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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스물두 번째 축제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6 [영화]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

by 김혜원 에디터
2026.09.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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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CGV연남에서 관객과 만났다. 총 6일간 진행되었던 올해의 축제의 슬로건은 ‘두루두루’. 올해로 22회를 맞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를 기념하기 위해 숫자 22를 ‘둘둘’로, 또 그 단어를 ‘두루두루’로 펼쳐 탄생한 말이다. 여럿이 모여 탄생하는 애니메이션처럼 서로를 감싸 안겠다는 열정적이면서도 따스한 취지였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17일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총 6일간의 각기 다른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 이틀 차인 18일 일정에 참여하였으며, <추모 특별 상영: 창백한 얼굴들>과 <새벽비행2>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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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상영이었던 <창백한 얼굴들>은 지난 7월 말 작고하신 고(故) 허범욱 감독을 추모하기 위해 편성된 특별 상영 프로그램이었다.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인 <평범한 식사>를 제작하며 꿈꾸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 합격해 본격적인 감독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번 애니페스트에서 상영된 추모작은 감독의 두 번째 단편인 <선량한 인간들의 도시>와 첫 장편 <창백한 얼굴들> 두 종류였다. 그리고 그중 내가 관람한 <창백한 얼굴들>은 201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미 세계 각국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한 이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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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범욱 감독의 <창백한 얼굴들>은 모든 색이 사라진 창백한 행성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인 ‘최민재’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외눈박이 세계에서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한 ‘색깔’이라는 존재도 작품 속 새하얀 세상에서는 너무나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에게 버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이라 불리며 배척당하고, 악인들에게 노림 받는 민재의 삶은 온통 폭력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영화는 주로 혼자가 되어 곳곳을 떠돌며 살아가던 민재가 한 범죄 집단을 만나고 헤어지는 짧은 기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외로운 소년은 그들을 만나며 잠시나마 정착할 곳을 찾았다고 여기지만, 이내 이 행성에는 자신이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우주를 갈망하며 좌절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필요했던 곳은 오로지 누군가의 진심 어린 곁이라는 좁은 공간뿐이었음에도.

       

      작품이 상영되기 전 있었던 추모사에서 감독의 연출 의도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먹먹한 마음으로 계속 앉아있는데 머릿속에 감독의 말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줄곧 메아리치는 듯했다.

         

       
      나는 너희들과 같이 살고 싶다. 너희들처럼 가족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싶다.식탁에 앉아 오손도손 밥을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나의 특별함은 너희들을 해치지 않는다. 나는 틀린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다른 것뿐이다.
       

       

      이후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새벽비행2>에 참석했다. 장편 하나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던 앞선 추모 상영과 달리 다른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짧은 단편 여럿을 모아 상영하는 식이었다. <새벽비행2>는 총 8개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순서대로 < Vegetable >, <코뿔소 이슈>, < Fingerbang >, <그래서 나는 언제 연애해?>, <눈이 내리는 소리>, <실로>, <닭잡는날>, < SOMNIUM >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Fingerbang핑거뱅 >과 <닭잡는날>이었다. 김연우 감독의 <핑거뱅>은 약 15분 길이의 2D 애니메이션으로, 특이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피되는 한 여자와 그런 그녀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정체불명의 손가락 사이의 만남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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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제멋대로 기어 다니며 감정도 표현하고 교류도 하는 손가락. 그런 존재가 유일하게 자신을 향한 애정 표현을 해오자 외롭던 여자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를 따라 기묘한 공간으로 들어간 뒤부터 달콤한 시간을 보내며 점점 뒤틀려간다.

       

      대사나 목소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캐릭터의 생김새도 단순하지만, 언뜻 유쾌하게도 들릴 법한 배경음악이나 상당히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장면 전환과 어우러지며 오히려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극대화되었다. 15분이면 전체 <새벽비행2> 프로그램 중에서도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 속하는데, 시간 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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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지 감독의 <닭잡는날>은 약 17분 길이의 애니메이션으로, 2D와 3D를 모두 활용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애니’에 가까운 작품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더빙, 기승전결로 흘러가는 스토리와 연출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 ‘신유정’은 겉보기엔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특이하게도 엄마가 무당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엄마 ‘신정화’는 아침마다 딸의 신점을 봐주고 딸의 친구를 위한 굿까지 해줄 정도로 유정을 사랑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매번 어긋난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화는 딸과 딸 친구의 액운을 막기 위한 대수대명 굿을 강행하려 시도한다.

       

      무당과 굿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내용상의 어려움이나 이질감 없이 전개가 이어지는 점이 좋았으며, 실제로 엄마 정화가 벌이는 장면을 사실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작품 전반적으로 마치 어떤 일이 곧 터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일반인이 실제로 무당이나 굿을 봤을 때 느끼곤 하는 긴장감을 작품 전체에 녹여낸 것 같다고 느껴졌다. 만일 상대가 원하지 않는 사랑을 안겨주려 한다면 그것은 그저 강요일 뿐일까, 혹은 그래도 어찌 됐든 사랑인 걸까.

       

      *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라 이번 인디페스트에 참여하면서도 걱정이 되었었다. 상업 애니도 보지 않은 지 오래된 내가 인디 애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관에 들어서서 입장 티켓을 받을 때까지도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프로그램까지 모두 관람을 마치고 나니 불필요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상업, 대중, 인디 등 여러 갈래로 작품이 분류될 수는 있겠으나 관중의 앞에 놓이는 순간 무의미한 구분은 모두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롯한 하나의 작품 그 자체다. 여럿이 힘을 모아 그려내고, 녹음하고, 그렇게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존재. 그리고 한 사람의 관중으로서 필요한 것은 깊은 이해력보다는 이 축제를 즐길 마음이었다. 두루두루,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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