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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디까지가 록일까


 

‘밴드 붐’이 찾아오면서, 록 불모지로 손꼽히던 우리나라에서도 록 음악이 주목받고 있다. 이승윤, 파란노을 등 장르 색을 띠는 아티스트들의 인기는 브릿팝, 슈게이징과 같은 하위 장르들로 흘러 인디 신(scene)에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덕분에 록 음악은 전부 하드 록·헤비메탈이라는 과거의 편견에서 점차 벗어나는 모양새다.


록 음악엔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장르들이 존재한다. 로큰롤부터 레게 록까지 대분류만 따져도 20가지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알고 보면 "이게 록이야?" 싶은 노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빌리 조엘(Billy Joel)의 ‘Piano Man’도 록이다. 우리가 올드팝, 혹은 그저 팝송으로 들어왔던 명곡들이 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는 사실. 파고들수록 신기한 음악의 세계다.


수많은 하위 장르들 중에서도 “이것도 록이야?”라는 오해를 가장 많이 받는 장르는 단연 소프트 록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부드러운 록 음악들이 속하며, 너무 빠르지 않은 미디엄 템포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특징이다.


메타데이터 음악 플랫폼 레이트 유어 뮤직(Rate Your Music)은 소프트 록을 두고 “가볍고 선율적이며 라디오 친화적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팝에 대입해도 틀리지 않아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소프트 록을 듣고 올드 팝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살면서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국내에서 사랑받는 ‘소프트 록’ 명곡들이다.

 

 

록? 올드 팝? (1) - Carpenters ‘Top of the World’(1977)


카펜터스(Carpenters)는 활동 내내 록에 포함되느냐를 놓고 대중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그들의 유명세와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

 

 

록? 올드 팝? (2) - Extreme ‘More Than Words’(1991)


하드 록·메탈 밴드 익스트림(Extreme)의 최대 히트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소프트 록 스타일의 ‘More Than Words’로, 91년 3월 빌보드 Hot 100 1위에 올랐다.

 

 


소프트 록의 시대, 그리고 Fleetwood M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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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etwood Mac(1968~)

 

 

소프트 록의 전성기는 1970년대다. 비틀즈, 그중에서도 폴 메카트니의 일부 작품들이 시초로 여겨지며 발전해 70년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기존 록 음악의 ‘멋’이기도 했던 기타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깔끔히 쳐내는 방식이,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기타가 자리를 양보하자, 보컬과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더욱 잘 들리게끔 음악이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종종 피아노 또는 어쿠스틱 기타가 곡 전체를 주도하고, 일렉트릭 기타는 베이스의 리드를 따라 절제된 플레이를 선보인다. 종합하면, 소프트 록이란 기타의 존재감이 줄어든 록 음악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소프트 록의 시대가 열린 데에는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들은 소프트 록의 상징과도 같은 팀이자,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다. 플리트우드 맥이 소프트 록 스타일을 확립한 밴드로 평가받지만, 사실 이들의 음악적 시도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에서 비롯되었다.


플리트우드 맥은 소프트 록 시대 이전부터 입지가 공고했다. 블루스 록을 표방하며 1967년 결성되었고, 75년 이전 발매한 정규앨범은 이미 9장에 달했다. 그런 밴드에게 70년대 중반은 격동의 시기였다. 블루스에 조예가 깊었던 핵심 멤버 피터 그린(Peter Green)*과 대니 커완(Danny Kirwan)의 연이은 탈퇴로 새 기타리스트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영입된 젊은 듀오 린지 버킹엄(Lindsey Buckingham)과 스티비 닉스(Stevie Nicks)는 밴드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기타리스트 버킹엄은 프로듀싱에 일가견이 있었고, 닉스가 아름다운 작사·작곡 능력을 보여주며 팀의 송라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플리트우드 맥의 결성을 주도한 리더였다. 롤링 스톤이 선정한 위대한 기타리스트 58위에 오르는 등, 블루스 록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Fleetwood Mac - Landslide(1975)


 스티비 닉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정규 10집 의 8번 트랙 ‘Landslide’. 로키 산맥 눈사태에 비유한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kins)부터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커버했다.

 

 

새 멤버들과 작업한 정규 10집 Fleetwood Mac이 빌보드 200차트 1위에 오르며, 밴드는 정상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두 신입의 적극성과 그 아이디어를 묵묵히 받쳐준 기존 멤버들과의 케미스트리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크리스틴 맥비(Christine McVie, 키보드/보컬)와 베이스 존 맥비(John McVie, 베이스), 그리고 린지 버킹엄과 스티비 닉스가 함께 결혼하면서 ABBA처럼 2쌍의 커플이 탄생한 밴드가 되었다.


물론 좋은 합이 얼마 가지는 못했다. 바쁜 스케줄 속 부부 2쌍의 관계가 나빠지며 밴드 존속의 위기가 찾아왔다. 멤버들의 정신상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무렵. 플리트우드 맥은 차기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소프트 록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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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긴장감의 오묘한 조화. 소프트 록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앨범.”] - Apple Music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 탄생한 11집 Roumors(1977)는 밴드에게 커리어 하이를 선물했다. 1978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수상을 비롯, 빌보드를 휩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70년대 최고의 명반으로 자리잡았다. 마이클 잭슨의 가 발매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이었으니. 앨범의 명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가도 좋을 것 같다.


Roumors는 멤버 개인의 복잡한 감정, 그리고 전작에서 비롯된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모두 실려있다. 멤버 모두가 작곡 능력을 지닌 덕분인지, 각자의 입장에서 부부관계를 이야기하는 곡들이 모두 실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닉스의 ‘Dreams’와 버킹엄의 ’Go On Your Way’가 특히 그렇다. 닉스는 이별에 대한 담담한 감정을 노래한 반면, 버킹엄은 분노에 가득찬 록 넘버를 작곡해냈다. 이처럼 는 밴드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앨범이다. 팀 케미스트리는 파탄 직전이었지만, 이들은 상념을 음악에 쏟아낸 듯하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이토록 탄탄히 다듬어져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Fleetwood Mac - Dreams(1977)

 

 70년대를 대표하는 곡이자,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2021) 9위에 오른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Dreams’는 소프트 록 사운드를 단 4분 만에 대변한다. ‘Dreams’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가진 곡들은 많지만, 이만큼 흘려듣기 좋은 노래는 또 없다.

 

 


소프트 록 = 팔리는 노래…?


 

플리트우드 맥의 성공 이후 소프트 록 스타일이 각광받자, 기존 록 뮤지션들과 싱어송라이터·포크 아티스트들도 유행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판도 피할 수 없었다. 소프트 록으로의 전향은 일부 로큰롤 팬들에게 변절자로 불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록을 가장한, ‘팝’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소프트 록은 과연 음악을 팔기 위한 공식이었을까.


소프트 록은 다채로운 악기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건반악기 사용이 두드러지며, 플리트우드 맥 역시 해먼드 오르간(Hammond Organ B-3)과 전자피아노(Yamaha CP-70), 등을 레이어해 복잡한 화음을 설계했다. 여기서 관건은 여러 트랙을 겹겹이 쌓으면서도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튜디오 환경이 지금 같지 않았던 시절, ‘부드럽게‘ 녹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자는 이 작업으로 소프트 록이 록 음악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플리트우드 맥의 크리스틴 맥비가 이 난제를 훌륭히 해결했다는 점은 음악사에 혁혁한 공이다. (그녀가 사용한 악기와 톤을 지금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연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Silver Spring’을 들어보길 바란다.)


필자는 소프트 록이 록의 지평을 확대한 모험적 시도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소프트 록 음반들이 록 밴드의 시대에, 록 밴드의 구성으로 만들어낸 사운드라는 것을 떠올리면 대단한 실험정신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자타 공인 ‘록 밴드’로 여겨지는 많은 팀들은 그 영향을 받아 특별한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이글스(The Eagles)부터, 노엘 갤러거와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까지. 소프트 록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아시스의 프론트맨 노엘 갤러거는 하이 플라잉 버즈의 이름을 플리트우드 맥의 초기 활동명 ‘Peter Greens’s Fleetwood Mac’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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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었다. 필자가 소프트 록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는데, 지난 4월 2일이 가 빌보드 200 1위에 오른 날짜(1977.4.02.)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소프트 록은 유사관계대명사 같은 장르다. 우리가 영문법을 공부할 때, “관계대명사로는 who, whitch, what, that 이 있다”라고 암기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관계사로 쓰이는 다른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장르를 나누기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음악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장르야말로 수많은 리스너와 안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그래서 더 파고들기 재밌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플리트우드 맥, 그리고 소프트 록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묻고 싶다.

 

위 음악들이 록으로 들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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