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뭐 하는 사람이세요?

글 입력 2024.03.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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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말. 사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맨 처음 한 말은 아니고,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내부 기둥에 새겨져 있는 글귀라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많다. 소개팅에 나가서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경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등등. 또,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줄 아는 것 처럼 남을 대할 때도 나를 잘 알고 대해야 한다는 건 아마 다들 알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가늠이 되진 않는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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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어떻게든 되겠지”


 

예나 지금이나 늘 걱정을 달고 산다. 걱정의 크기는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일어나게 될 모든 일련의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질 자신이 없다. 책임을 안 지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 져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책임 매뉴얼이 정해져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걱정하다 보니 한없이 예민해진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특약 처방 좌우명을 내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기. 무책임하게 마구잡이로 일을 행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고, 걱정하고, 미련을 갖지 말자는 의미로 되내인다. 나는 그 결정에 최선을 다 했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쁘면 고치거나 다른 방안을 찾아볼 것이다. 정말로 돌이켜보면 과거에 엄청나게 고민했던 일이 지금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런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도 완전히 고민에서 자유로워지진 못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밑도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 간신히 절벽 중간에 매달려 앉을 수는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안을 하나 정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싫어하는 건 확고하더라고요.”


 

주얼리샵에 가 여러가지 반지를 껴보면서 남자 친구가 점원에게 한 말. 틀린 말은 아니라서 멋쩍게 웃으며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 반지 디자인도 예쁘고, 저 디자인도 예쁜데, 한 번 안 예쁘다고 느낀 건 몇 번을 다시 봐도 맘이 변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건 참 많다. 음식으로 예를 들면 샤브샤브 좋아하고, 떡볶이 좋아하고, 치킨 좋아하고, 곱창 볶음 좋아한다. 그렇지만 민트초코는 싫다. 누군가 민트초코의 맛에 대해 사흘 밤낮 일장연설을 늘어놓더라도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싫은 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드러내려하지 않지만, 여우주연상은 후보에도 못 나갈 정도로 티가 잘 난다고 한다. (나는 잘 숨긴 거 같은데) 내가 만약 무언가 거절을 못 한다면 그것에 대해 100%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확고하게 싫다, 못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120% 싫은 것이다. 민트초코처럼 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스몰 토크.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비록 그 얘기가 재미도 없고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 하더라도 말이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호감도, 친밀도 등이 더해지고, ‘타인’에서 ‘지인’, 혹은 ‘친구’라는 단계로 관계가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행위는 나에게 있어 고역이다. 내가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흥미로워 할지, 재미없어 할지 모르겠고, 혹여나 이야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선을 넘는 발언을 할까봐 걱정도 든다. 사실 제일 처음에 이야기한 걱정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사실은 관심사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보니 할 말이 없는 게 가장 크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와 머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마이너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보니,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다. “이번 LCK 보셨어요?” 남성을 제외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서 대화에 성공할 확률은 12.5% 정도일 거다. 우리 회사 사무실의 여성 비율로 따져본 확률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고, 말주변이 없어졌다. 그냥 정말, 무슨 말을 해야될 지 모르겠다. 듣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다 어느 정도 아는 지식에 한해서 한 마디 정도 던지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경청을 잘 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 흥미에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 것 역시 너무 피곤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그게 편해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나 자신을 갈고 닦고 노력하는 방향보다 회피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었다.

 

사람, 도대체 어떻게 만나고 사귈 수 있는 건지 나에겐 너무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빨랐죠?"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는, 초등학교에서 개최했던 "타자 빨리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것. 그래서일까 타자뿐 아니라 배우거나 행하는 속도가 빨랐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게임들도 대부분 빠르게 익혔고, 물감을 묻혀 향초를 만드는 등의 공방 작업도 남들보다 빨리 끝내 기다리곤 했다. 속독까지는 아니어도, 책을 읽는 속도도 느린 편은 아니다. 웃긴 건 밥 먹는 속도도 빠르다.

 

빠르게 행하면 좋은 점이 생각보다 많다. 놀고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이기에, 필요한 일을 빨리 끝내놓고 남은 시간 동안 쉬면 그만큼 마음이 놓일 때가 또 없다. 그렇다보니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일은 머리가 아프고, 단순 작업들이 마음이 편할 때가 많다. 작업물의 퀄리티가 떨어질 때는 빠른 작업으로 인해 꼼꼼하지 못 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감각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건 나도 슬픈 일이다. 디자인과를 나왔더라면 손도 빠르면서 감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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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여기까지 오셨다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하소연과 같은 소개글을 읽으시는 데 고생 많으셨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 이직을 준비하려 하고 있어, 나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이런 글을 쓰게 됐다. 온갖 단점 아닌 단점들만 늘어놓아서 그자디 소용이 있을까 싶다만은..

 

그래도 하나하나씩 계속 늘어놓다 보면 하나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만큼 장점이 (작지만) 정말로 소중할 것 같다.

 

 

[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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