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대사는 없다. 간결한 그림체와 인물, 색채로 상실의 고통을 보여준다. 윌 매코맥과 마이클 고비어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은 딸을 잃은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딸을 잃은 그 ‘이후’의 일상은 그 어떤 색도 담기지 못한다.
검은색과 회색,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부부의 일상에 유일하게 색이 드러난다.
파란색. 세탁기 안에서 옷감을 꺼낼 때 유일하게 색을 가진 옷감의 색이다. 그리고 색깔이 등장한 순간부터 ‘아내’를 ‘엄마’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세탁기 안의 옷감을 꺼내 얼굴을 파묻고 운다. 나는 옷감에서 딸의 냄새를 찾으려는 엄마의 무너진 마음을 본다. 내가 수업을 듣기 위해 잠시 타국으로 떠났을 때 엄마는 세탁기에 남아있는 나의 마지막 빨래를 발견하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기억이 났다. 매일 돌리는 빨래, 일상 속에서 딸아이는 사라졌지만 아직 그 아이의 흔적이 남아있을 때, 그리고 그 흔적이 예기치 못한 채 발견될 때, 그리고 그 흔적이 마지막일 거라는 확신이 올 때. 상실이 들어선 엄마의 슬픔과 고통이 뼛속까지 깊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파란 흔적을 통해 묻어두었던 딸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간다. 영화에서 그림자로 보여지는 이 영혼들은 인물들의 내면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그림자는 딸의 방 안에서 사진들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딸의 그림자와 아빠의 그림자와 함께 과거 행복했던 기억을 보여준다. 여행을 떠나던 차 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딸이 처음 태어났던 순간부터,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축구공을 차고, 생일파티에서 좋아하는 아이와 뽀뽀를 하는 순간들까지.
딸은 이제 책가방을 멘다. 학교를 향해 간다. 엄마와 아빠의 그림자는 딸의 앞길을 막아보려 처절하게 애써보지만 그림자의 몸에는 힘이 없다. 그림자들은 아이를 끌어안고 앞을 막고 붙잡지만 딸은 결국 학교 앞에 다다르고 만다. 학교 종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총소리.
아이들의 비명소리.
영화에서 대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번역도 자막도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총소리 이후 딱 한 번 자막이 등장한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랑해요”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삶에 쫓기지만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모든 것들은 무용해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슬픔이 몰려온다. 참사와 재난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연락처를 찾아 헤매는 손가락들에 대해 생각한다.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처럼 우리의 생명에 위협을 가했던, 뉴스를 보며 함께 마음을 졸였던 사고들이 떠올랐다.
죽음이 슬퍼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존재들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죽음, 사망자들이 단순한 숫자로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삶, 사연이 느껴질 때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가정의 일상, 아이가 태어나고, 느꼈던 행복들을 힘께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 죽음은 나와 더 이상 무관한 일이 아니게 된다.
절벽의 양 끝에 서 있던 부부는 (몸을 크게 부풀린) 딸의 그림자가 절벽을 하트 모양으로 접어 그들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달처럼 환하게 웃는다. 물론 여전히 이들은 떠난 딸아이의 침대 위에 걸터앉아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 안는다.
어쩌면 이들은 딸을 잃고 그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은 채 숨고 회피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연한 발견을 계기로 다시 딸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직시하고 끌어안는다.
총기 난사. 무고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일들의 심각성과 고통을 생각한다.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 핵심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아주 긴 여운을 남긴다. 더불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의 소중함까지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이후에도 오랜 시간 울었다. 막이 내리고 난 뒤 이 영화의 러닝타임만큼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들만큼 슬픔을 건드는 작품, 많은 이들이 보면서 함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