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나의 침실은 두 가지 색을 공유하고 [영화]

글 입력 2024.08.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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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패터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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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침구는 몇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여기 두 가지 색의 침구를 공유하는 한 침실이 있다. 바로 패터슨의 침실이다.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쓰는 뉴저지의 버스 드라이버로, 그의 일상은 반복이다. 영화는 이를 8일간의 아침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매 요일 패터슨과 로라(아내)의 침실 풍경을 직부감 쇼트로 확인할 수 있다.

첫날인 월요일 아침, 아내 로라가 잠결에 꾼 쌍둥이 꿈을 전해 들은 패터슨. 그 이후로 패터슨의 일상에는 쌍둥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어째서인지 마주치는 쌍둥이들은 모두 같은 얼굴에 같은 체형,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지만 비슷한 하나의 형태를 공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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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쌍둥이에 패터슨이 겹쳐 보인다. 로라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고, 패터슨은 그러한 아내의 꿈에 가타부타 말하지 못한 채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종일 디저트로 배를 채우게 되어도 진심을 숨기고 좋은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마치 마빈(두 사람의 반려견)의 산책 시간마다 그가 마빈에게 끌려다니던 모습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집은 모두 로라의 취향으로 도배되어 있다. 커튼부터 시작해, 문, 담요, 식기, 컵케이크, 심지어 패터슨의 도시락 통과 귤까지 모두 흑백·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만 보면 로라가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강렬한 패턴의 눈속임으로 인해 한 가지를 간과하게 된다. 정말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방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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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패턴이 로라를 상징한다면 심플한 푸른색은 패터슨을 상징한다. 두 가지 색을 주시하다 보면 매일 아침 반복하는 직부감 쇼트에서 변화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남색 이불’이다.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남색 이불은 수요일부터 침대를 반쯤 덮은 채 등장한다. 이는 패터슨이 로라에게 시인이란 꿈을 응원받음과 동시에 로라의 꿈으로 인해 금전적인 부담을 짊어지게 된 이후다.

로라는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인물이지만 패터슨은 꿈 앞에서 주저하는 인물이다. 로라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두 가지의 꿈을 펼친다. 허영 가득한 꿈인 줄 알았으나 로라는 실제로 컵케이크 베이킹, 기타 연주, 노래 모두 소질이 있었다. 그에 반해 패터슨은 두 가지의 일상을 잃는다. 낡은 버스의 고장으로 버스 운전을 못 하게 되고, 마빈에 의해 자신만의 시 노트가 전부 찢어져 좌절하게 된다.

로라와 패터슨은 꿈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로라는 자신의 꿈을 패터슨과 함께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데 반면 패터슨은 그의 시를 듣고 싶다는 로라의 요청에도 퇴근길에 만난 소녀의 시를 말해주며 자신의 시를 감춘다. 우리는 관객이기에 영화에 드러나는 패터슨의 시를 수없이 듣지만, 실상 패터슨은 자신의 시를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읽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색 이불은 패터슨의 꿈을 향한 욕망이자 계속해서 감추는 자신의 본심일 테다.

결국 목요일의 침실은 물이 차오르듯 남색으로 뒤덮이게 되고, 토요일 침실 속 로라는 남색 이불에 온몸이 잡아 먹힌 듯한 모습으로 침실에 누워있게 된다. 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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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노트의 상실로 좌절을 겪는 패터슨을 위로하는 낯선 이가 등장한다. 남자와 패터슨은 프랑스 예술가 장 뒤뷔페가 기상학자였고, 위대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의사였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남자는 떠나기 전 패터슨에게 새로운 노트를 선물하며 이렇게 말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다음 날 새로운 월요일의 아침이 밝아오고 패터슨과 로라는 지난 월요일과 같은 모습으로 침실에 누워있다. 이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흰색의 패턴 이불 위로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남색 이불일 것이다. 딱 절반을 공유하는 두 색상의 이불.

즉 이 영화는 공존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장 뒤뷔페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처럼 로라에게 두 개의 꿈이 있는 것처럼 패터슨도 버스 기사이자 시인일 수 있다고. 그리고 하나의 침실에 두 가지 색이 공존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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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패터슨이 텅 빈 페이지에 어떠한 꿈을 그렸을지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꿈이 반복되는 일상에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킬 거라 믿게 된다. 또 나는 패터슨과 로라가 앞으로도 이전처럼 서로를 응원할 것이라 믿는다. 그도 그럴 게 패터슨과 로라는 한결같이 서로를 상징하는 베개를 베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뺏어야 하는 체스판 위에 놓인 것이 아니다. 한 침실을, 한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는 다양한 색으로 공존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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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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