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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난 12월 2일, 광화문에 있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는 개관 25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한 영화가 하나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공식 초청과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딥 포커스' 프로그램 특별 상영에 이어,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에도 초대된 바로 그 작품.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각각 30여 분의 단편으로 참여한 〈극장의 시간들〉이다.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애써 CGV 청담씨네시티까지 다녀온 건, 점점 사라지거나 변해가는 '극장'의 의미에 대해, 대관절 그래서 영화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따뜻한 공간에서 GV까지 참여하면서 찾고 싶었던 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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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종필, 〈침팬지〉


 

시놉시스: 2000년 서울의 광화문. 영화광 고도, 모모, 제제는 우연히 맞닥뜨린 미스터리한 침팬지 이야기에 함께 빠져든다. 시간이 흘러 혼자 남겨진 고도는 오랜만에 다시 광화문의 극장으로 향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속 고도,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 속 모모, J.M 바스콘셀로스의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 제제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걸까? 뜬금없지만 중요한 소재로 보이는 '침팬지'는 무슨 메타포일까? 방금 〈중경삼림〉과 〈쥴 앤 짐〉을 오마주 한건가? 이 에피소드에는 감독의 경험이 얼마나 묻어있을까? 〈침팬지〉를 보는 동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 동행 속에 단골 질문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영화에 의한, 강렬했던 첫 기억까지 간 것이다.


때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막 끝내고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빡빡한 수업 대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던 시기였기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놀이를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무리였던 친구 한 명이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보자고 제안했다. 평소 '시네필'로 알려진 그 친구는 자신의 노트북 속 '봐야 할 영화'와 '본 영화'로 빽빽이 들어찬 파일들을 확인하더니, 이내 하나를 골라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때 본 자비에 돌란의 〈마미〉는 예술 영화에 내디딘 첫걸음이자, 본격적인 프랑스 영화의 맛을 알게 된 첫 경험, 좋든 싫든 영화라는 자극에 매료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나아간 첫 순간이다. 더 많은 작품을 알게 된 지금은 문외한이었던 그 시절을 장난스레 회상하곤 하지만, 영화를 향한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감독도 그랬을까. 비록 관객이 아닌 창작자의 입장이지만, 처음 영화에 푹 빠지고 어떤 이야기에 꽂히고 이를 작품으로 만들기까지의 열정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영화는 그런 힘이 있다. 신기루 같긴 하지만 분명 무언가를 변화시킨다.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감각적으로 사고적으로. 그래서 다음 영화를 무심코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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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가은, 〈자연스럽게〉


 

시놉시스: 무더운 여름의 영화 촬영 현장. 감독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노는 장면을 찍고 싶어, 친구들과 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연기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유독 윤가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아이들의 연기에 눈이 간다. 〈우리들〉, 〈우리집〉, 〈세계의 주인〉까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많은 아이들은 그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곤 했다. 능청스럽고 순수하고, 솔직하고 담백한, 왠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는 것만 같은 명연기의 향연. 어쩜 저렇게 저 나이에 할 법한 말과 행동을 골라서 할까.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정해진 대사 없이 디렉팅하신다는 감독의 의도가 멋지다. 그래서 저렇게 '자연스럽구나.'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자연스러움'을 끌어 내기 위한 나름의 고군분투함이 눈에 들어온다. 대본에 적힌 몇 줄의 지시문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모습은 배제하기 위해 감독은 얼마나 애를 쓰는지. 저마다의 연기 방식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어린 배우들은 또 얼마나 노력하고 고민하는지. 진짜 친구들과 놀 때처럼 하라는데 결국 지향하는 이상적인 장면은 있는 것 같으니까. 이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순간적으로 '자연스러운' 때를 포착해야 하는 스태프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영화 만드는 게 보는 것보다 재밌나? 라는 고민을 좀 했었고요. 영화 보는 거는 놀이 같았는데 영화를 만드는 것도 나한테 놀이가 될 수 있나?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데.(...)"_윤가은 감독, GV 중


이처럼 〈자연스럽게〉는 영화를 사랑하기에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을 연출로서 담아내려는 한계에 부딪혀서,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는 딜레마가 발생해서, 이 모든 과정을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좀처럼 '자연스럽게' 즐기지 못한다는 웃픈 이야기를 다룬다. 다소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좋아서 선택한 직업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친근함과 명랑함 속 제4의 벽을 넘어 던진 메시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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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 예고편

 

 

 

장건재, 〈영화의 시간〉


 

시놉시스: 극장 청소노동자 우연과 영사 기사 주연, 극장 매니저 세정은 여념 없이 하루 일을 시작한다. 춘천에 사는 영화는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외출을 나와 정동길 주변을 거닌다.

 

극장의 매표소, 상영관, 영사실, 복도, 화장실.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매니저, 영사 기사, 청소 노동자가 있다. 항상 관객을 맞이할 준비로 매일 조용히 분주하다. 규칙적인 그들의 삶 속 유일한 변수는 영화와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뿐이다. 영화의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해진 기간 정해진 시간에 맞춰 틀어지면서 그날마다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맞이한다. 누구는 자고, 누구는 눈물을 흘린다. 누구는 박장대소하고 누구는 지루해한다. 이토록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 매번 고유한 영화 경험이 만들어진다.


〈영화의 시간〉은 그 광경을 다정하게 목격하면서 '극장'을 경유한 우연과 만남을 다룬다. 보다 보면 씨네큐브뿐 아니라, 에무시네마나 라이카시네마, 아트하우스 모모와 필름포럼, 아트나인과 더숲아트시네마, 이제는 사라진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와 강남 시티극장이 아른거린다. 전국의 예술 극장까지 생각한다면 더 많은 추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OTT 서비스의 무서운 성장과 편리함으로, '포스트 시네마' 시기의 도래와 고도로 상업화되는 멀티플렉스의 정책으로, 다양한 영화를 상영관에서 접하는 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극장이 주는 인상(印象)은 놓을 수가 없다.


품이 들어가는 것. 자의적인 선택과 타의에 따른 조건 속 한정된 시간을 쓰는 것. 어두운 공간에 우두커니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시청각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 혹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 반복하는 것. 필름부터 기계 상영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뀌더라도 여전히 살피는 것. 기다리는 것. 영화 시작 전의 설렘과 이후의 여담을. 작품을 통한 소통과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이걸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결국 예상치 못한 순간을 선사하기 때문에. 개인화되고 맞춤화된 시대에 몇 안 되는 공동의 체험 현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이 들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흘러가는 영화의 시간들을 붙잡고 싶은 게 아닐까.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오늘도 이곳에 들른 많은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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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 예고편

 

 

94분의 러닝타임을 안고 출발한 〈극장의 시간들〉은 그래서 어디에 도착했는가. 필자에게는 또다시 설득당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의 묘미와 극장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도 직접 확인해 보길 바라며 구체적인 줄거리는 부러 생략했다. 이번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은 2026년 상반기로 예정된 정식 극장 개봉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도 꼭 공유하고 싶은 영사의 시간들이 있다. 이왕 보는 김에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곳, 씨네큐브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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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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