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나를 고유하고 고정된 존재로 상상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변한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신경과학자의 단순한 성장담이나 성공 자랑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면서,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존재’에 관한 책에 가깝다. 과학에 관한 설명과 함께 쓰여진 그의 ‘존재담’은 그의 인생을 비추어 나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목차인 ‘무질서’, ‘카오스’, ‘질서’, ‘카오스의 가장자리’, ‘창발’은 과학의 언어로 읽히는 게 아닌, 존재의 언어로 읽힌다.
수실로는 현재 메타 리얼리티 랩스에서 신경과학과 머신러닝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학에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이 있다고 한다. 이는 삶에 관한 질문들이고 자기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약물 중독 상태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와는 헤어졌으며, 어머니는 심각한 약물 중독과 우울증을 앓았다. 수실로는 그 부모님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다. 가난한 상황과 돌봄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실로는 혼란 ‘카오스’와도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왜 어머니는 나아지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수실로의 인생에 몇 가지 변수들이 끼어든다. 지금의 인생까지 영향을 미친 ‘게임’같은 것들. 이후 그와 누나는 보육시설에 보내진다. 하지만 마치 불행해보이는 이때에도 변수는 끼어든다. 바로 ‘컴퓨터’다. 그곳에서 친구 오마르를 만나고 대학이라는 곳을 마음에 품어보기도 한다. 이후 기숙학교에 가고 기존에 관심있던 컴퓨터와 수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결국 대학에 가게 된다. 컴퓨터와 수학을 공부하러. 수실로는 카오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초기 조건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결과를 만드는 시스템.
우리의 삶을 ‘조건’으로 바라보자.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누구에게서 태어나 자랐는지, 주변에는 누가 있었는지… 태어나보니 있었던 것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조건들은 얼마간 우리의 인생에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얼마간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사람들은 자기의 조건을 한탄하기도 한다. 사회는 말한다. 그런 것을 ‘노오력’으로 극복하라고. 누군가는 노력으로 이런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노력이 허상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만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실로는 여기에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하지만 모든 걸 바꿀 가능성이 있는 한 가지를 더한다. 바로 ‘변수’다. 변수는 우리의 인생에 너무나 많고 서로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인생은 주어진 것이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고, 또 노력으로 전부를 다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대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그런 수실로의 생각 중심에는 누나 에스터가 있다. 누나 에스터와 수실로는 같은 환경과 같은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굉장히 다르게 흘러간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런 고민 끝에 나온 대답처럼 들린다. 누나 에스터를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나온 존재론인 이 책이 에스터를 위한 일종의 편지, 헌정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그 때문일 것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수실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후,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후, 신경망을 공부하게 된다. 신경망을 공부하면서 수실로는 다시 한 번 ‘변수’로서의 인생을 말한다. 이때 다시 떠오르는 건, 아마 책 초반에 나오는 한 학생의 질문이다. 강연이 끝난 뒤, 찾아온 웨이터로 일하는 여학생이 어떻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냐고 묻는다. 수실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끈기와 여러 행운 덕분이었죠.” 그를 둘러싼 변수들은 그를 예측하지 못할 곳으로 데려왔다.
예측이 불가능한 것들이 데려온 곳이 ‘성공’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에 망설임이 든다.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단정이 의미가 있을까. 이 역시 하나의 변수가 되어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 뿐이다. 그렇게 변수들은 다시 또 만나, 완전히 새로운 변화 즉 ‘창발’을 가져올 뿐이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성질은 어떤 면에서 불안하지만, 그 역동성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는 등장하지조차 않는 한국의 청년들이 생각이 났다. 많은 것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고, 때로는 세상의 탓으로 돌리고, 그러면서 세상에게 소외당하고, 쉽게 단정지어지는 그 존재들 말이다. 그들이 자기의 인생을 쉽게 단정지으려는 비관, 세상이 그들의 인생을 단정짓는 기만, 그럼에도 자기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 애쓰는 노력과 같은 단어들이 계속 머릿속에 머물렀다. 이 책은 그들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적 메시지가 아니라, 그들에게 움직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응원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단정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므로 변화 속에서 나는 움직여도 된다. 그런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