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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좋아했던 시간은 그만둔 뒤에도 우리 안에 남아 있을까. 실패와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몸 어딘가에 남아 다시 자신을 불러낼 순간을 기다리는 것일까. 박정수 감독의 단편영화 <서를 담고>는 피리를 그만둔 연주자 수현이 내림굿의 반주를 맡으며 시작된다. 한때 피리에 누구보다 집요하게 매달렸던 수현은 이제 악기를 손에 쥐는 일조차 버거워 보인다. 그의 손은 떨리고, 불안하게 이어지던 피리 소리는 번번이 어긋난다. 결국 연이은 실수로 굿마저 중단되고 만다.
제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촬영상을 받은 <서를 담고>는, 16분 남짓한 시간 안에 수현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킨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놓아버린 꿈을 되찾는 과정이 아니다. 수현에게 피리는 자신을 가장 살아 있게 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몰아붙이고 상처 입힌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섣불리 해소하지 않은 채, 꿈이 선택을 넘어 하나의 ‘팔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열망의 끝자락에서 멈춰버린
현재의 수현은 무기력하지만, 과거의 수현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수련회에 가서도 친구들을 피해 옷장 안에 숨어 피리를 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오디션을 준비하며 자신을 극단까지 몰아세운다. 그러나 수현은 오디션 도중 합격자가 이미 내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노력한 만큼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마저 함께 무너진다.
수현에게 그 실패가 깊은 상처로 남은 까닭은 단지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노력한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 속에서 자신의 시간과 몸을 기꺼이 소진했다. 하지만 결과가 애초부터 자신의 노력 바깥에서 정해져 있었다면, 그동안의 집념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뒤로 수현은 피리를 놓는다. 노력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 앞에서, 더는 피리를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몸은 과거를 완전히 잊지 못한다. 굿판에 앉은 수현은 연신 손을 떨고, 피리 소리도 번번이 어긋난다. 떠나려는 수현 앞에 과거의 자신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영화의 시간은 뒤섞인다. 이미 지나간 자신은 회상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수현을 붙잡는 존재가 된다.
신을 받아야 사는 사람, 꿈을 좇아야 사는 사람
〈서를 담고〉에서 내림굿은 수현이 우연히 참여하게 된 굿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병을 앓던 사람이 자신에게 내려온 신을 받아들이는 의식은, 버린 줄 알았던 꿈과 다시 마주하는 수현의 과정과 포개진다. 굿을 받는 이의 얼굴이 순간 수현의 얼굴로 바뀌면서, 남의 의식에 반주하던 수현은 어느새 또 하나의 ‘내림’을 받는 당사자가 된다.
박정수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신내림을 받아야만 하는 팔자와 피리라는 꿈을 좇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인물들의 팔자를 연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무당의 팔자와 꿈을 좇아야 숨이 트이는 예술가의 팔자. 이 연결 속에서 피리는 수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벗어나려 해도 끝내 돌아와 그를 붙드는 존재가 된다. 수현은 다시 피리를 선택한다기보다, 자신이 이미 피리에 붙들린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아름다운 소명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수현을 다시 숨 쉬게 만든 힘과 그를 망가뜨린 힘은 모두 피리를 향한 같은 열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피리는 수현을 살아 있게 하는 동시에 그를 끝없이 몰아붙이는 강박이고, 내림굿은 해방의 의식인 동시에 거부해 온 팔자를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꿈을 좇아야만 살 수 있다는 말에는 꿈이 있어 행복하다는 낭만뿐이 아니라, 그것을 놓고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불안도 함께 담겨 있다.
옷장 안에서 굿당 밖으로
수현의 변화는 같은 피리를 부는 서로 다른 공간을 통해 뚜렷이 나타난다. 과거의 수현은 수련회장의 좁은 옷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홀로 연습한다. 그는 피리에 매달릴수록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으로 숨어든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수현의 세계는 오히려 점점 좁아진 것이다.
반면 마지막의 수현은 피리를 불며 굿당 밖으로 나아가고, 한자리에 고정돼 있던 몸도 비로소 장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초반에 자꾸 끊기고 어긋나던 피리 소리 역시 굿의 장단과 어우러진다.
박정수 감독은 옷장 속 수현과 굿당 바깥의 피리 연주를 대비시키고, 줄곧 고정돼 있던 카메라를 마지막에 움직임으로써 수현의 해방감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서를 담고, 다시 소리를 내기까지
제목에 쓰인 ‘서’는 피리의 입에 대는 부분으로, 연주하기 전 물에 담가두어야 바람을 모아 소리를 낼 수 있다. 한동안 피리를 떠나 웅크리고 있던 수현의 모습은 물속에 잠긴 서와 닮았다. 물에 담겨 있던 서가 다시 숨을 받아 소리를 내듯, 멈춰 있던 수현 역시 자신 안에 남아 있던 호흡을 피리에 불어넣는다.
흔히 꿈을 다루는 이야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를 담고〉의 마지막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영화는 다시 피리를 부는 수현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에게 피리는 이루어야 할 꿈이기 전에, 끝내 놓을 수 없는 팔자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