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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연극 '플리백'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Synopsis
웃음과 침묵의 사이,
가장 솔직한 고백이 시작된다.
런던의 어느 거리, 벼랑 끝에 선 한 여자가 있다.
‘플리백(Fleabag)’이라 불리는 그녀는
파산 직전의 기니피그 카페를 운영하며, 엉망진창인 일상을 버티듯 살아간다.
가족과의 관계는 어긋나 있고,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가족과 연인,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까지,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과 상실, 균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돼 전 세계를 사로잡은 화제작 <플리백>이 6월 19일부터 9월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한국 초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현대인의 고독과 자기파괴적 욕망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여성 1인극으로, 이번 한국 초연에는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이 캐스팅되어 각기 다른 해석으로 '플리백'을 그려낼 예정이다.
플리백의 농담
연극은 주인공 '플리백'이 3일 전 주문한 피자를 헤픈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레 다가온 성적인 농담에 관객이 당황스러워하자, 플리백이 말한다. "좀 웃어. 웃으라고 하는 얘기야." 이후의 이야기는 전부 '농담 따먹기'의 톤을 벗어나지 않는다.
플리백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혼자 시간을 보내고-참고로 옆에는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남자 친구 ‘해리’가 누워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들에 결국 해리는 냉장고 안 식재료를 모두 챙겨 그녀를 떠났다. 지하철에서 눈이 맞은 '생쥐남'과 성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전애인의 요구에 직장 내 장애인용 화장실에 들어가 자기 몸 사진을 촬영해 보냈으며, 따로 사는 아빠를 찾아가 주저리를 늘어놓다가 "날 만약 포르노 사이트에서 봤다면 어땠을 것 같아?"라고 물어보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들을 지나치게 일반적인 어조로 흘리는 플리백의 말버릇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견디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중 가장 무거운 사건은 친구 '부'와 관련된 것이다. 플리백은 부의 남자 친구와 잠자리를 가졌고, 상처받은 부는 남자 친구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해 위장 사고를 벌이려다 정말로 목숨을 잃었다. 극은 이 사건을 두고 플리백에게 유죄를 선고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을 계속 지켜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관객도 이 사건 앞에서 그녀를 판단하는 자리에 서기보다 그녀가 짊어진 무게를 함께 견디는 자리에 남게 된다.
이렇게 플리백의 자기파괴적인 자기 노출이 반복될수록 정작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할 가족조차 그녀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 플리백의 언니 '클레어'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다. 자신과 자꾸만 욕조에 같이 들어가길 원하는 열다섯 살 의붓아들 때문에 핀란드행을 고사한 그녀는 술만 먹으면 성적인 농담을 하는 남편 '마틴'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플리백의 말을 듣고는 "네가 먼저 그런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카페 운영을 위한 돈을 준다던 언니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결국 플리백에게 남은 인간은 없다. 지독한 허무의 세계와 그것을 채우는 성욕만이 남는다.
플리백은 자신의 모든 감정-기쁨, 분노, 슬픔 그 무엇이 되었든-을 성적인 것으로 치환하지만, 아마 그 본질은 심한 외로움과 상실 따위일 것이다. 애초에 그녀의 이름을 '문제투성이', '허접한 인간'을 의미하는 'fleabag'으로 지어놓았으니, 플리백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드러난다.
플리백과 힐러리
그렇게 당돌하고 냉소적이며 행동적으로 보이는 플리백은 가해자 앞에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다. 플리백이 부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던 기니피그 '힐러리'가 생쥐를 닮은 남자에게 걷어차일 때도, 그녀는 그저 지켜보다가 딱딱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힐러리를 달래 우리 안으로 되돌려놓을 뿐이다. 플리백은 그저 무력하다.
그러나 고통이 멈추지 않자 그녀는 맨몸으로 힐러리를 힘껏 끌어안는다. 가해자에게는 닿지 못했던 반응이, 고통받는 존재 앞에서는 온몸으로 터져 나온다. 힐러리에게 몸을 내주는 플리백의 반응은 결국 자신이 멈추지 못했던 부의 고통을 향한 뒤늦은 애도였는지도 모른다. 힐러리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플리백은 결국 자기 자신을, 그리고 부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필 뒤에 지우개가 달린 이유
극은 다시 처음의 면접 장면으로 돌아온다. 그토록 자신을 지켜왔던 농담의 습관은 이 자리에서도 사라지지 않아 극의 초반, 플리백은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브래지어를 노출했었다. 그런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며 모욕했던 면접관은 뜻밖의 말을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요.”
‘플리백’이 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이 망가졌고 그 이유는 나에게 있다는 자책을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이끌려 타인의 시선에서는 절대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을 마구잡이로 저지르고 마는 사람.
극은 그녀를 재판대에 올리는 대신 모욕 뒤에 다시 시작할 기회를 슬쩍 내민다. 웃음이 그녀를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이 마지막 제안은 웃음없이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다.
극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한다. 그래서 연필 뒤에 지우개가 달린 것이다." 지우개가 실수를 지우듯 플리백에게는 농담이 곧 지우개였다. 웃음으로 부끄러움과 상처를 지워온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지우개는 그녀를 대신 지워주지 않는다.
그렇게 플리백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은 자국 위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볼 기회를 받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