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동안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곤 했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연말의 감각도 연초의 감각도 조금은 무뎌진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매년 첫날부터 개시해 왔던 일기장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작년까지 받아 온 수많은 편지와 모아온 포스터/엽서들도 아직 제자리에 남아있고요. 명확한 연말 결산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또 다른 1월을 맞이하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루틴은 지켰습니다. 1일이 되자마자 아껴둔 첫 영화를 보는 것. 재작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작년에는 〈메모리아〉를 봤었는데요. 올해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골랐습니다.
느슨한 시작답게 이 글도 아주 느슨하게 적힐 예정입니다. 그래도 역시나,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서요.
1) 파더
제프와 에밀리가 미국 북동부에 홀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보러 갑니다. 남매의 말을 들어봤을 때 꽤 오랜만에 뵈러 가는 길인데도, 그리 내켜 하지 않아 보이죠. 아버지 하면 수식어처럼 따라오는 '돈'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엄마의 죽음 직후 감정 기복이 심해졌던 순간이나, 약(medicine) 대신 마약(drug)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 같은 불안한 정황 때문일 수도 있고요.
아버지에게선 이제 어릴 적에 느꼈던 유쾌함이나 존경스러움 대신 불편함과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돌봄에 관한 의무감과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세 사람 간의 어색한 기류를 형성하죠.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직 재회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미 낯선 사이가 됐습니다. 마지막에 어수선하고 가난한 외로운 노인의 모습 대신, 깔끔하고 여유로운 노년의 신사로 등장하는 아버지가 그 사실에 정점을 찍죠.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부채감과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보살핌.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허례허식처럼 보이기도 하는 감정들을 해당 에피소드가 연신 꼬집습니다. 1년씩 연장되는 '가족 관계' 속 부스럼을 살살 긁어내면서요.
2) 마더
아일랜드 더블린의 근사한 저택에서 어머니가 티머시와 릴리스를 기다립니다. 1년에 한 번씩 주최하는 티타임을 가지기 위해서죠. 전담 상담사가 있고, 작가지만 자신의 책을 논하기 싫어하며, 나름의 지켜야 하는 선이 명확한 그에게선 예민함과 통제력이 느껴집니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는 흔히 말하는 '어머니'의 자애로움보다 날카로움이 자리하고 있죠.
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도 두 딸은 사뭇 다릅니다. 여전히 정서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듯한 첫째 티머시는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입니다. 반면 물질적으로만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둘째 릴리스는 반항기와 재치를 장착하고 있죠. 우아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다소 경직된 언니와 한껏 풀어진 동생을 수행합니다.
이 '격식 있는' 만남이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건, 모녀들 간에 균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면서도 꾸준히 어머니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딸들의 시도가 공존하죠. 결국 공식적인 역할놀이가 끝나는 순간, 남는 것은 철저히 독립된 개체들의 서로 다른 삶입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예고편
3) 시스터 브라더
이란성 쌍둥이 빌리와 스카이가 프랑스 파리의 복잡한 시내를 누빕니다. 왠지 가라앉은 공기 속 농담 따먹기를 잊지 않으며 부모님의 거처로 향하죠. 대마초 대신 틈틈이 '버섯'을 섭취하는 것도,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의 아픔을 직감하는 것도, 심지어 카페에서 우연한 소화 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는 두 사람은 제법 긴밀해 보입니다.
사실 이들은 경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레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실 앞에 둘은 비슷한 속도로 슬픔을 소화하는데요. 빌리가 여남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추억을 보여주면, 스카이가 이를 살펴보다 이내 놀라워하고 그리워합니다. 비록 밀린 집세와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운 짐들이 숙제처럼 남아있지만, 당장의 애도 앞에 걱정은 뒤로 미루기로 하죠.
이처럼 분명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의미는 복잡합니다. 앞선 이야기는 신화화된 측면 속 이미 어그러진 현실을 풍자하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여전히 돈독한 유대감을 조명하죠. 자주 부대끼더라도 막상 떠나면 공허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있더라도 끝까지 그 속을 다 알 수 없는 대상들.
바래질 대로 바래진 이 소재가 담백하게 매만져진 후 다시 건네지니, 극장이 밝아져도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가족에 대해 무언가 말하려고 한 적은 없어요.
관찰하고 공감하는 것 외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길 바랐죠."
_짐 자무쉬
그의 옴니버스 작품에서 늘 그래왔듯, 몇 개의 공통분모가 상영시간 내내 변형되며 반복됩니다. 자꾸만 따지는 물의 맛과 피로 엮인 관계를 암시하는 주인공들의 붉은 의상.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에 찬물을 끼얹듯, 대다수의 가족이 함께하는 순간을 어영부영 넘기기 위해 돌연히 마시는 '물'에 집중하며 풍자되죠.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롤렉스 시계와 여러 삶을 오가는 매개체로서 자동차도 눈에 띕니다. 결국 시계가 짝퉁인지 진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의 가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개인들의 시기, 질투 그리고 부러움만은 진짜입니다. 또 전작 〈패터슨〉, 〈천국보다 낯선〉, 〈지상의 밤〉 등에서 인물들의 성찰과 관찰의 수단으로 활용되던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은 각 에피소드의 포문을 열죠.
자유로워 보이는 스케이트 보더들이 아른거리는 와중에, '간단하고 쉽게 해결되는 일'을 의미하는 인용구 "밥이 네 삼촌이다(Bob's your uncle)"가 우스갯소리처럼 끼어들고, 〈커피와 담배〉를 오마주한 듯한 장면을 후반부에 배치하면서, 감독은 그 의도를 분명히 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 '대화'를 보고 느끼라고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예고편
"친구와 애인은 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잖아."
정신없이 바삐 흘러가던 20대를 뒤로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30대에 접어든 지금.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올해의 첫 사색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생물학적 부모님 혹은 애증의 동거인에 대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지만 여전히 가장 모르겠는 우리집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죠.
점점 더 커지는 책임감과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독립심 중 어디에 무게를 맞춰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든 해내고 또 살아내고야 말겠죠. 앞으로 벌어질 많은 일들에 벌써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자신을 다독여봅니다. 오늘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던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것에 만족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