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자신의 성향이나 행동을 설명할 때 몇 가지 원인을 쉽게 찾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다’와 같은 식이다. 이러한 설명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특정한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한 인간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수실로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한 사람의 삶을 특정한 원인이나 결과로 설명하기보다, 수많은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
저자의 성장 환경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약물 중독과 폭력, 방임이 존재하는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와 떨어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후 신경과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단순히 ‘역경을 극복한 성공 사례’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의 삶에는 다양한 사건과 관계,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보호시설에서의 경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 공부와 과학에 대한 호기심 등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이후의 삶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 그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각각의 경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여기서 책의 핵심 개념인 ‘창발’이 등장한다. 창발은 개별 요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새로운 특성이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신경세포 하나만으로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수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복잡한 정신 활동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저자는 이러한 창발의 개념을 인간의 삶에도 적용한다. 한 사람 역시 하나의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 관계, 환경, 선택 등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이 형성된다. 즉, 카오스라는 복잡계에서는 무질서와 질서가 맞닿는 영역에서 새로운 패턴이나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 역시 이러한 과정에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불안정했던 어린 시절이 곧바로 현재의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관심사를 발견하고, 여러 선택을 하면서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 역시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경험에 의해 다시 변화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
‘나’라는 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의 삶에 비해 나의 삶은 지극히 평탄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가 말하는 ‘창발’의 개념을 읽으며 올해 나의 삶 전반을 복기할 수 있었다. 올해 나는 나의 직업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좌절하는 순간이 반복되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현재의 직업을 판단하려 했다.
특히 ‘나는 이런 성향이기 때문에 이런 일과 맞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직업을 잘하기 어렵다.’와 같이, 당장의 좌절을 정당화하려는 판단을 내려 스스로를 틀에 가두기도 했다.
처음에는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판단은 나 자신을 설명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기준이 되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시점인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시점부터 그런 판단을 멈추게 되었다.
아마도 내 안에만 고여있던 생각을 꺼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조금씩 변화했던 것 같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강점을 발견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기준이 반드시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경험은 곧 ‘상호작용’이라는 개념과 연결됐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새로운 환경, 피드백,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판단을 수정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 역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여러 경험과 관계 속에서 계속 형성되는 결과에 가깝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나의 카오스에서, 나 역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이상 나를 나만의 판단에 가두지 않는다. 나는 이 변화 또한 ‘창발’의 한 지점이라고 느꼈다. 그 창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명확하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는 나의 미래에 희망을 한 번 더 걸었고, 그 미래에 호기심을 가졌다. 여전히 내게 그 감각은 모호하지만 아마도 그 낙천성과 호기심이 ‘창발’을 가능케하는 재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결과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복잡한 신경과학의 개념을 설명하는 동시에, 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제시한다. 인간은 특정한 원인에 의해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특히 저자의 삶을 돌아보면 어려운 환경이 있었고 이를 극복한 과정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개인의 의지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 새로운 환경, 우연히 접한 관심사, 반복된 경험과 선택 등이 함께 작용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어떤 환경에 있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앞으로의 모습을 결정할 수는 없다. 새로운 경험과 관계가 추가되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스스로 그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태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과거와 현실의 덫에 걸려도 그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이다. 나의 미래에 또 한 번의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