점을 던지고 간 작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 라이튼 감독의 ‘뒷자리에 태워줘’는 말 그대로 ‘주목할 만한 시선’이었다는 소소한 감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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