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고 내성적인 콜린과 훤칠하고 완벽해 보이는 레이. 처음에는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둘의 관계에서 절절매는 콜린의 이야기가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좀 더 깊고 복잡하고 얽혀 있다.

둘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닌 복종과 지배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상하관계에 따라 각자의 역할과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당연하게도 동등하지 못하다. 허나 레이를 사랑하는 콜린은 헌신적인 역할을 자처한다.
아니 사실은, 레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복종과 헌신에 대한 욕망이 있다.
레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콜린이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콜린은 변화를 원하게 된다.
시한부였던 콜린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레이는 평소라면 허락해주지 않았을 행동들을 용인해 준다. 이날의 작은 일탈에서 만족감을 얻은 콜린은 앞으로도 일주일에 하루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며 부탁한다.

콜린은 레이를 알고 난 후 그에게 구속당하고 오롯이 그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 생활에서 오히려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게 된다. 때문에 이 관계에 만족하면서도 가끔은 동등한 연인으로서 대우받고 싶어한다.
이와 같은 콜린의 아이러니한 심리 묘사를 통해 감독은 욕망의 다층적인 층위를 비춘다. 가장 수동적인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사랑과 욕망을 쟁취해가는 콜린의 내적 성장이 돋보인다.
영화 내내 레이는 속내를 알기 어려운 인물로 그려진다. 감정에 솔직한 콜린과는 달리 표정의 변화조차 크지 않고, 여러모로 정체를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레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취약한 내면을 드러낼 때는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밀려온다.
콜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억압해 오던 레이가 처음으로 제 감정을 해방시키는 순간이다.

자동차와 달리 바이크는 운전자와 동승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앉을 수 없다. 동승자는 운전자의 뒷자리, 즉 필리온(Pillion)에 앉아 그를 꽉 붙잡는 수밖에 없다. 운전자는 뒤를 돌아볼 수 없다. 오직 앞만 바라본 채 자신의 의지대로 운전대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지만 욕망의 한계를 넘어 질주하는 그 순간, 둘은 일상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나란히 앉지는 못해도 둘은 같은 곳을 볼 수 있다.
운전대를, 혹은 앞 사람의 허리를 꽉 붙잡아 서로를 구속하는 동시에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욕망을 해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