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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유난히 날씨가 맑던 11월의 첫 날,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열린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택시까지 타면서 도착한 공항엔 마침 영종도에서 열리는 여러 공연들을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최근 들어 상당히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이 영종도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그 위세에 놀라게 되었다. 공연장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마주하게 된 어딘가 들뜬 모습의 관객들을 보며,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예년과는 다르게 극도로 추워진 가을 날씨와, 짧지 않은 이동 시간, 복잡한 교통편까지, 그럼에도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을 선택했던 이유는 다채로운 라인업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들을 한 페스티벌 안에 모을 수 있었을까, 싶은 경탄과 설렘이 있었다고 할까. 여러 페스티벌을 다니며 페스티벌만의 공통된 ‘테마’를 느끼는 것을 즐기곤 했는데, 이 다양한 장르의 라인업에서 과연 어떤 테마를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도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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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본 무대는 페퍼톤스였다. 추운 날씨를 걱정했었지만 이는 기우였음을 곧 알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어딘가 봄기운을 가득 담은 페퍼톤스의 무대 덕에 두꺼운 외투를 벗어 손에 들고 공연을 즐겼다. 어쩌면 페퍼톤스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관례가 된, ‘21세기의 어떤 날’의 ‘2025년 11월 1일’을 모두 함께 목청 높여 외치며 비로소 페스티벌에 온 것을 실감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명곡들과 페퍼톤스 특유의 공대생 유머에 웃다 보니 40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사실 페스티벌에서 모든 무대를 다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교적 넓은 부지를 사용하는 페스티벌은 스테이지가 두 개 이상인 곳들도 있고, 그러다 보면 무대가 겹치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무대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중간마다 쉬면서 체력을 아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다채로운 라인업이다. 스테이지도 하나고, 체험 부스도 적고, 라인업은 알차고.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에 대한 첫 인상은 그야말로 ‘알짜배기’였다. 오로지 무대만을 듣고, 보고, 즐기기 위해선 더 없이 좋은 페스티벌이랄까. 쉴 틈 없이 여러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며 이 알짜배기 페스티벌의 묘미는 쉬지 않음에 있구나, 생각했다. 맥주 부스가 없었던 것은 아쉬웠지만, 플라자와 연결된 상점들과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불편이 해소되었다.

 

송소희는 마치 목소리 자체가 악기인 듯,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소리로 무대를 꾸몄고, 권진아는 갑자기 내린 비에도 독보적인 음색과 멜로디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어서 크러쉬의 무대부턴 맑은 하늘이 다시 함께 했다. 평소 크러쉬의 건강 이슈를 알게 되고 약간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만드는 그의 모습에 남몰래 감동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음악 또한 아주 좋아했기에,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무대를 즐겼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우즈의 무대도 놀라울 만큼 강렬했으며. 근래 독보적인 이미지로 솔로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는 이찬혁의 무대 또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감상을 이끌게 했다. 멘트 하나 없이 철저하게 몰입한 듯한 이찬혁의 애티튜드와, 그와 함께 호흡하는 세션들의 흐름도 인상적이었다. 규현은 추운 날씨를 따듯하게 녹일 잔잔한 발라드로 무대를 꾸몄다. 아티스트들의 단독 공연 일정을 찾아볼 정도로 매료되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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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하고 그려왔던 이소라의 무대. 그의 음악 중 몇 곡은 정말 물릴 정도로 듣기도 했고, 그럼에도 꼭 그 음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는 터라 전설의 포켓몬처럼 여겨지는 이소라의 무대를 오래 기다렸고, 또 기대했다. 음향 문제로 인해 무대가 지연되어 추위 속에서 수 분을 기다리는 동안 그가 관객에게 던지는 일상적인 대화들마저도 음악처럼 들릴 만큼 낭만적이었다. 유튜브로만 볼 수 있는, 또 몇 번을 돌려보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지금 눈앞에서 재연되고 있는 벅찬 기분. 무대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시작된 듯한, 지금 이 순간에 확실히 포함된 듯한, 그런 기분들.

 

평생 한 번은 꼭 들어보고 싶었던 ‘Track 9’, ‘Track 6’, ‘청혼’, ‘제발’, ‘처음 느낌 그대로’, ‘바람이 분다’ 같은 명곡들을 들을 땐 만들어 놓지도 않았던 버킷리스트의 항목을 지운 듯한 벅찬 감정이 들었고, 마치 우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제 그만’은 이별한 적도 없는 나를 이별한 감상에 젖게 했다. 무대가 조금 지연되는 바람에 예약한 택시를 타기 위해 중간에 급히 떠났어야 했는데, 운이 좋게도 퇴장하기 직전 마지막 곡인 ‘바람이 분다’를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어떤 음악을 좋아해서 그렇게 감상에 젖어 본 게 언제인지,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에 대한 잔상이 마음에 남아본 적은 또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는데 이 날의 경험을 통해 그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을 경험할 수 있어서 기뻤다. 짐을 끌어안고 멀리서 나마 봤던 마지막 곡 ‘바람이 분다’의 풍경엔 ‘눈썹달’보다 조금 통통한 밝은 반달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마저도 완벽했던 무대였다.

   

여러 걱정들과 문제들로 페스티벌을 잘 즐길 수 있을까, 하던 걱정들은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전광판에 가사를 띄워주는 주최 측의 센스도 인상적이었다.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의 무대들과 그들이 상징하는 여러 색채,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의 테마는 ‘다채로움’ 그 자체였다. 오랜만의 페스티벌 경험을 알록달록한 색채로 남길 수 있게 도와준 컬러 인 뮤직 페스티벌이 내년에도 올해처럼 다채롭게 돌아오기를, 그렇게 또 누군가의 즐겁고 벅찬 경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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