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쿠로스가 말하길, 인간은 살아있을 때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죽어있는 상태에서는 인간의 원자 결합이 해체되면서 감각 능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죽은 상태에서 죽음을 의식할 수 없게 되므로 살았든 죽었든 죽음은 인간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3차 병원 소견서를 써줬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갑자기 입원하게 되고, 수술을 앞둔 시점에서야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 아직 어린데, 설마 큰 병이면 어떡하지, 싶어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다행히도 수술 후 건강 관리와 주기적으로 검사만 하면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내게 죽음이 가장 가까웠던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죽음 자체에 우리가 겁먹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삶에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자꾸만 미루고 싶어지는 게 우리 마음이다. 내가, 이 삶에 남겨둔 게 뭐길래 죽음을 두려워한 것일까? 내가 아직은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다.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보았다. 향후 3년 내로 이루고 싶은 것, 그리고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것으로.
3년 내에 이루고 싶은 것
제일 먼저, 공모전에서 소설 혹은 수필로 수상하고 싶다. 글을 쓰는 건 자기만족이기도 하고, 누군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이어 나갈 수 있는 좋은 취미지만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한 번쯤 검토해 보고 싶어 수상이라는 목표를 두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으므로 동기부여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작년에는 처음 나간 문학 관련 공모전에서 서평 부문으로 수상하였는데,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또 도전하고 싶다. 글에 이어 그림도 꾸준히 그리고 싶다.
그다음은 성적 올리기다. 휴학 전에 진로 탐색을 위하여 본 전공 외에 다른 과 전공 수업을 많이 신청해서 들었는데, 이 도전의 장점은 명확하게 나의 선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도 나의 적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 복학 후 성적 올리기가 학교 생활에 있어서 제일 크고 현실적인 목표가 되었다. 통계학 이중 전공에도 진입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진로 도움이 되는 지식을 많이 쌓고 싶다. 언어 공부도 곁들여야 하지만 쉽지는 않을 듯하다.
소소한 항목으로는 부모님 도시락 싸드리기가 있다. 이건 올해의 목표로 조금 좁히는 게 좋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존경스러운 사람이 바로 부모님이다. 어떻게 몇십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지. 일하면서 받은 보너스도 드리고, 선물도 해보았지만, 올해는 직접 도시락을 싸서 드리고 싶다.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는 것과 요리 실력 키우기가 선행되어야 하겠지. 버킷리스트는 하나를 정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할 일이 늘어나는 구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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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해서는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내가 3년 뒤까지 수영과 춤이라는 취미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추가로 가야금도 동아리에서나 개인적으로 연습하면서 계속 즐기고 싶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성과를 인정받고 싶다. 지도하는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서 원하는 학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처음에는 오래 일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정을 쌓은 지금, 좀 더 욕심내서 좋은 어른으로 기억 남고 싶다.
3년 뒤면 2029년이다. 이미 졸업을 한 시점이기를 바라며, 원하는 분야의 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싶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산업보건 등 직업환경과 사회역학이다. 특정 사회적 속성이 개인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대 정책은 각 개인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여 사회 전반의 발전을 끌어내는 영양분이다. 그들에게 배려가 필요하다는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의 교육 및 인식 개선과 더불어 타국 간, 혹은 자국 내 정책 비교 등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활용해 국민과 정책결정자를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싶다. 이론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꿰뚫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예술을 통해 내가 겪지 못하는 것들을 간접 체험할 예정이다.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으로 몇 년째 꼽는 것이 있다.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에게 감사를, 미안했던 사람에게 사과를 전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그때그때 표현하고자 하지만 이마저도 미숙했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나 부모님,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내고 싶다.
해외에서 몇 개월 동안 지내고 싶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언어를 익히면서 아예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 유학을 가는 것도 좋겠지만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니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항목에 넣었다. 숙고한 끝에 교환학생을 가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내년에 한 번 더 휴학할 때 혼자든 다른 사람과 함께든 여행도 자주 가면서 해외 경험을 쌓고 싶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볼리비아 소금사막!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미국이다. 가장 오래 체류한 해외 여행지인데, 당시 찍은 사진(섬네일 및 본문)을 보다 보면 그때 정말 행복했다는 게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공모전 수상에 이어, 책을 내보고 싶다. 내가 직접 그린 그림과 쓴 글로 동화책을 만들든, 내가 그린 삽화로 내 소설책의 표지를 장식하든. 내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고 싶다.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내 인생의 역작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소원인데, 이건 정말 오래 걸릴지도? 이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앞으로의 3년 동안 열심히 지금처럼 글을 써야겠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자잘한 버킷리스트를 써보자면.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해서 같이 살고 싶다. 운전면허를 따서 부모님을 태우고 여행 가고 싶다. 돈을 많이 모아서 미래에 생길 새로운 관심사에 투자해 보고 싶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인연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 유지하고 싶다. 영화제 자원봉사도 몇 번은 더 해보고 싶다. 바다가 예쁜 곳에서 엄마와 스노클링도 하고 싶다. 영화와 책을 꾸준히 즐기고 싶다. 지금보다 더 많이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늘을 자주 보고 싶다.
궁극적으로, 버킷리스트가 끊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을 내가 이루고 싶어 하는 것들과 실제로 이룬 것들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릴 때마다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다시 다짐할 수 있도록. 올해의 내 키워드도 '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