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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더 라스트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2026년 3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공연장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더 라스트맨』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기 전 알게 된 이 공연만의 특이점은 1인극이라는 점, 그리고 배우마다 직업이나 과거 배경과 같은 캐릭터가 다르게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택한 공연의 주인공, 생존자 역은 홍나현 배우가 맡았다.

뮤지컬에서 1인극은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나가는 한계, 또 한 명의 배우가 러닝타임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어려움 탓에 극이 올라오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내가 처음으로 관람하게 된 1인극이었고 한 명의 인물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무대의 우측에는 책상, 그리고 중앙에는 문과 침대가 놓인다. 그리고 곳곳에 지지직거리는 모니터 화면이 다양한 크기와 각도로 설치되어있다. 이곳은 생존자가 머무는 방공호 내부의 모습이다. 무대의 중앙에 위치한 문은 여러 개의 잠금장치를 통해 닫힌, 외부에서 절대 열릴 수 없는 작동 방식을 가졌다. 그렇다면 생존자는 어떠한 존재와 위험으로부터 숨기 위해 문을 설치하고 방공호를 만들게 되었을까.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출몰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태를 예견한 생존자의 방공호 속 생존 이야기를 다룬다. 생존자에게 주어진 것은 1년 치의 식량과 물뿐이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비가 내려 집안이 전부 젖거나 수도와 전기가 끊기는 위기가 발생한다. 관객은 생존자가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어떻게 헤쳐나가게 되는지 그 외롭고 처절한 사투를 함께하게 된다.

홍나현 배우의 ‘생존자’는 이제 곧 성인을 앞둔 자립 준비 청소년,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설정이다. 우리는 생존자를 처음 마주하면서 열정적이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극이 진행될수록 생존자가 어떤 식으로 감정 변화를 겪고 변화하게 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존자는 휴대폰으로 자신이 방공호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렇게 찍고 있는 영상은 무대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모니터를 통해 동시에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 세계가 갖는 특수성, 상대 인물이 없는 1인극 안에서 인물이 계속 발화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준다.
또 생존자가 이야기를 건네고, 다른 인물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곰 인형 ‘존버’다. ‘존나 버티기’라는 뜻으로 등장해 한때 가장 큰 유행어로 거론되었던 ‘존버’는 사실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으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는 단어다. 또한 생존자의 현재 상황과도 크게 맞닿아 있다.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꾹 참고 버텨라, 그러면 견딜만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인형은 존재만으로 생존자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배우마다 달라지는 것은 캐릭터 설정뿐만 아니라 존버의 생김새 역시 그렇다. 홍나현 배우의 존버는 토끼 귀를 쓴 곰 인형이다. 극 중에서 생존자는 토끼 귀를 벗겨주며 존버에게 말한다. “왜 그러고 있어, 내 앞에서는 쓰지 않아도 돼.”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생존자의 과거와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 애써 숨기고 만들어냈던 모습, 자신의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 어쩌면 생존자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 모른다.
존버 인형뿐만 아니라 생일날 혼자 먹는 초코파이는 외로운 생존자에게 ‘정’을 의미하고, 오뚝이 인형은 ‘넘어져도 일어난다’라는 직관적인 의미의 소품으로서 무대 위에 존재한다. 이처럼 무대 위에서 대사나 소품, 행동을 통해 이 인물이 갖는 외로움과 극의 메시지를 찾아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대에는 생존자의 꿈이 드러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엄마 아빠와 다정하게 찍은 가족사진, 대학 학과 잠바, (자신의 꿈이었던) 탐험가 옷과 모자. 식량이 떨어지고 계속해서 무응답이었던 수신기에서 무언가 신호를 감지한 생존자가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그 모든 옷을 겹쳐 입고 우는 모습, 엄마를 그리며 혼자 과거 회상을 하는 모습에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또한 생존자가 있냐는 물음에 무응답이던 수신기에서 신호를 읽고 자신이 꼭 구해주러 가겠다는 생존자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같이 위태롭고 외로운 모습이지만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처절한 생존자의 모습이 또렷한 인상으로 남았다. 관객은 그동안 생존자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버텨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도 신원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존 신호를 읽고 선뜻 위험한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생존자의 모습이 참 안쓰럽고 마음이 갔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큰 반전을 깨닫는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괴성, 초록색 빛 그 존재와 세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좀비의 존재를 드러나게 만든다.
마지막에 마이크는 꺼지고 생존자는 외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객석 2층과 1층의 관객들의 얼굴과 천천히 눈 마주치며 생존자, 아니 한 사람이 진심을 다해 외친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고.
예전에 뉴스를 볼 때 청년 고독사, 고립·은둔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적 있다. 매일매일 외부와의 처절한 사투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닌 ‘생존’의 개념으로 매일을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트라우마, 환경들이 그들을 방공호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나도 가끔은 외치고 싶다.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위치가 아닌,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간에서 당신은,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단순히 누군가가 곁을 지킨다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아픔을 나누고 이해받는다는 의미로 내게는 온다.
누구에게나 생존자의 좀비 같은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은밀해서 고백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위기와 고난을 거쳐온 ‘생존자’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개인의 고통 앞에서 살아남았고, 살아내기를 택했다. 그것만으로 나는 모두에게 위로와 포옹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다시 상기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