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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도서]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by 김민주 에디터
2026.08.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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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오로라』에서 ‘너’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제주에서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오로라. 지금까지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듯 만든 이름이다. 죄책감 대신 자유를, 진실 대신 거짓을 택하겠다는 다짐도 그 이름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코니에서 죽은 새가 발견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어릴 적 살이 찢어져 꿰매야 했던 적이 있다. 무서웠지만 내가 존경하던 사람을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라면 소리 내지 않고 견딜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해보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께 잘 견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빌려 내가 가진 힘을 꺼내 썼다. 생각해보면 다른 이름을 갖는 일도 비슷하다. 이름을 하나 더 붙인다고 해서 이전의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로는 하기 어려운 일을 다른 이름 아래에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평소의 나와 조금 거리를 두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로라는 ‘너’와 다른 사람일까.

 

『오로라』의 ‘너’는 오로라라는 이름을 한 번 붙이고 끝내지 않는다. 자신이 오로라라는 사실을 계속 되새긴다. 새로운 이름을 통해 자신을 바꾸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그 이름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가 더 선명해진다.

 

그때 발코니의 죽은 새가 등장한다. 새는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러나 소설 속 새는 날지 못한 채 죽어 있다. 새로운 이름을 얻고 다른 삶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놓인 이 장면은 묘한 불안을 남긴다. 다른 내가 되겠다는 말은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지금의 나를 견디지 못해 잠시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일까.

 

그 앞에서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얼음바다>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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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얼음바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프리드리히의 화면에는 얼어붙은 바다와 그 사이에 파묻힌 배가 있다. 하지만 얼음은 단순히 배를 짓누르는 장애물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화면 중앙의 조각들은 날카롭게 위로 솟아오르며 수직적인 힘을 만든다. 배가 난파되어 멈춘 자리에서, 조각은 오히려 위를 향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좌절과 상승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배는 멈췄지만 그 주변의 얼음은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무언가가 끝난 자리에서 무언가는 생성된다. 피어난 것은 새로이 명명되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본질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수평선 너머에 흐릿하게 한 빙하가 보인다. 그림자처럼 중앙의 조각들과 비슷한 형상을 띈다. 반복된 것들은 화면에 안정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작품의 성격을 드러낸다. 펼쳐진 얼음, 조각들은 결국 '얼음 바다'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이다.

 

다른 이름을 갖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이미 이름이 명명되어 본 적이 있으니, 새롭게 주어진 이름은 나를 현실에서 떼어놓는 도피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던 모습을 꺼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오로라』의 ‘너’에게 오로라가 가능성이었는지 도피였는지는 끝내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이름을 선택한 것도 나고, 그 이름으로 행동한 것도 나이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 위에, 아직 알지 못했던 나 하나를 더 살아보는 일.

 

'오로라'는 나를 버리는 이름이 아니라, 나로 돌아오기 위해 잠시 빌려 쓰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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