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실에는 뒷면이 존재하는 법이다.
〈위키드〉 시리즈는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쓰며 그 사실을 폭로한다.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제 힘을 잃는다. 그동안 그 후광에 가려져 미처 상상하지 못한 영역의 비밀들이 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 전래 동화로 돌아가보자. 어린아이들은 기아나 질병, 삶의 각종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성적 사고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못생기고 불구인 짐승, 도깨비, 마녀,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에게 두려움을 투사하고,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면 삶이 더 안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마녀들은 혐오스럽고 역겨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p.148.
먼저, 〈위키드〉의 세계관을 살펴보자. 시즈 대학과 에메랄드 시티 등을 보유한 이곳은 일종의 혐오 정치와 부정적인 의미의 포퓰리즘으로 굴러간다. 그 두 가지를 작동시키는 대표적인 방식은 바로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 즉 의도적이고 공격적인 타자화의 반복이다.(149)
가령, 초록색 피부의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멸시를 받아왔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다수와 소수를 나눠 위계와 권력을 가지는 것이 사회에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장애가 자기 탓이라는 터무니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또래들의 은근하고 직접적인 따돌림에 대응할 방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유 없는 적대감 속에 몸집을 불려 가는 세상을 상대로 말이다.
이는 오즈의 마법사가 지금껏 '오즈민'으로 함께 살던 동물들의 언어를 빼앗고 철창에 가두어 통제하려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는 평범한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궁전으로 위엄을 강조하고, 동요하는 시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반역 동물들을 상정했다. "흩어진 민심을 모으려면 강력한 공공의 적"이 필요함을 알았기에 흑백논리를 사용해 모종의 안정감을 조성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파바의 타고난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로서 작용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마법을 사용할 때 드러나며,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넘어 '항의를 통해 앞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이행 분노Transition-Anger'로 이어진다.(108) 허황한 거짓으로 뒤덮인 에메랄드 시티와 그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하고자 소외되는 위험을 자초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엘파바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침묵하기를 거절한다.
한편, '그리머리'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수하로 엘파바를 편입시키려 했던 권력자들은 현혹에 실패하자 이내 그를 '마녀'로 몰고 간다. 그들의 구슬림에 따라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한 수행이었고, 음흉한 거짓말에 속아 남을 돕기 위해 벌인 주술이었지만, 결과만을 악하게 편집한 것이다. 결국 마담 모리블의 언론 통제와 글린다의 방관, 그리고 시민들의 동조 속에 엘파바는 희생양이 된다.
이후 '초록 마녀'는 만인의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이자 원망과 책망을 도맡는 진짜 '악'으로 자리 잡는다.
영원히 갇힐지 모르는 운명에서 구해줬지만 야생성을 잃어 겁이 많게 된 사자는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네사로즈의 질투로 심장이 쪼들리며 죽어가던 상황에서 심장이 없는 양철 로봇으로 살게 해줬지만 보크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노란 벽돌길을 만들기 위해 노예처럼 부려지는 동물들을 애써 해방했건만 이는 도시를 향한 공포의 공격으로 둔갑한다.
더불어 끝까지 언니로서 지켜주려 했던 노력은 당장 동생의 필요 앞에 부정당하고, 질투에 눈이 먼 친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고통을 일으킨 시발점으로 전락하자, 엘파바는 스스로를 사악한 존재라고 명명한다. 선의에서 출발한 행동들이 부정적으로 돌아오고 그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가운데,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 세계의 '악역'으로 처절하게 퇴장하는 것뿐이다.
이처럼 영화 전반에서 '사실'은 비참할 정도로 힘이 없다. 오직 믿고 싶은 '진실'만이 파다하다. 어쩌면 선을 확신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렇게 끊임없는 거짓과 합리화, 그리고 맹목적인 믿음일지도 모른다. 끝끝내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허상의 적을 상정하는 그런 이기심의 발로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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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위키드: 포 굿〉은 이 암울한 이야기가 온전히 비극으로 향하도록 두지 않는다.
악의 없는 엘파바의 진심을 이해하며 치스테리와 그의 동료들은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허수아비처럼 텅 빈 명예와 즐거움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던 피예로는 엘파바를 따라 기꺼이 다른 관점의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철자 하나를 바꿔 손쉽게 '착함'을 내세우던 어퍼 업랜드의 갈린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착한 마녀 글린다로서 모두의 '오즈민'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가기로 한다.
사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무도회에 엘파바가 자진해서 나갔을 때. 자신을 놀리기 위해 선물한 검은 모자를 쓰고 외로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그의 구원자로 나선 글린다를 보며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엘파바의 주변을 둘러싼 뾰족한 시선과 비웃음을 뚫고 파트너가 되어주었으니, 더없이 안정적이고 견고했던 위치에서 처음으로 이탈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지. '인기' 많은 엘파바를 독려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보다는 덜할 것이라 자신하고, 나름의 도와주는 방식마저 기존 질서로의 편입이었던 그에게 비판을 가해야 할지.
본인을 과시하는 사고방식과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연민 때문에 이뤄진 관계이지만, 동시에 저 사람도 괜찮지 않을 거라는 역지사지에서 비롯된 관계이기에,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마지막 행동까지 지켜보게 됐다.
그러다 마침내 글린다가 자신의 부풀어진 입지에서 내려왔을 때. 매일매일 아름다운 웃음과 각본으로 짜인 행복의 허무함을 직시하고, 애써 모른 척해 왔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제 발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소중한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무엇보다 차마 소리 내서 울지도 못했던 마지막 이별 이후 대중에게 앞으로의 다짐을 선언할 때, 결국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더라.
계속해서 흔들리며 때로는 편의를 위해 눈을 감으려는 모습까지 똑 닮아있기에, 이 또한 지나친 자기 검열이자 적절한 거울 치료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길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행하는 동안 서로를 변화시켰고, 네 덕분에 나은 내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얘기하는 두 주인공의 마지막 하모니에 깊이 감동하면서 말이다.
이 작품을 곱씹으며 경유했던 책의 주인,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이를 불러오기 위한 행동과 노력 중 하나로 '(시와 음악, 다른 형태의 예술을 통한) 사랑과 상상력'을 제시한다.(251)
과연 〈위키드〉 시리즈는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하고 또 변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며, 믿음과 같은 사랑을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의해 유지되는 희망,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 이상으로 성장과 변화가 가능한 존재'라는 전제 역시 가지고 있다.(266)
이제는 이전과 같이 〈오즈의 마법사〉가 선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과 따뜻한 환상을 마냥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다. '동쪽 마녀'의 은빛 구두도, 물과 닿아 사라진 '서쪽 마녀'의 소멸도, 도로시와 친구들의 용맹한 여정도 다르게 읽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나이, 종교로 그 누구도 차별받거나 고통받지 않는 '에메랄드 시티'는 꿈꿔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함'을 향해 나아가는 많은 발걸음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