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홍대의 대표적인 인디 공연장 클럽 빵에서 3인조 밴드 ‘디지먼지’를 만났다. 이름 만큼이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의 음악은 마냥 신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물처럼 흐르면서도 몸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분위기 속, 90년대의 향수가 느껴졌다. 매지 스타의 호프 산도발(Hope Sandoval)이 떠오르는 담담한 표정의 프론트맨. 그 뒤에서 한몸처럼 움직이는 드럼과 베이스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호감가는 팀을 만났지만, 아쉽게도 이날 뿐이었다. 밴드는 이후 자취를 감춘 듯 홍대 어디서도 공연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랬던 이들이 지난 12일 데뷔 싱글 ‘멀리 가는 길'을 발매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심 가득 반가운 마음으로 밴드 디지먼지와 만났다. 나만 알고 싶은 밴드, 디지먼지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밴드 디지먼지(dizzymunzzy). 왼쪽부터 준혁(드럼), 연우(보컬, 기타), 명선(베이스)
반갑습니다. 팀명 디지먼지(dizzymunzzy)는 무슨 뜻인가요?
연우(보컬, 기타): 영어로 어지럽다는 뜻의 dizzy, 한글 먼지의 합성어예요. 저희 음악이 어느 정도 확실한 것들이 아닌, 아직 모르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름을 짓고 나서 보니 밴드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멤버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결성 비하인드를 들려주세요.
연우: 작년 1월 쯤에, 제가 써둔 곡들을 같이 작업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엔 밴드를 꾸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준혁(드럼): 맞아요 팀 보다는 프로젝트성으로 한 번 했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팀이 된 것 같아요. 연우와 명선이는 대학 동기, 그리고 전 동네 친구 명선이의 소개로 같이 하게 됐어요.
명선(베이스): 준혁이랑 이제 7년지기네요. 악기로 먹고 살아야겠다 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했어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도 궁금해지네요.
연우: 본격적으로 18살 때 시작했는데, 공부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진로를 튼 경우예요. 음악을 하고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꿈은 한켠에 둔 채로 지내오다 결국 음악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언젠가 할 거라면..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준혁: 친구가 다니던 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갔다가, 드럼에 재능이 있어보인다는 선생님 말씀에 넘어가서 취미로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는데, 음악만큼은 평생 해도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워낙 좋아하셨나봐요. 각자 좋아하는 음악이나 아티스트들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연우: 중학교 때는 이소라님이나 김동률님 같은 발라드를 엄청 좋아했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퀸을 정말…
라디오헤드도 좋아했고요. 언니네 이발관, 파라솔 같은 국내 인디 밴드들과 본 아이버, 피비 브리저스 같은 포크 음악도 즐겨 들어요.
명선: 원래는 재즈나, 연주곡들 위주로 즐겨 듣는 편이었어요. 오스카 스타그나로같은.
사실 디지먼지 하기 전까지는 밴드 음악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어요. 음악을 한다는 게 기술자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밴드 활동을 하면서, 기술적인 무언가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구나. 사람들이 문화를 느끼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 부분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들어보니 다들 좋아하는 음악들이 다르네요. 다른 성향을 가진 멤버들끼리 만났는데, 곡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연우: 곡의 전반적인 골자는 제가 구상하고, 디테일적인 부분들을 멤버들과 합주를 거듭하면서 만들어가고 있어요.
준혁: 음악의 색채나 방향성을 연우가 정말 잘 정해주거든요. 여기서 이러면 더 좋을 것 같다! 싶은 편곡적인 부분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연우: 처음에는 혼자 대부분을 완성해두는 편이었는데, 갈수록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대한 두루뭉실한 상태에서 멤버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거죠.
세 명의 색깔이 갈수록 섞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디지먼지는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인가요. 음악적 정체성이 있다면?
준혁: 밴드음악은 장르 구분들이 정말 다양하잖아요. 저희랑 비슷한 성향의 장르가 뭘까 고민도 해봤었는데, 하나를 꼽자니 어려운 것 같아요. 무슨 장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으니까 하게 되네요.
연우: 사실 말은 인디 락이라고 하지만, 구분짓기가 참 힘든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게 사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스스로 장르를 규정시키면, 그 안에서만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명선: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어떤 장르에 갇혀서 그걸 따라가는 건, 저희만의 색깔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들어주시는 분들께서 나눠주시지 않을까요?
10년 뒤에는 디지먼지라는 장르가 생기기를 기원하며.. 데뷔 싱글 ‘멀리 가는 길’은 어떤 곡인지 설명해주세요.
연우: ‘멀리 가는 길’은 작년 1월에 썼던 노래예요. 살면서 막연하게 모르겠는 것들이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안정을 가질 수 있을까부터,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이런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에요.
명선: 데뷔곡의 제목이 ‘멀리 가는 길’이라, 저희 스스로 와닿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끝까지 남은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최대한 멀리 가는 게,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목표가 아닐까 싶어요.
“있지 저긴 모두 같은 발걸음을 갖고
어디인지 모를곳만 향하네”
“다 끝나가면 우리는 그칠 수 있나요
넘겨본 부러움에 뛰지 않아도 돼요”
“다 지나가서 날들이 그칠 때 즈음이면
언제가 되었든 도착할 수 있겠죠”
- ‘멀리 가는 길’ 중
명선: 같은 팀이지만, 연우가 써온 가사를 들어보면 감탄을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를 물어보면 절대 얘기를 안해주더라고요. 약간 코카콜라 레시피 같은.(웃음)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연우: 기록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곡의 분위기나 사운드를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색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다음, 담고 싶은 메시지나 순간의 감정을 중심으로 노래를 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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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창작자라면 공감하겠지만, 가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잡념이 들 때가 있다. 창작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무언가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는 예술가들이다. 어찌되었건 영감의 원천은 결국 창작자 본인이다. 하나뿐인 ‘내’가 만들기 때문에, 유일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디지먼지의 메인 송라이터 연우는 이미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영감이 충전될 수 있도록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가지는 것. 같은 창작자로서 보기 좋았다. 계속될 음악 인생에서, 고통에 휩싸이지 않길 응원하고 싶었다.
(팀 로고)
곡 작업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준혁: ‘멀리 가는 길’ 녹음 직전이었는데요. 제 드럼 라인에 확신이 안가서 수정을 망설이던 걸 멤버들이 쿨하게 승낙해줬어요. 늦은 시간에 갑자기 합주를 결정했는데, 베이스가 없어서 주변에 대여 가능한 곳을 수소문하다 결국 연우네 오빠 악기를 빌렸던 기억이 나요. 그대로 바로 합주실에 들어가서 수정을 끝냈죠.
그렇게 수정한 드럼 라인에 만족하시는지.
준혁: 네 충분히 만족합니다.(웃음)
밴드 활동 통틀어서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요.
준혁: 합주나 공연 중에, 합이 들어 맞는 순간들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명선: 음악은 시간 예술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딱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발견하는. 준혁이 말대로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될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청자들에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저희잖아요. 그런 에너지들이 나왔을 때 희열을 좀 느끼는 것 같아요.
연우: 곡들을 완성해서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그저 행복한 것 같아요.
명선: 맞아요. 이 팀이 없었더라면, 만약 우리가 오늘 모여서 이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음악은 세상에 없는 거니까.. 이런 모든 요소들이 다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이 밴드 활동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될 듯 하네요. 그럼 디지먼지를 통해 새롭게 배운 점들도 있을까요?
준혁: 처음에 연우랑 작업하면서, 제가 해온 음악들 안에서 편곡 방향성을 가져가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연우랑 많이 부딪혔는데, 그 과정에서 편견이 깨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왜 기존에 있는 것만 하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선: 인디 문화를 몸소 겪으며 배운 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문화의 구성원들이 어떤 고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지를요. 다양성, 새로움에 대해 마음이 열리는 경향이 생겼달까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음악을 만들고, 그걸 최대한의 결과로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너무 큰 가르침이었어요.
연우: 전 사람을 잘 믿는 편이 아니었어요.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했던 적이 많지 않았죠. 작년부터 팀을 같이 해오면서, '이 친구가 생각하는 게 있겠지' 하면서 맡길 수 있게 됐어요. 또 그렇게 의견이 합쳐지면서 더 유연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명선: 사실 처음에는 정규 앨범을 내려고 했어요. 작업 과정에서 싱글로 타협이 되면서,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았죠. 인디펜던트로서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하게 됐어요.
연우: 저희끼리 그리는 일련의 청사진이 있어요. 앨범 작업 위주로 활동을 지속하면서, 올해 안에 결과물을 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되네요. 마지막으로, 디지먼지 여러분께 음악 추천 받아보면서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연우: 세 곡만 하겠습니다. 본 이버 1집 중 ‘The Wolves’, 제프 버클리의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이민휘 님의 ‘무대륙‘.
명선: 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을 너무 좋아합니다. 비틀즈가 전설이라고 불리는 데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음악 하나하나가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준혁: 정지수 님의 Who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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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 공연장들 사이 자리한 한 카페에서의 대화를 복기하며, 새삼 이 팀의 시작에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불확실함과 필연적으로 마주하면서도, 본인의 예술을 꿋꿋이 사랑해야 하는 게 예술가의 숙명이다. 다행히도, 한 시간 반 동안의 만남에서 느낀 디지먼지는 본인들의 음악을 상당히 아끼는 듯했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사랑한다는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밴드 디지먼지가 더욱 멀리 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